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수필가/시인
박종민 수필가/시인

[중앙뉴스=박종민] 중년의 사내가 꽃을 들었다. 장미꽃 아니면 국화꽃? 그것도 아니라면 백합꽃? 사내가 들고 있는 꽃의 종류나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년에 꽃을 들었기에 꽃을 든 남자가 멋지다. 그 어떤 무슨 꽃인들 아름답지 않은 꽃이 있으랴. 산야에 피어난 이름 없는 들꽃도 예쁘고 아름답다.

꽃마다 고운 빛깔이 있고 고유의 향을 풍겨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하니 고운 빛깔과 풍미 그윽한 향을 한꺼번에 꼭 쥐어 든 남자 역시 색깔이 있고 풍미 있는 남자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 남자를 페미니스트로만 볼 수는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꽃에 대한 이미지를 여성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꽃을 좋아하고 꽃을 사랑한다고 해서 모두 다 페미니스트 아니다.

한때 노래방에서 유행가신청곡 1~2위를 기록했던 노래가 트로트 가수 최석준이 부른‘꽃을 든 남자’이다. 이 노래가 크게 히트 치며 대유행하자 ‘꽃을 든 남자’라는 이름의 화장품이 생겨 활황을 이뤄내고 ‘꽃을 든 남자’ 맘 클럽과 커피숍이 생겨 성황 중에 있다.

그로부터 청년이건 중년이건 장년이든 간에 남자에겐 꽃을 매개로 한 처신도 달라질 만큼 꽃과의 관계가 미묘하고도 절묘하게 가까운 사이가 됐다. 실제로 꽃을 든 남자는 그만큼 보기에도 좋고 멋들어진 것이다. 지난 수백 년간에 걸쳐 전통적 가부장제 중심으로 이어 내려온 우리 남성 위주의 가족사회 면면을 볼 때 획기적인 대 전환이 된 것이다.

남자가 꽃을 들다니! 속담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하더니 남자가 꽃을 든 이야기가 왜 여기서 나오는가? the man take flower의 이미지가 신선하다. 당신도 도전해보자. 도발이 아니다. 중년이 꽃을 들었다고 망발이나 망신당하는 게 아니다.

근사하고 뻑적지근하질 않은가! 의미가 색다르고도 멋질 수밖엔 없다. 완고한 어르신들 안목으론 불가한 사안이다. 그 외 다른 사람들도 색안경을 쓰고 어찌 보면 페미니즘으로 오해할 요소도 있다. 그걸 미화하잔 얘기가 아니다.

순수하고 서정적인 꽃과 남자의 자연스러운 이미 적인 관계라고, 말하겠다. 남자도 꽃을 들 수 있어야 하고 남자가 든 꽃이 더욱 멋지고 중후하며 아름답기 말이다.

우리의 일상이 생각처럼 늘 순탄치만은 아닐 것이다. 꽃과의 접속이나 접촉도 항상 여건이 조성되기 쉽질 않다. 그러니 반드시 꽃을 들지 않았더라도 꽃을 든 남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행동해보면 어떨까? 한 송이 장미꽃이나 한 다발 들꽃을 들고 있는 모습처럼 마음속에라도 섬세하고 고상하게 일거수일투족의 행동거지를 하면 될 터이다.

꽃을 든 남자를 칭찬하자! 그래야 암울하기만 한 우리의 일상이 환하게 꽃 피울 수 있다. 흔히 꽃을 여성에 빗대는 경향이 많으나 꽃 자체가 여성상은 아니다. 꽃에는 수꽃도 있으니 말이다. 음흉한 투의 생각을 품어 여성상을 꽃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여기서 주의할 게 있다. 남성들은 누구든 우월 중심적 자만이나 망상은 버리자.

직급이나 지위가 높다 해서 생물학적인 수컷 행세를 한다면 망신살이며 파멸이다. 잘못된 페미니즘을 가지고 상식 이하의 행각으로 개망신 치른 전국회의장 박모씨를 비롯해서 전 부산시장, 전 서울시장, 전 충남도지사 등등의 사례를 보자! 그 얼마나 추악하고 저급한 행태인가! 그런저런 맘 상하는 추한 꼴은 생각조차 말자.

가정이나 직장이나 꽃이 피어있다면 어느 종류의 꽃을 불문하고 사람의 마음이 감동할 수 있다. 경제 사회적으로 얼마나 힘겹고 고달픈 오늘인가, 나 스스로 위로받고 치환하며 보고 예뻐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 꽃이 아니던가? 인간은 영혼 속 깊이 색깔에 대한 심오한 정감을 지녔기 말이다. 꽃을 든 남자가 베리 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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