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한테 전화하는 게 먼저였던 사람들
목격자의 생생한 증언
적발 가능성 낮아
내가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2년 전 故 윤창호씨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과 판박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고 혈중알콜농도가 0.1%를 넘길 만큼 만취 상태였다. 음주운전 문제 전문가들은 통상 한 번의 음주운전 사건이 발각되려면 20번 이상 음주운전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윤씨의 삶을 짓밟은 음주운전 범죄자 박상준씨와,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 인근에서 오토바이로 배달 중이던 치킨집 사장 A씨를 사망하게 만든 알파씨도 모두 초범이다. 

하지만 걸리지 않은 음주운전을 몇 번이나 자행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원중 인천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4일 21시20분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알파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윤창호법이 적용됐다. 윤창호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상)에 따르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했을 때는 징역 3년~무기징역 △다치게 만들면 징역 1년~15년 또는 벌금 1000만원~3000만원에 처하게 된다.

알파씨는 음주운전 치사 범죄를 저질렀다. (사진=연합뉴스)

박씨는 작년 10월15일 징역 6년이 확정됐지만 윤창호법 이전에는 음주운전 치사가 벌어져도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아 집행유예가 나오는 일이 빈번했다. 

이를테면 2018년 8월27일 술먹고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아 동승자 2명을 죽게 했고 2명을 다치게 만든 뮤지컬 연출가 황민씨는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4명의 인명 피해를 야기한 황씨가 박씨보다 더 적은 형량을 받았던 게 대한민국 음주운전 처벌의 현실이었다.

알파씨는 이날 오후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고 법원에 도착했을 때 초가을 날씨임에도 패딩 점퍼 후드를 뒤집어 쓴채로 온몸을 가렸다. 알파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피상적인 사과 워딩도 내놓지 않고 아무 말 없이 호송차에 몸을 실었다. 물론 신상공개가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인천 중부경찰서가 포토라인 시간을 기자들에게 알렸음에도 과잉 은신을 그대로 놔둔 것이 의문스럽다.

알파씨는 지난 9일 새벽 1시쯤 을왕리 해수욕장 주변 2차로에서 술에 잔뜩 취한 상태로 벤츠 차량을 몰았다. 윤창호법에 따라 면허 취소 기준이 혈중알콜농도 0.08%로 강화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알파씨가 얼마나 취해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알파씨는 중앙선을 침범해서 A씨와 충돌했다.

알파씨와 그날 밤에 처음 만난 베타씨는 벤츠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베타씨는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벤츠도 베타씨의 회사 법인 리스 차량이었다. 

둘은 왜 음주운전 범죄를 저지르게 됐을까. 베타씨는 8일 저녁 일행 2명과 함께 해수욕장 주변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해 21시쯤 나올 수밖에 없었다. 3명은 술을 사서 근처 숙박업소로 들어갔고 여기서 알파씨가 합류했다. 총 4명이다. 4명이 숙박업소에서 놀다가 다툼이 있었고 알파씨와 베타씨가 먼저 나와 죽음의 벤츠를 몰았던 것이다. 베타씨는 알파씨보다 훨씬 더 취한 상태였다고 한다.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베타씨가 운전자 바꿔치기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알파씨가 운전대를 잡도록 방조한 범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현장 목격자들에 따르면 베타씨와 알파씨는 사건 직후 A씨의 위중한 상태를 걱정하기 보다는 자신의 법적 처벌을 더 걱정한 것으로 보인다. 베타씨는 벌써 변호사를 끼고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데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알파씨와 베타씨는 사건 직후 119에 전화하지 않았다. 베타씨는 바로 변호사에게 전화했고 알파씨에게도 전화를 바꿔줬다. 둘 다 술에 많이 취한 상태라 고의성이 없다는 변론 전략으로 갈 것이 뻔한데 사실상 멀쩡한 정신으로 자기 안위를 신경쓰고 있었던 것이다.

알파씨는 초범이지만 걸리지 않은 음주운전 사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연합뉴스)

14일 방송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공개한 목격자 B씨의 녹취록에 따르면 알파씨와 베타씨는 사고 이후 10분간 차량에서 나오지 않고 변호사에 전화를 하는 등 자기 변호 전략을 논의하고 있었다. B씨가 파손된 벤츠 차량 쪽으로 다가가서 타고 있는 운전자도 부상 때문에 못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베타씨가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B씨는 “(베타씨가) 완전히 만취가 된 상태에서 날 정말로 곧 시비걸 것처럼 쳐다보더라. 그러니까 남자는 이미 만취가 됐고 안쪽(운전석)에 사람을 보니까 알파씨인 것”이라며 “알파씨도 딱 보니까 취해 있는데 그때 보니까 앞에 있는 창 유리랑 그런 게 다 깨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알파씨와 베타씨가 끝까지 안 나왔다. 구급대원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오는데 한 10분이 걸린다고 하더라. 그런데 진짜 비오는 날 (A씨가) 쓰러져 계시니까 환장할 것 같더라. 힘들었는데 그때서야 알파씨가 비틀비틀 거리면서 나오는 것”이라며 “(알파씨가) 저희 일행 중에 운전자 동생을 딱 붙잡더니 저기요. 저기요. 이러고 말을 거는 것이다. 그래서 동생이 겁이 나서 피했는데 그 다음에 나한테 말을 걸더라. 정말 술에 취한 목소리로 발음 다 꼬여서 나한테 여기서 역주행한 분이 누구냐.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B씨도 처음에는 벤츠 차량 탑승자들이 목격자인줄 알았다. 그러나 이내 알파씨가 음주운전 가해자인 것을 직감했다.

