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시즌2
6기 지도부의 과제
1·2·3세대의 연대로 원팀 만들어야
대선 출마에는 말 아껴
민주당과의 관계에는 문재인 정부 맹비판
이해충돌 문제 의원들 의원직 사퇴해야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故 노회찬 의원이 없는 정의당에서 심상정 대표는 이 악물고 나아갔다. 2018년 10월 정개특위위원장을 맡아 선거제도 개혁을 주도했고 작년 7월 손쉽게 당권을 잡았지만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꼼수에 속수무책이었다. 4.15 총선에서 실패하고 심 대표는 스스로 당권을 내려놓았고 당 혁신의 배를 띄웠다. 

그동안 정의당의 운명은 노심에 달려 있었는데 노 의원의 부재로 심 대표에게 모든 짐이 맡겨졌다. 심 대표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심 대표는 24일 오전 국회에서 퇴임 기자간담회를 열고 “솔직하게 말씀드려 그동안 높은 산 정상에 홀로 서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 책임져야 할 무게도 가볍지 않았다”며 “이제는 그 짐을 후배 동료들과 나눠들고자 한다. 내가 대표직에서 조기에 물러나기로 결심한 까닭은 총선 결과에 대한 책임감 때문만이 아니다. 정의당 시즌2를 하루라도 빨리 선보이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홀로 산 정상에 있는 것 같았다고 소회를 밝힌 심상정 대표. (사진=연합뉴스)

모두발언에서 이런 소회를 풀어놓은 것은 아직도 정의당에는 심상정 밖에 없다는 세간의 평가를 의식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4기 대표를 맡았던 이정미 전 의원이 나름대로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총선(인천 연수을)에서 쓴맛을 봤다. 진보정당 소속으로 지역구를 뚫을 수 있는 정치인은 심 대표 밖에 없게 됐다. 그래서 차기 리더십을 키우는 일에 박차를 가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

심 대표는 “이번 선거를 통해 탄생하는 새 지도부는 누가 되더라도 진보정치 2세대 지도부가 될 것이다. 정의당 시즌2를 여는 혁신 지도부가 될 것”이라며 “진보정치 1세대와 3세대를 연결해 줄 튼튼한 교량으로써 거대 양당과 차별화된 세대 연대의 팀 정의당을 완성시켜나가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재 정의당 6기 지도부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배진교 의원, 박창진 갑질근절특별위원장, 김종민 전 부대표, 김종철 전 선임대변인이 4파전으로 경쟁하고 있다.  

심 대표는 본인 세대가 1세대, 6기 지도부 후보군이 2세대, 류호정·장혜영 의원 등 청년 정의당 세력이 3세대라고 분류했다. 

관련 질문을 받고 심 대표는 “다른 거대 양당에서는 볼 수 없는 세대 연대로 총화되는 탄탄한 팀 정의당을 만들어낼 것”이라며 “1세대, 2세대, 3세대가 시스템적으로 팀 정의당을 이룬다면 정의당의 이름으로 많은 리더십들이 성장해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심 대표는 그것이 “2세대 리더십에게 부여된 과제”라고 설정했다.

이어 “정의당에 대해서 걱정하는 분도 있고 또 심상정 이후에 대안이 있느냐라는 질문도 하고 있는데 나는 기우라고 생각한다”며 “봄에 씨를 뿌려서 봄에 수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씨앗을 뿌리고 있다. 재난 시대를 헤쳐나갈 그런 청년 정치인 풀을 만들고 있고 그 어느 정당보다도 재난 시대를 극복할 비전을 갖추고 있다”고 어필했다.

(사진=연합뉴스)
기자들과 주먹 인사를 하고 있는 심 대표. (사진=연합뉴스)

심 대표는 2019년 초 군소정당 시대를 끝내고 유력정당으로 첫 발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2018년 연말 이정미·손학규 전 대표의 단식으로 5당 선거법 처리 합의문(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을 관철해낸 상황이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든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을 바꿔내서 원내 교섭단체가 되겠다는 포부였다. 

그러나 실패했다. 

심 대표는 “제일 아쉬운 것은 교섭단체 대표 연설 못 하고 갔다. 그게 제일 아쉽다.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그만뒀어야 하는데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만 하고 가서 그게 참 아쉽다”고 말했다. 

21대 국회 구성은 오히려 20대 때보다 거대 양당의 점유율이 더 높아졌다. 제3지대(구 국민의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는 초토화됐고 6석의 정의당이 제3당이 됐다.

심 대표는 “혼신의 힘을 쏟아 부어 이뤄낸 개정 선거법은 실현되지 못 했다”며 “개혁 공조로 천신만고 끝에 일군 제도적 성과가 기득권 공조에 의해 유린된 과정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뼈아픈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총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보내준 9.67%(269만7956표) 지지율의 의미는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의 애정을 담은 지지가 총선 실패나 작은 의석수에 가려져서는 안 될 것”이라며 “개혁 공조로 이뤄낸 성과를 결국 기득권 공조로 유린하는 결과에 대해서 참으로 큰 회한이 남는다”고 토로했다. 

비례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에 직접적인 피해를 본 정당은 정의당과 국민의당이다. 민생당도 아깝게 봉쇄조항 3%(2.71%)를 넘지 못 해 원외정당 신세가 됐다. 현재 정의당과 민생당은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내고 위성정당의 위법성을 판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심 대표는 “비례위성정당이 다시는 정치개혁의 성과를 유린하지 않는 그런 후속 조치가 국회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정치개혁을 좌초시킨 민주당에서 결자해지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미 비례민주주의연대는 지역구 출마자 비율만큼 비례대표 후보를 의무적으로 내도록 하는 방안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민주당이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해 스스로 나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거대 양당은 승자독식 선거제도에 애착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 대표는 “정치개혁의 필요성은 오히려 더 절실해졌다”며 “다시 한 번 신발끈 조여 매고 초심으로 돌아가 정치개혁의 길로 다시 나설 것이다. 낡은 양당체제를 극복하고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고단한 시민들의 삶의 복판에 정치를 세우겠다”고 공언했다. 

