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론분열이 도를 넘었다
국론분열이 도를 넘었다
  • 전대열 대기자
  • 승인 2020.10.0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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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대기자
전대열 대기자

[중앙뉴스 칼럼=전대열 대기자]나라가 바르게 유지되는 것은 지도자들에게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제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언어로 대통령 수상 주석 등의 명칭을 쓰고 있지만 그것은 나라의 이념과 정치체제에 기인하는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명칭을 시용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상징성은 매우 크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는 대부분 대통령이나 수상으로 표현하지만 독재 공산주의 국가는 주석이나 총통 또는 서기를 애용하고 특이하게 북한은 위원장으로 표현한다.

이들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지도자인데 오랜 세월 갈고닦은 지식과 수양 그리고 인격에 따라 나라의 체통이 좌우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필두로 현 문재인에 이르기까지12명의 대통령을 배출했으며 4.19혁명 직후 내각책임제 하에서 국무총리가 실권자가 되었으나 5.16군사쿠데타로 단명으로 끝났다.

대통령이 되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방식이나 국정철학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제는 나라와 민족의 생사를 좌우하는 중대한 책임을 가지기 때문이다. 재야에 있을 때에도 직위에 따른 응분의 책임이 있었겠지만 대통령직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수많은 문제를 처리하는 자리다. 이를 과거나 다름없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면 자칫 혼란을 자초할 수도 있다. 그래서 청와대는 최정예 인사들을 참모로 초치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숨어있는 인재를 골라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다. 삼국지에 나온 사자성어로 삼고초려(三顧草廬)는 바로 인재를 모셔오는 방법을 말한다.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다. 이를 소홀하게 생각하여 ‘내 사람’만을 고집하다가 망한 사람이 한둘 아니다. 옛날부터 임금이 간신들의 세치 혓바닥에 놀아나 국정을 어지럽히다가 사화를 일으켜 국정을 혼란에 빠뜨렸다가 죽거나 귀양살이를 하지 않았던가. 이런 일들이 대명천지 현대에서는 과연 사그리 없어졌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더 극성스럽게, 더 간교한 방법으로 언필칭 코드인사는 자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재인정부에서 코드인사는 과거 어느 정권보다도 횡행한다. 국정실패의 정책 입안자로 지목된 사람을 다른 직책으로 돌리거나 더 크게 중용하는 일이 비일비재다. 이를 가리켜 시중에서는 회전문인사라고 부른다. 한번 써본 사람만이 제일이라는 인식이 꽉 박혀있는 것이다. 지난 4.15총선에서 이들을 대거 여당의 공천자로 만들어 국회의원으로 등장시키는 모습은 국민의 빈축을 샀지만 현실적으로는 압도적인 다수당이 되는데 기여했다.

물론 정치는 정당을 기초로 운영되는 것이어서 선거로 뽑히는 인사를 나물랄 수는 없다. 문제는 부정비리로 지탄을 받고 심지어 검찰의 기소까지 된 인사도 버젓이 공천을 받고 출마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이들이 국회의원으로서 과연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은 더 두고 볼일이지만 개꼬리 삼년 묵혀야 황모가 되지 않는다는 속담을 되뇌어 보게 만든다. 이들이 이번 조국과 추미애사태 그리고 북한의 해수부 공무원 사살사건에서 보여준 행태는 국민의 불신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조국일가의 부정비리는 그들의 전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회부되어 일부 유죄판결까지 받고 있으나 그를 비호하는 일부 국회의원과 무책임한 문빠와 대깨문들은 만사제폐하고 조국백서까지 발행하여 날개 짓을 멈추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조중권 서민 권경애 등 과거 진보좌파에 서 있다가 그들의 완장 질에 넌덜머리를 낸 이들이 조국흑서를 발행하여 베스트셀러로 우뚝 선 것은 권력에 저항하는 지식인의 참 모습이다. 추미애 아들의 병역문제는 검찰의 수사가 마무리되어 일단 불기소로 결정났다.

검찰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놓고 인사권으로 칼자루를 든 추미애를 당할 장사는 아무도 없다. 그가 왕년에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가졌던 것이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음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 태어난 ‘안중근’을 목격하고 헛웃음을 웃는다. 안씨종친회까지 들고 일어났다. 그래도 막무가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이런 판에 끼어든 사건이 북한에서의 공무원 사살이다. 김정일은 예상을 뒤엎고 날쌔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대통령부터 국정원장 장관에 이르기까지 모두 감동을 먹은 양 이례적이라고 환영일색이다. 어떤 국회의원은 “월북자는 사살하기도 한다.”고 북한을 두둔한다. 군에서는 감청을 통하여 사살과 불태움을 확인하고 있는데 이를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는 참으로 안보불안의 불씨로 번질까 걱정이다. 왜? 누구 때문에? 뭣을 위해서? 우리는 신뢰를 저버리고 불신과 갈등 분열만을 좆고 있는가? 지도자가 답할 차례다.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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