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秋夕)...마음은 고향에 보내고 몸만은 남루지회(南樓之會)의 '한가위'가 되시길

 

윤장섭 기자
윤장섭 기자

즐거워야 할 추석이 두려워 진다고 속내를 전한 어느 중소기업 대표의 얼굴에서 나는 분노를 보았다. 비록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있지는 않아도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에도 지금까지 직원들의 급여를 단 한번도 지급하지 못한적이 없을 정도로 나름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자존심 강한 CEO의 고백은 의외로 차분했다. 그리고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때에도 이정도는 아니었다는 넉두리에는 그저 쓸쓸함마저 묻어 나왔다.

이제 일주일 뒤면 한가위 추석 명절이다. 그러나 이번 추석만큼은 민족의 대이동이란 말들이 사라진 최악의 추석이 될 듯 하다. 마스크속에 가려진 얼굴, 피곤함이 묻어나는 도시의 삶에서 그리운 고향으로의 탈출이 이번 만큼은 할 수도, 아니 하지도 못한다.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코로나19가 모든 것들을 멈추게 했고 또 절망케 했다.

지금쯤이면 퇴근길 풍경이 넉넉함 그 자체로, 너도나도 한 보따리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한손에 선물 꾸러미 하나 정도는 들려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

소상공인이 문을닫고 중소기업들이 공장을 세워야 하는 상황에 몰리면서 선물은 고사하더라도 밥줄을 걱정해야 하는 추석이 되었다. 지난해 까지만 하더라도 추석대목을 누렸던 공장들 까지도 이번엔 특근도 잔업도 없다. 오히려 사람을 더 줄여야 할 판이다. 행여나 나에게 데스노트(Death Note)까지 더해지는 추석이라면 차라리 시간이 멈춰 주기를 바라는 것이 가장(家長)의 마음이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상반기 공장가동률이 2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 한달에 일주일도 공장을 가동하지 못 할 정도로 일감이 없다는 이야기다.

1년 전만 해도 수출로 호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명절에 상여금 정도는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금난을 걱정해야 한다. 그것도 추석 명절을 앞두고 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예상을 뛰어넘어 장기화하면서 경기는 끝도없이 추락하고 세계경제 성장률은 어느나라 할 것 없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칠치고 있다. 경영환경은 최악인데, 소폭이지만 최저임금마저 인상하는 등 반기업적인 노동정책까지 더해지면서 작금의 중소기업은 생불여사 (生不如死)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추석을 앞두고 전국에 있는 중소기업 1075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중소기업 추석 자금 수요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3곳 중 2곳은 추석을 앞두고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 중 67.6%가 ‘자금 사정 곤란’을 호소했다.

자금난을 호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매출 감소다. 중소기업 10곳 중 8곳 가량이 올해 들어 실적 악화를 경험했다. 매출액 변동이 없는 기업은 22.4%였고 매출액이 증가한 업체는 0.6%에 불과했다.

이렇게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을 위해 은행권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곳간을 연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중구생(死中求生)이 아닐수 없다.

은행들은 자금에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을 위해 임직원 급여나 운전자금에 대한 신규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자금 사정 곤란’을 호소한 67.6%의 CEO들에게는 정말 단비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고락(苦樂)을 함께한 직원들에게 명절 만이라도 따듯하게 보낼수 있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추석(秋夕)은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기다려지는 명절인 만큼 자연이 주는 결실 또한 풍요롭다. 비록 누구나 바쁜 일상에 쫓기듯 살아왔지만 한가위만이라도 부모와 형제, 친지들을 만나 안부를 묻고 맛난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오랜 우리의 전통이다.

그런데 이번엔 고향을 찾는 이들이 10명중 2명 정도라니 코로나19란 놈이 무섭기는 한가보다. 다만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코로나를 핑계로 부모에게는 효(孝)가, 형제들에게는 정(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어 혼란스럽다.

오늘아침 일간지 머릿기사에는 국내 관광지의 모든 숙박시설이 다 예약이 됬다고 대문짝 만하게 보도됐다. 코로나19 핑계로 고향을 찾지 못하겠다던 우리의 아들 딸들이 행여나 관광지로 몰려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글을 마무리 하면서 필자의 생각은 비록 대다수의 국민들이 고향을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음은 고향에 보내고 몸만은 남루지회(南樓之會)의 한가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연회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가위 대보름 달빛 아래서 가족끼리 조촐하게 잔치를 벌려보는 것도 좋을 듯 해서 던져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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