(사진=연합뉴스)
선거제도 개혁의 완수를 다짐했다. (사진=연합뉴스)

심 대표는 자기 임기 때 이뤄놓은 성과들로 △청년 전략 명부 도입과 청년정의당 출범 △그린뉴딜위원회 발족 등을 꼽았다.

사전에 선착순으로 뽑힌 8명의 기자들은 현장에서 다양한 질문들을 던졌다. 

심 대표는 △탈당 규모 △대선 출마 계획 △김미석 대전시당 서구지역위원장 후보의 극단적 여성주의 배제 구호 논란 △재보궐 선거 공천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 등에 대해 견해를 피력했다. 

먼저 탈당 문제에 대해 심 대표는 “규모도 과장돼 있고 탈당의 사유도 좀 복합적으로 본다. 어쨌든 당대표로서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故 박원순 서울시장 조문 전후 탈당과 관련 당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조문을 둘러싼 입장의 대비나 갈등보다는 당론과 또 다른 개별의 의견들을 서로 조율하고 소통하는 과정에 부족함이 컸다”고 고백했다.

대선 출마 의사에 대해서는 몸을 사렸다. 

심 대표는 “(향후 계획에 대해) 지금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대표를 졸업하는 일이고 차기 지도부가 들어서서 탄탄하게 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현재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서 대선 출마 여부 자체에 코멘트를 내놓지 않았다. 

사실 심 대표의 정치적 커리어를 봤을 때 이제는 진보정당의 집권 외에 다른 게 없다. 더구나 출마를 안 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니 2022년이 다가올수록 출마 준비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월 성현 전 혁신위원은 당 혁신안 발표 현장에서 심 대표와 혁신위원회 자체를 비판하면서 여성주의 노선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런 맥락에서 박창진 후보 등 참여계가 안티 페미 노선으로 기울고 있는 분위기다. 김미석 후보는 노골적으로 극단적 여성주의와의 결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에 대해 심 대표는 “우리 당내에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씀드린다. 다만 페미니즘 내용의 이해 정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정의당의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정의당의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특별한 특권을 부여하라는 것이 아니라 긴즈버그 대법관도 말했듯이 그동안 여성의 목을 짓누르고 있는 불평등을 치워야 한다는 것이 정의당 페미니즘”이라며 “선거 기간 중에 나온 특정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는 우리 당원들이 우리 당의 페미니즘에 대한 상식을 기초로 잘 평가하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심 대표는 대선 출마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시장·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대해서는 “6기 지도부가 더 깊은 고민을 할 것”이라면서도 “당연히 정의당은 후보를 내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공언했다.

민주당 광역단체장들의 성범죄 논란으로 치러지게 된 보궐 선거이니 당헌당규상 무공천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심 대표는 “스스로 정한 당헌을 지키는 게 책임 정치”라면서 “일각에서 노회찬 대표의 사후에 창원 성산에 정의당이 후보를 내는 문제가지고 반박하는 것을 봤는데 가당치 않다. 노회찬 대표의 죽음에 대해서 여야 모든 정치인들이 두루 안타까움을 표했고 그래서 국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진 사안”이라고 일축했다.

(사진=연합뉴스)
8명의 기자들만 참여해서 소규모로 진행된 퇴임 기자간담회. (사진=연합뉴스)

양당 위주의 정치 질서에서 정의당은 매번 민주당 2중대론에 시달려왔다. 6기 지도부 후보들은 박창진 후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민주대연합 및 2중대론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심 대표와 노 의원도 그런 노선 차이가 있었다. 심 대표는 민주당의 기득권을 견제해야 하는 쪽이었고 실제 2018년 지방선거 직전 개헌 정국 때나 조국 사태 때 그런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심 대표는 “민주당과의 관계에 대해서 특별히 고려하고 있는 것은 없다. 지금 정의당은 국민과의 관계 설정에 주력할 때”라며 “지난 20대 국회에서 민주당과의 개혁 공조는 불행한 기억밖에 없다”고 표현했다. 

이어 “(촛불 정부를 내세워서 집권한 뒤에) 화마로부터 강원도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전국 소방차를 강원도로 보내는 그런 나라, 또 코로나19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나라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2400명씩 죽어가는 산재 노동자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604명 이스타 항공 해고자들을 위한 나라도 없다. 또 민주당 정부가 (선거들에서) 승리로 끝날 때마다 폭등하는 집값 앞에서 집 걱정하고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그런 시민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나는 문재인 정부에게 가장 기대했던 것이 결국 내 삶을 바꾸는 나라였는데 국민의 삶이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주길 바란다. 불평등 해소에 대한 근본적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해충돌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의원들에 대해 심 대표는 △소관 부처 일원화 △공직자 윤리 관련 시스템 관리 등을 담은 법안을 20대 국회에 이어 곧 제출하겠다면서 “(제명 및 탈당으로는 부족하고) 당연히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사퇴하지 않는다면 여야 교섭단체 협의를 통해서 본회의에서 제명 처리를 추진해야 한다”며 “양당은 공천 주체이기 때문에 국회의원 자격 박탈까지 책임을 져야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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