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세력의 대응 패턴
장제원이 정리한 위기탈출 매뉴얼
뭐만 하면 검찰개혁으로 눙치는 습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어야 검찰개혁 아닌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라고 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보수 정권 9년간 지금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못지 않게 날카로웠다. 대표적인 진보 논객이었다. 

그런 조 전 장관은 2013년 10월23일 트위터에 “다를 익숙하시지요?”라며 다른 사람의 글을 리트윗했다. 

조국 전 장관이 트위터를 통해 공유한 게시물. (캡처사진=트위터)

조 전 장관이 리트윗한 글은 “범죄자들의 변명 기법 1) 절대 안 했다고 잡아뗀다. 2)한 증거가 나오면 별 거 아니라 한다. 3)별 것 같으면 너도 비슷하게 안 했냐며 물고 늘어진다. 4)그것도 안 되면 꼬리자르기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집권 세력의 비위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어떻게 대응하게 되는지 일종의 패턴을 정리한 것이다.

조 전 장관이 공인한 이러한 패턴은 실제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드루킹 게이트(2018년) △김태우 사건(2019년) △조국 사태(2019년) △유재수 사태(2019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2019년) △윤미향 사태(2020년) △추미애 아들 논란(2020년) 등 일련의 사건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마다 그대로 재현됐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아들 특혜 휴가 의혹으로 거대 양당의 공방이 팽팽하다. 물론 적대적 대결 정치체제에서 제1야당 국민의힘이 지나치게 네거티브를 구사하는 측면도 있다.

손솔 전 진보당 인권위원장은 9일 방송된 당 유튜브 채널 <청년 REC>에서 “케케묵은 양당의 비난질을 그냥 보는 것 같아서 사실 그렇게 흥미롭지도 않고 알아야 할 것 같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다”고 촌평했다. 

그럼에도 국민 감정을 건드리는 대형 의혹 이슈가 터질 때마다 여권의 대응 전략은 일종의 패턴화된지 오래다. 그 과정에서 국민 감정을 건드리는 요소들이 파생되기도 한다.

조 전 장관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누구보다 보수 정권에 매서운 비평을 해왔다. (사진=연합뉴스)

장제원 국힘 의원은 일요일(20일) 정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집권 세력의 위기탈출 매뉴얼이 체계화·조직화되고 있어 소름이 돋을 지경”이라고 표현했다.

장 의원이 정리한 단계별 매뉴얼은 아래와 같다.

①정권 핵심 인사의 도덕성 문제가 터지면 “특유의 뻔뻔함”으로 전면 부인하고 “개혁에 대한 적폐 세력의 저항”이라고 우긴다
②집단화 된 소위 “빠 부대”가 문자 폭탄과 SNS상 인격살해 수준의 공격으로 여권 내부의 양심 세력에 재갈을 물린다 
③어용 언론을 총동원해서 반대 증언을 해줄 인물을 등장시키며 “이제는 지겹다”는 분위기로 몰아간다
④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나서기 시작하는데 안면몰수하고 상대를 향한 저주의 막말을 쏟아낸다
⑤친정권 시민단체가 나서서 상대 진영 인사들에 대한 무차별적 고발로 본격적인 물타기에 들어간다 
⑥검경이 전광석화 같이 수사에 돌입한다 
⑦의원직 사퇴 등 진짜 책임지는 행위와는 무관한 징계 시늉으로 “자성쇼”를 한다
⑧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이제 검찰의 수사 결과를 차분하게 기다리고 민생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자”는 식으로 말을 한다

장 의원은 ⑦ 이후에 “(문 대통령이 19일 제1회 청년의날 축사로 그렇게 했듯이) 정권 스스로 무너뜨려 놓은 공정과 정의를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수 십번을 강조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정권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하나 하나 나열하지 않겠다. 모든 의혹이 매뉴얼대로 조직적으로 덮여지고 있다”며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권력으로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 집권 세력의 후안무치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성토했다. 

특히 장 의원은 ④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이) 너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어? 그런 걸로 시작해서 역사 속의 의인(안중근 의사)을 등장시키는데도 주저함이 없다. 초선과 중진을 가리지 않고 경쟁적으로 나선다. 논리도 수치심도 민망함도 없이 막 던진다”고 꼬집었다.

 

(사진=연합뉴스)
장제원 의원은 여권의 위기탈출 매뉴얼을 정리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실 ①과 관련 검찰개혁이 모든 것의 방패막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번 추 장관 아들 논란 때도 결국 검찰개혁이 중요하고 이에 저항하기 위한 검찰과 제1야당의 반동적 움직임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됐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서욱 국방부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국힘 의원들에게 “쿠데타 세력이 국회에 들어와서 공작을 한다”며 공격적인 발언을 한 바 있는데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반동을 하고 있다는 프레이밍의 대표 사례다. 조국·윤미향 사태 때도 검찰개혁 저항 프레임이 작동했었다.

진 전 교수는 8월19일 출고된 중앙일보 칼럼에서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0% 정도가 검찰개혁이 잘못됐다고 대답했다. 여론조사기관 공동 조사에서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개혁이 검찰 길들이기로 변질됐다고 대답했다”며 “지금 검찰개혁은 총장을 허수아비 만드는 작업으로 전락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라고 환기했다. 

이어 “누구를 위한 개혁일까? 사실 검찰개혁은 서민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서민의 인권 침해는 주로 경찰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약촌오거리 사건, 삼례 나라슈퍼 사건, 화성 8차 사건 등 죄없는 이들에게 살인범 누명을 씌운 것은 경찰의 강압 수사였다”며 “반면 개혁론자들이 과도한 검찰권의 희생자로 꼽는 것은 노무현·곽노현·김상곤·한명숙·정연주·조국 등 주로 파워 엘리트들이다. 검찰개혁은 처음부터 이들 범털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것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활용해 슬쩍 대중을 위한 개혁으로 포장한 것뿐이다. 노 대통령이 개혁을 거부하는 검찰의 보복으로 희생됐다. 대중에게 회자되는 이 이야기가 엘리트 계층을 위한 개혁을 일반 민중의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개혁이 이상한 데로 간 것은 거기에 이들 파워 엘리트들의 사적 원한과 공포가 실려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
진중권 전 교수는 여권의 검찰개혁이 범털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통상 검찰개혁의 요체는 살아있는 권력에게도 칼을 대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조 전 장관과 추 장관이 취임한 뒤로는 인권 수사에 방점이 찍혔고 마치 검찰의 직접 수사를 무작정 못 하도록 만드는 것이 검찰개혁의 전부마냥 취급돼왔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등 막강한 검찰 권한을 이관하려는 목적이었다면 2017년~2018년에 대대적으로 이뤄진 적폐청산 수사 때부터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과거 정권 인사들의 비위를 무자비하게 수사했고 민주당은 검찰이 발표하는 수사 정보를 토대로 국회에서 피의사실공표 파티를 벌이곤 했다. 

누가 뭐래도 검찰개혁의 핵심은 힘있는 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 보장이어야 한다. 국민은 집권 세력에 대한 비리 의혹을 대충 뭉개왔던 정치 검찰을 수도없이 목도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19일 방송된 TV조선 <강적들>에서 “(추 장관이) 그러면 도대체 검찰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거냐에 대해서 나는 두렵기까지 하고 뭐가 검찰개혁인가? 정권 눈치 안 보고 정말 소신껏 수사해서 거악을 척결하고 우리 사회가 더 맑고 공정하게 그렇게 되는 것이 검찰개혁 아닌가? 다 멋대로 하면 그게 개혁인가?”라고 내부 쓴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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