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산, “일방적 인수계약 해제 통지 ‘유감’”…법적 검토 후 대응할 수도
아시아나, 정부 지급보증으로 기간산업안정기금 1호 기업돼…2.4조 지원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과 관련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할 말이 있다’는 분위기이다. (사진=연합)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과 관련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할 말이 있다’는 분위기이다. (사진=연합)

[중앙뉴스=김상미 기자]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과 관련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할 말이 있다’는 분위기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관련 장고에 빠졌던 정 회장은 오히려 ‘앓던 이를 뽑은 게 아니다’라는 표정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은 가장 좋은 기회를 놓친 순간으로 각인될 것이라는 안타까움과 함께 정 회장의 종합 모빌리티 그룹 실현에 대한 꿈을 쉽게 꺾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어쨌든 결론은 지난 11일 무산되고 말았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회사를 종합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시키겠다던 정 회장의 야심찬 꿈이 결국 꺾이게 됐다.

정 회장은 과거 선친과 함께 현대자동차를 일구며 키웠던 ‘모빌리티 DNA’를 HDC그룹에서 펼쳐보려 했지만 결국 꺾인 형국이 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때한 꿈은 접혔지만 종합 모빌리티 그룹 실현에 대한 꿈은 접지 않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조용하던 현산이 갑작스럽게 등장했다는 것이다. (사진=중앙뉴스DB)
업계 안팎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조용하던 현산이 갑작스럽게 등장했다는 것이다. (사진=중앙뉴스DB)

@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갑작스런 현산의 등장

업계 안팎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조용하던 현산이 갑작스럽게 등장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왔을 때 HDC그룹을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금력이 있는 SK그룹과 CJ그룹, 제주항공을 보유한 애경그룹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됐지만, HDC그룹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예비입찰에 현산도 참여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을 정도였다.

미래에셋대우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참가한 현산은 본입찰에서 경쟁자로 꼽히던 애경그룹보다 1조원가량 많은 액수를 적어내며 최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주위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이 같은 ‘통 큰 베팅’에 업계에서는 정 회장을 주목했고, 정 회장이 선친과 함께 일군 현대자동차 시절 이야기가 회자됐다.

정 회장의 선친은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셋째 동생으로 현대차와 ‘포니’ 신화를 만든 ‘포니정’, 故 정세영 명예회장이다.

정몽규 회장은 정세영 명예회장이 닦아 놓은 현대차에서 경영수업을 받다가 1999년 정주영 회장이 장자인 정몽구 회장에게 자동차 경영권을 승계하자 선친과 함께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한 연유로 현대차 시절의 ‘모빌리티 DNA’가 아직 남아 있어 항공업에도 관심이 있다는 말이 나왔다.

정 회장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종합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할 것”이라면서 HDC그룹이 항만사업도 하고 있고 앞으로 육상, 항공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내비쳤다.

당시에도 ‘승자의 저주’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현산은 충분한 자체 자금으로 인수에 참여해 재무구조 악화 우려가 없다고 일축했다.

현산은 지난 11일 “일부 언론 보도에 나온 것처럼 산업은행이 1조 원을 깎아주겠다고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중앙뉴스DB)
현산은 지난 11일 “일부 언론 보도에 나온 것처럼 산업은행이 1조 원을 깎아주겠다고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중앙뉴스DB)

@ 코로나19 여파가 진짜 무산 이유 됐나?

이후 본계약을 체결하고 국내외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하는 등 인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각국이 감염 우려로 속속 이동제한 조치를 위하고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항공업계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아시아나항공은 화물 운송으로 영업이익에 호실적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정국 전부터 경영 악화 상황에 있던 아시아나항공은 결국 추스르지 못한 채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에 현산의 태도도 눈에 띄게 소극적으로 변했다.

이때부터 업계에서는 정 회장이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밀어붙일 경우 천문학적인 비용이 추가로 소요되고 그룹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해 결국 인수를 포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앞서 정 회장은 지난달 26일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인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을 만나 인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일부 언론의 기사도 쏟아졌다. 

이 같은 언론의 기사 내용은 정 회장이 인수에 따르는 부담이 그만큼 크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되면서 현산은 2천500억원의 계약금 반환소송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산은 인수 무산된 같은 날인 11일 아시아나항공·금호산업으로부터 인수 관련 계약 해제를 통지받았다고 공시했다.

현산은 공시에서 “(금호 측은) 당사가 거래종결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음을 사유로 계약 해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당사는 이런 통지에 대해 법적인 검토 이후 관련 대응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산은 “일부 언론 보도에 나온 것처럼 산업은행이 1조 원을 깎아주겠다고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협상 과정에서 채권단인 산업은행의 역할이 미진했다고 지적했다. (사진=중앙뉴스DB)
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협상 과정에서 채권단인 산업은행의 역할이 미진했다고 지적했다. (사진=중앙뉴스DB)

@ 현산, 아시아나 인수 무산 관련 ‘유감’ 입장 밝혀

현산은 인수 무산 나흘 후인 지난 15일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이 금호산업 측의 선행조건 미충족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산은 이날 기자들에게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11일 일방적으로 인수계약 해제를 통지해 온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이는 10개월 동안 끌어오던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이 지난 11일 무산된 이후 현산의 첫 공식 입장이다.