B씨는 “(알파씨가 누가 역주행을 했던 거냐고 묻자) 너무 황당했다. 저기 계시지 않냐고 그랬더니. 아 이렇게 뭐 하더니 인사불성돼서 그러더라. 또 얼마 안 있다가 또 나왔다. 또 나와서 이제는 날 또 붙잡고 딱 얘기를 하더니 저기 죄송한데 호칭을 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겠는데 저분이랑 무슨 관계냐?”라고 물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인(A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나한테 물어보는 것이다. 너무 열받아서 아무 관계도 아닌데 저기 사람 쓰러진 거 안 보이냐고 얘기를 했다”며 “너무 진짜 이것들이 정말 미쳤구나했다”고 그때 당시의 느낌을 표현했다.

알파씨는 경찰과 구급대원이 도착하자 B씨에게 다가와 대리 운전을 부르려고 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B씨는 경찰에 직접 진술을 하라고 받아쳤다. 알파씨도 B씨가 추후 불리한 증언을 할 것이라고 걱정됐던 거다.

B씨는 알파씨가 경찰에게 해명하는 것을 지켜봤는데 “대리를 부르려고 했는데 대리가 안 와서 이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B씨는 그 순간 일행으로부터 전해들었는데 베타씨가 변호사에게 연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B씨는 “거기서부터 다들 벙찐 것이다. 베타씨가 경찰한테 약간 좀 자기가 잘못을 했는데 도리어 당당한 것이고 알파씨가 베타씨에게 이 사람들 경찰이라고! 그러면서 손을 끌어당겼다. 경찰한테 베타씨가 자기가 당당하게 할 정도면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었던 것”이라며 “너무 화가 나는 것이다. 그 사람들한테”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고가의 패딩 점퍼로 온몸을 가린 알파씨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 사건은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치킨집 사장의 딸 C씨가 올린 글을 통해 알려졌다. 15일 17시 기준 58만6824명이 동의했다.

C씨는 “경찰서에 갔는데 작은 방에서 알파씨가 하염없이 울더라. 설마 저 사람이 가해 차량 운전자인가? (경찰이) 끄덕였다. 궁금했다. 그렇게 우는 이유가 우리 아빠한테 미안해서인지. 본인 인생이 걱정되서인지. 감정이 올라오는데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했기에 참았고 직접 가해차량 블랙박스까지 확인했다”며 “이 차량의 속도가 몇인가? (경찰이)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제대로 수사 부탁했고 가해자 얼굴 한 번만 보겠다. 어떤 짓도 안 하겠다고. 경찰은 말렸고 나는 가해자도 사람이니까 보호한다고 밖에 생각이 안 들었다. 나는 그저 술취한 상태의 가해자를 보고싶었다. 끝까지 안 보여줘서 그대로 돌아왔다”고 풀어냈다.

윤창호법 이후 한국 사회에서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윤씨의 대학 친구로 윤창호법 제정에 큰 기여를 한 김민진씨는 <뉴스쇼>에서 “음주운전을 했을 때 내가 적발될 가능성 자체가 적다고 생각해서인 것 같다”며 “음주운전 처벌이 강화됐는데 도대체 뭘 더 해야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내가 생각했을 때는 어떤 범죄 예방의 차원에 있어서는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처벌될 수 있는 가능성 그러니까 범죄 처벌의 확실성이 (음주운전에서는) 굉장히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음주운전 같은 경우 그 처벌 확실성이 굉장히 낮고 그렇다 보니까 음주운전을 해도 체포가 된다든지 처벌받을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처벌은 강화되었지만 처벌 대상이 내가 될 거라는 생각이 없으니까 계속해서 습관처럼 일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범좌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는 게 맞다. 그래서 그에 맞는 중대한 범죄여야 하고, 재범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범죄자 가족들이 괜한 피해를 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음주운전 치사 범죄자에 대해서는 그 사실을 공개하는 제도를 상상해볼 수 없을까?

김씨는 “타이완에서는 저희가 윤창호법을 준비할 때도 계속 이야기를 했던 부분인데 음주운전자의 경우 차량 번호판 색깔을 다르게 하는 걸 실시하고 있다”며 “형광 번호판을 달아서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은 음주운전을 했던 경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래서 또 범죄 예방의 효과도 있지만 내가 알아서 좀 피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알파씨는 경찰 조사에서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숨쉬는 게 곤란해서 이틀 정도 입원까지 했다. 중부 경찰서는 실제 알파씨가 지병으로 진단받은 사실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이날 알파씨와 베타씨에 대해 “상식을 벗어난 파렴치한 행위자”로 규정하며 살인죄 및 살인 종범 혐의로 경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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