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할 때만 정의로운 척하고
한 번도 적용 못 하고 폐기한 당헌
장태수 정의당 대변인의 논평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지적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보궐 선거 공천을 하기 위해 당헌 개정 작업에 돌입했다. 그 명분으로 전당원투표를 거치도록 했지만 지도부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비난의 몫을 분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장태수 정의당 대변인은 1일 논평을 내고 “당헌 개정을 위한 민주당 당원투표가 오늘 오후 6시 마감된다”며 “투표 결과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 투표가 정치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당은 소속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치러지는 선거에서는 이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당헌 96조 2항을 통해) 약속했다”며 “쉽게 할 수 없는 약속이었고 칭찬할만한 일이었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제1당이 된 것도 이 약속에 유권자들이 호응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장태수 대변인의 모습. (사진=장태수 대변인 페이스북)

민주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조국 전 법무부장관 등을 영입해서 혁신위원회를 꾸렸고 거기에서 자당의 귀책 사유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되면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당헌 조항을 제정했다. 칭찬받을만한 내부 규정을 만들고 정의로운 척 코스프레만 해놓고 최초로 적용될만한 사례가 나오자 룰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장 대변인은 “지금에 와서 후보를 공천하지 않아 생기는 당의 손실을 걱정하면서 유권자들이 호응한 약속을 깨뜨리고 있다”며 “자기 당 소속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입은 유권자의 손실, 성비위 피해자와 연대자들의 상처, 지지를 보낸 유권자들의 실망, 시민들의 신뢰 상실, 보궐선거 시행에 따른 재정 투입 등은 외면하는 당헌 개정 투표를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책임 정치라는 약속 어음을 발행하고는 상환 기일이 돌아오자 부도내는 행태다. 어음 발행 당사자는 뒤로 쏙 빠지고 어음에 보증을 선 당원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모습은 민망하다”며 “오늘 오후 6시는 한국 정치에서 말의 가벼움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말의 가벼움이 정치의 가벼움으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정의당은 민주당의 부도 어음을 규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단한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정치의 무게를 갖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실제 정의당은 선거의 스케일이 다르겠지만 4.15 총선 당시 시행된 서울시 서대문구의회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았다. 당 부대표를 겸직하고 있던 임한솔 전 서대문구의원이 총선 출마를 시도하기 위해 구의원직을 사퇴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거대 양당과 달리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당선자를 내는 것이 정말 힘겹다. 이미 당선자를 낸 곳에서 공천을 하지 않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그러나 정의당은 책임 정치를 위해 후보를 내지 않았다.  

차라리 민주당이 그때 연전연패를 하던 상황이라 “멋있는척” 하기 위해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더 낫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오른쪽)은 민주당이 애초에 지킬 수 없는 당헌을 만들어서 멋있는척을 했다고 지적했다. (캡처사진=MBC)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10월31일 방송된 MBC <정치인싸>에서 “당헌당규 96조 그 조항은 애초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이다. 故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같은 일이 안 생기도록 앞으로 윤리 검증을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뭘 강화하겠다는 것인가?”라며 “이건 애초에 안 되는 것이다. 안 되는 걸 공약해서 혁신위에서 발표하면서 본인들이 좀 더 도덕적인양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만약 범죄 이력을 (검증)하는 것이라면 사전에 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어떻게 검증하는가? 나는 이거 당헌을 아예 없애는 게 맞다. 이번에도 이상하게 뒤에 단서 조항 같은 것을 달아서 전당원투표로 회피할 수 있다고 이런 식으로 하는데”라며 “지금이라도 애초에 저희가 좀 멋있어 보이려고 했던 그 당헌이 잘못된 당헌이라고 시인하는 게 맞다”고 제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고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현 법무부장관)도 그렇고 과거에 보궐선거의 귀책 사유를 제공한 정당이 상대당일 때에는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민주당이 실시하고 있는 전당원투표의 제안문. (제안문=민주당 홈페이지)

추 전 대표는 2017년 3월22일 4.12 보궐선거(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후보자 공천장 수여식에서 당시 자유한국당 김종태 전 의원의 아내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해서 성립된 선거라는 점을 거론하며 “(한국당은) 후보를 내지 않아야 마땅하다. 유감스럽게도 자유한국당은 애초 무공천 방침을 바꿔서 다시 공천하기로 어제 결정했다고 한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행태가 아닐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는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과 심판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를 역임하던 2015년 10월11일 경남 고성군에 방문해서 “새누리당은 재선거의 원인 제공자이기에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분명 귀책 사유 정당의 무공천을 도덕적 가치로 상정해서 상대를 공격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해왔다. 

이 전 최고위원은 “과거 문 대통령께서 고성군수 선거에서 이 사안을 언급하면서 비용 문제를 얘기했다. 이렇게 불미스럽게 고성군수가 물러나서 새누리당 때문에 몇십억원의 비용이 발생했다고 하는데”라며 “이번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를 보니까 800억원 넘는 비용이 발생한다. 옛날에 한나라당은 대선 자금 받은 것 때문에 당사도 팔아서 돈도 갚고 그랬는데 이번에 민주당이 그 중에 10분의 1 정도 국가에 헌납하는 자세를 보이는 게 어떨까”라고 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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