현산은 “인수 계약의 근간이 되는 아시아나항공의 기준 재무제표와 2019년 결산 재무제표 사이에는 본 계약을 더 진행할 수 없는 차원의 중대한 변동이 있었다”면서 “재실사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의 거래종결을 위해 필요한 절차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수과정 중 아시아나항공의 대규모 차입, CB(전환사채) 발행 및 부실 계열사 지원 등의 행위가 계약상 필수 요건인 인수인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진행되면서 재실사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덧붙였다.

또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금호아시아나에 계열사 간 부당지원 행위에 대해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총수·경영진·법인을 검찰에 고발 조치하는 등 법률 리스크까지 현실화했다”면서 “만약 그대로 거래를 종결한다면 관련 임직원들의 배임 이슈는 물론 HDC그룹의 생존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었기에 재실사 요구는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다”고 역설했다.

오히려 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협상 과정에서 채권단인 산업은행의 역할이 미진했다고 지적했다.

“8월 26일 면담에서 재실사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12주를 고수하지는 않았다”면서 산업은행이 이에 대한 아무런 답변 없이 언론을 통해 인수 무산을 공식화했고, 금호산업이 일방적으로 이번 계약의 해제를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산은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의 주장과 달리, 계약의 거래종결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매도인 측의 선행조건 미충족에 따른 것”이라며 “아시아나항공·금호산업의 계약해제 및 계약금에 대한 질권(담보) 해지에 필요한 절차 이행통지에 대해 법적인 차원에서 검토한 후 관련 대응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현산 관계자는 “법적 대응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결국 무산되면서 아시아나항공은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기간산업안정기금을 받는 첫 번째 기업이 됐다. (사진=중앙뉴스DB)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결국 무산되면서 아시아나항공은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기간산업안정기금을 받는 첫 번째 기업이 됐다. (사진=중앙뉴스DB)

@ 인수 무산된 아시아나항공,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1호 기업돼

한편,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결국 무산되면서 아시아나항공은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기간산업안정기금을 받는 첫 번째 기업이 됐다.

채권단인 산업은행(산은)은 지난 11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하고 아시아나항공 매각 불발 사실을 밝혔다.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오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관련 금호산업 측에서 현산 측에 계약 해제가 통보된 것에 대해 매각 과정을 함께 했던 채권단으로서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이날 오후 산업경쟁력 강화 장관 회의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 이후 경영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기간산업안정기금 운용심의회는 회의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에 2조4천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원 방식은 운영자금 대출 1조9천200억원(80%), 영구전환사채(CB) 인수 4천800억원(20%)이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은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는 기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40조 원 규모로 조성된 정책 기금이다. 

일정 수준의 고용 총량을 유지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산업은행이 자금을 빌려주고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한국산업은행법 시행령에는 지원 대상으로 항공·해운 2개 업종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외의 업종은 금융위원회가 소관 부처의 의견을 수렴하고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결정한다.

이로써 현산이 지난해 11월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며 시작된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여정이 10개월 만에 결국 인수 불발로 끝났다.

앞서 현산은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뒤 그해 12월 금호산업과 주식매매계약(SPA)을 맺었다. 아시아나항공과는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했다.

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인 금호산업이 가진 아시아나항공 주식(구주) 6천868만8063주(지분율 30.77%)를 3천228억원에 사들이고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할 2조1천772억원 규모의 신주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계획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아시아나항공 부채와 차입금이 급증하자 현산은 인수 환경이 달라졌다며 재실사를 요구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금호산업은 현산의 인수 의지에 의구심을 보이며 재실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채권단이 1조원 인수 대금 인하의 파격 조건을 제시했으나 현산이 ‘12주 재실사’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노딜’(인수 무산)로 마무리됐다.

현산과의 인수 무산으로 아시아나항공은 6년 만에 다시 채권단 관리 체제에 놓였다.

아시아나항공은 2010년 산은 주도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은 뒤 경영 정상화 노력으로 2014년 자율협약을 졸업한 적이 있다.

채권단은 일단 기간산업안정기금 투입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후 영구채 8천억원의 주식 전환, 대주주인 금호산업의 아시아나항공 지분(30.79%) 감자 등도 예상된다.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또 시장 여건이 좋아지면 재매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중아뉴스DB)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또 시장 여건이 좋아지면 재매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중앙뉴스DB)

@ 아시아나 채권단, 시장 여건 좋아 지면 재매각 추진

한편,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또 시장 여건이 좋아지면 재매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최 부행장은 “컨설팅을 할 때 자회사 매각 등도 검토할 것”이라며 “에어서울, 에어부산이라든지 골프장을 포함한 리조트 등 여러 부분도 컨설팅의 범주에 넣어 고민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금호고속에도 긴급 유동성을 지원하는 등 아시아나항공 정상화와 경영안정을 위한 다각적인 조치를 하기로 했다.

최 부행장은 “그룹의 최상단에 있는 금호고속은 9월 말까지 1천100억원, 연말까지 4천억원의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우선 1천200억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2천800억원은 정밀 실사를 통해 검증한 후에 관리 및 처리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로써 인수 불발로 계약 당사자인 금호산업과 현산 간 계약금 반환 소송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에 따른 기업 이미지에 대한 무게감을 의식하면서 계약금 관련 법적 소송을 먼저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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