아베보다 나을까?
대북 문제와 한일관계 막막
12.28 파기에 깊은 유감
마키아벨리스트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모두의 예상대로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포스트 아베를 차지하게 됐다. 1948년생인 그는 건강 문제로 물러난 아베 신조 총리보다 6살이나 더 많다. 

14일 오후 스가 장관이 차기 자민당(자유민주당) 총재로 선출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일본은 의원내각제 국가라 다수당의 당대표를 뜻하는 총재가 관례적으로 총리를 맡게 된다. 자민당은 60년 넘게 일본 정치를 장악해온 우파 빅텐트 정당이다. 딱 두 번 입헌민주당 계열에서 집권한 적(1993년~1996년/2009년~2012년)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전부 자민당 정권이었다. 현재 자민당은 참의원 112석(245석)에 중의원 284석(465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만큼 자민당 내부 파벌 정치가 치열한데 일찌감치 스가 장관(중의원 8선)은 7개 중 5개 파벌들로부터 지지세를 충분히 확보해놓은 상태였다. 사실 관방장관이라는 자리 자체가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무총리를 합쳐놓은 것이라 내각 2인자를 뜻한다. 무난하게 스가 장관이 차기 최고실권자로서 유력했던 상황이었다. 자민당은 이날 도쿄의 모 호텔에서 총재 선거를 실시했고 스가 장관이 534표 중 377표를 받았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14일 오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됐다. 선거 직후 아베 신조 총리로부터 축하 꽃다발을 받는 스가 장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스가 장관은 오는 16일 소집될 임시 국회에서 99대 일본 총리로 정식 선출될 예정이다. 이제 스가 내각의 시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2기 아베 내각이 출범한 뒤 7년 9개월만이다.

한국인에게 아베는 항상 최악의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누가 되든 아베보다는 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정서가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스가 장관은 아베 내각의 국정 방향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한일관계의 현안은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따른 무역 제재 문제다. 우리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해 굴욕적 합의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스가 장관은 한일관계의 기본 원칙을 거기에서 찾고 있다.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도 스가 장관과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합작품이라 사실상 자체적으로 무효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와 어떻게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

예영준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11일 출고된 기획 기사를 통해 일본 정계 소식통 A씨를 인용하며 스가 장관의 대한국 불신 포인트를 짚어냈다. 

A씨는 “(한일 무역 분쟁에서 스가 장관이 강경론에 서게 된) 그 배경에는 한일간 위안부 합의의 실천이 한국 정부에 의해 사실상 폐기된 데 대한 실망감과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며 “스가는 위안부 합의를 큰 성과물로 생각했고 자부심을 가졌는데 한국 정권이 바뀐 뒤 합의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크게 좌절했다”고 주장했다.

스가 장관은 대북 문제에서도 문재인 정부와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다.

예 위원은 “(일본에서 북한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경로를 차단하는 입법을 주도했을 만큼) 오래 전부터 일본 정치인 가운데 대북 강경파의 선두에서 활동해온 셈이다. 그런 스가에게 대북 전단 금지법을 만든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비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며 “대북 제재 완화와 경제 교류 협력 및 인도적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정부와의 대북 정책 공조는 스가 정권 출범 이후에도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스가 장관은 총리로 취임한 뒤 곧바로 내각 명단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스가는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16일 이후 곧바로 새로운 내각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총재 선거 이전부터 쉐도우 캐비닛(정권 획득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해 두는 내각)을 구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장 후임 관방장관에 누구를 내정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무엇보다 스가 장관은 총리의 고유 권한인 중의원 해산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칙적으로 스가 장관의 총재 임기는 2021년 9월까지인데 재선거에서 가뿐히 연임하기 위해서는 중의원 총선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 

예 위원은 스가 장관에 대해 한 마디로 마키아벨리즘에 투철한 정치인으로 평가했다.

예 위원은 “일본 관료들은 스가 앞에서 쩔쩔맨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를 신조로 삼는 그에게 안 되는 일이란 있을 수 없고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또한 고위 관료들의 인사를 직접 챙기며 기존 관행을 파괴했다. 아베가 최장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스가의 힘을 빌려 관료를 장악한 것을 꼽는다”면서 “내셔널리즘과 역사수정주의, 우익 성향이 확실한 아베에 비해 스가는 이념 성향이 뚜렷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묘사했다.

그럼에도 “(마키아벨리의 저서 속 우유부단 경계 문구를 인용하며) 스가가 결국 아베와 마찬가지로 강한 일본을 목표로 할 말은 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성향은 앞으로 그가 본격적으로 외교 무대에 등장할 때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며 “그가 전면에 나설 한일관계도 만만치 않은 파고가 예상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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