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도주했을까
스스로 음주운전의 중대성 인지
수많은 인명 사고 낼 뻔 했어
음주운전은 잠재적 살인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끔찍한 일이 또 벌어졌다. 술에 취한 운전자 알파씨가 신호대기 중인 차량 2대를 들이받았고 그대로 도망갔다. 알파씨는 결국 시민들에 의해 붙잡혔지만 그의 도주극은 살상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야말로 위험천만했다. 

알파씨가 음주운전 범죄를 저질렀던 시간은 3일 새벽 1시였다. 장소는 광주광역시 광산구다. 

알파씨는 스스로 알고 있었다. 술먹고 운전한 뒤 차를 들이받으면 바로 상대 운전자에게 들통이 날 것이고 그게 무거운 처벌을 받을만한 큰 잘못이라는 것을 말이다.  

알파씨는 주택가에서 추격하던 시민들에 의해 포위됐지만 또 후진하면서 도주를 시도했다. (캡처사진=비디오머그)

4일 저녁 출고된 SBS <비디오머그> 보도에 따르면 제보자 A씨는 반대편 도로에서 운전 중이었다. A씨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냥 도주하는 알파씨에 대해 음주운전 아니면 무면허 운전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뺑소니범은 통상 보행자를 치어서 중대한 부상을 입혔을 때 사후 책임이 두려워서 도망가기 마련이다. 단순 접촉 사고인데 도망간다는 것은 거의 대부분 운전 자체에 하자가 있는 경우다.

A씨는 “사고 조치를 할줄 알고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가 역주행을 하면서 도망가기 시작해가지고 이건 음주 아니면 무면허다 생각을 해서 쫓아 따라갔다”며 “추격하면서 계속 도주하길래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어디냐고 물어봐서 옆에 주위에 있는 큰 건물들 주유소나 웨딩홀 등을 말했다”고 밝혔다.

A씨는 신호에 걸려 멈춰있는 알파씨의 차량 바로 옆으로 접근해서 멈추라고 소리쳤지만 알파씨는 계속 도주했다. 

A씨는 “알파 차량에 오른쪽 앞바퀴 타이어가 터져서 나중에는 가다가 타이어가 찢어져서 휠로만 달렸다”고 설명했다.

역주행을 감행했던 알파씨. (캡처사진=비디오머그)

그럼에도 알파씨는 계속 도망갔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걸 덮기 위해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하듯이 한 번 도망간 뒤로 8분간 도주극을 벌이게 된 것이다. 알파씨는 비상등을 켠채 주행했고 또 다른 차량도 알파씨를 따라붙었다. 알파씨는 가로등도 없는 어두컴컴한 도로에 진입했고 때마침 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너무나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몇분간 도심을 헤집고 다니다가 상가와 주택이 오밀조밀 밀집해 있는 골목길에 들어섰다. 

알파씨는 필로티 건물 주차장에 주차돼 있는 승합차를 또 들이박은 뒤에야 멈춰섰다. A씨를 비롯 추격하던 시민들이 차에서 내려 알파씨의 차량으로 접근했는데 그 순간 다시 차가 움직였다. 결국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 알파씨는 A씨에게 “본인 일 아니면 신경쓰지 말아달라”고 말했지만 시민들은 그를 붙잡았고 경찰에 인계했다. 

경찰 조사 결과 알파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신 후 음주운전을 했다. 혈중알콜농도는 면허 취소(0.08% 이상)까지는 아니었고 면허 정지(0.03%~0.08%) 수준이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큰 부상자는 없었다. 그러나 알파씨는 사실상 도주극 와중에 보행자를 얼마든지 죽게 만들 수도 있었다. 새벽 시간대지만 초등학생이나 노인이 걸어가고 있다가 참변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다. 추격하던 시민들이 차에서 내려 접근했을 때도 차를 움직였으니 그야말로 살인 및 상해미수의 고의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월18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한 도로에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이 음주운전 단속을 벌이고 있다. (사진=경기남부지방경찰청)

그래서 음주운전이 무섭다. 알파씨도 안 걸릴 것 같아서 음주운전을 했지만 걸리게 되면 두려움에 직면한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칼로 사람을 찌르거나 지나가는 여성의 신체부위를 의도적으로 만지면 그 순간 피해가 발생한다. 그러나 음주운전은 술먹고 운전을 하는 순간 바로 피해가 동반되지는 않는다. 술먹고 운전대를 잡아도 조금 비틀대면서 주행을 했을망정 음주단속에 안 걸리고 사고를 안 내면 그 자체로 음주운전 범죄자에게는 아무 데미지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반복된다. 스무번 음주운전을 해서 한 번 데미지가 오는 수준으로는 음주운전이 근절될 수 없다. 한 번 했을 때 무조건 걸린다는 인식이 생길 정도가 돼야 한다. 

송수연 도로교통공단 미래교육처 차장은 9월17일 방송된 KBS <열린토론>에서 “음주운전이란 게 사실 문제는 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처음에 결정을 할 때는 어려울 수 있다. 단속되면? 사고나면? 이런 두려움을 갖는데 실제 그게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어떤 순간에는 위험과 마주하지 않는다”며 “그니까 혼자는 위험할 수 있지만 사고의 상대가 있거나 단속이 있거나 바로 행위 자체가 그런 걸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다보면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내가 해봤는데 별로 문제가 없더라는 것들이 다음 결정을 빠르게 쉽게 반복적으로 하다가 단속되고 사고를 경험하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며 “그 이전에 우리가 하지 말아야 된다고 하는 원인들을 빨리 만날 수 있는 상황 예를 들면 음주운전을 하면 많이 단속이 된다거나 사고를 어떻게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쨌든 그 행위에 대한 처벌이라든지 본인들이 두려워할 것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직까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진행을 맡은 정준희 한양대 교수도 “실제로 했는데 안 걸린 게 특이한 상황이어야 하는데 안 걸리다가 걸렸네? 아! 그런 심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호응했다.

송 차장은 “(단속에 걸리면) 나는 재수가 없고 운이 좀 안 좋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창호법 제정을 위해 나섰던 故 윤창호씨의 친구들도 “음주운전은 살인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이유가 이와 같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살인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포텐셜에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자는 주장이다.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에서 치킨 배달을 하던 50대 가장을 치어 숨지게 한 음주 운전자 A씨가 14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중구 중부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2020.9.14
을왕리 음주운전 범죄자가 9월14일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인천 중부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찌됐든 2018년 9월 윤씨의 비극 이후 윤창호법이 제정되어 어느정도 음주운전 발생률을 낮추기도 했지만 올해 9월9일 터진 인천 을왕리 음주운전 사망 사건 전후로 여전히 중대한 음주운전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을왕리 음주운전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을 대리하고 있는 법률사무소 ‘안팍’은 9월22일 입장문을 냈다. 

기본적으로 유가족이 수많은 언론들의 접촉에 일일이 응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내용이지만 안팍은 “(유가족은)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고취되어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자신의 가정에 닥친 비극이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의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가해자들이 응분의 처벌을 받는 그날까지 함께 해주시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한재현 조교수는 9월28일 경북신문에 특별 기고를 싣고 “윤창호법 시행 후 1년이 지난 현재 을왕리 벤츠 음주운전 사고 등 음주운전이 다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음주운전 의식 변화는 아직 미흡해 보인다”며 “사회적 이슈로 생긴 의식 변화가 일시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슈가 수그러들고 우리에게 멀어지더라도 음주운전은 하면 안 된다는 의식은 계속 남아있어야 한다. 언제든 사망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음주운전 사고의 심각성을 보았을 때 음주운전은 절대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의 빠른 정착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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