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기 →1960년대 탁주와 약주 제조에 잡곡을 혼용하도록 제조법이 개정
부흥기 →전통문화 계승과 88 올림픽 등, 관광산업 육성으로 빛을 보기 시작
1995년, 개인의 자가소비를 위한 주류 제조가 가능...100여 년간 단절되었던 전통 가양주 문화 부활

최근들어 전통주에 관심을 두고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류시장에 출시되는 우리술이라고 불리우는 전통주들은 다양한 스타일로 변화를 주면서 애주가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있다. 특히 우리술은 단순히 전통만 고집하거나 ‘오래된 것’만을 두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전통주를 지키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이라 생각되어 이번 시간은 제 1편, 우리술의 탄생과 발전, 제2편, 전성기와 암흑기에 이어 우리술의 역사 마지막 시간으로 우리 술의 정체기와 부흥기에 대한 이야기다.

<중앙뉴스>는 윤경옥 소믈리에(Sommelier)가 알려주는 '와인'이야기에 이어 윤경옥의 전통주이야기도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 소유자인 윤경옥 전통주 소믈리에(Sommelier)는 (사)한국소믈리에협회 와인강사이자 식음료협회 와인 Sommelier 심사위원이다.

윤경옥 전통주 소믈리에(Sommelier)
윤경옥 전통주 소믈리에(Sommelier)

지금까지 우리 술의 역사인 제 1탄(탄생과 발전)과, 제 2탄(전성기와 암흑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이번 시간은 우리술의 마지막 시간(3탄)으로 우리 술의 정체기와 부흥기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1950년대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해방이 된 이후, 술에대한 종가세(술의 가격에 따라 세율을 정하는 조세)를 도입하고 과도한 종량세(술의 무게나 용량에 따라 세율을 결정하는 조세)를 부과하게 되면서 밀조주가 성행했다.

술(Alc0hol)은 언제부터 만들어지고 언제부터 음용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이야기할 순 없다.
술(Alc0hol)은 언제부터 만들어지고 언제부터 음용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이야기할 순 없다.

또한 먹을것이 없는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면서 1960년대 탁주와 약주 제조에 잡곡을 혼용하도록 제조법이 개정되면서 나라에서는 쌀로 술을 빚는 것을 제한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쌀이 아닌 보리나 옥수수, 밀가루로 술을 빚게 된다.

보통 이 시대에 밀가루나 보리 등으로 술을 빚게 되어서 술의 품질이 낮아졌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이것은 밀가루로 술을 빚었기 때문에 술의 품질이 낮아진 것이 아니다. 술의 원료가 되는 밀가루 자체의 품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러한 편견이 술의 품질이 낮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결국 우리 술을 순수한 쌀로 빚어서 마시지 못하게 되었을 뿐 만 아니라 무분별한 밀주 단속으로 소규모 가양주 형태로 명백을 유지해 오던 전통주가 단절되게 되었다.

1970년대 무분별하게 난립되어 있던 주류업체에 대한 정리가 국가 차원에서 이뤄지지면서 주조사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때 우리의 전통주였던 명약 주를 새로운 주류로 분류하여 한국의 고유한 술로 연구, 개발하였고, 이러한 우리의 명약주를 통한 관광진흥을 위한 도구로써 활용하는 최초의 시도들이 이루어졌으며, 주류업체들은 위생적인 측면이나 과학적인 주조 방법을 도입하는 등 좋은 품질의 술을 만들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이 시기는 점차 외국에서 맥주와 위스키 등 다양한 술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외국술과 희석식 소주가 우리 생활 속에 점차 자리 잡게 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대 접어들면서 대기업 중심으로 맥주와 희석식 소주의 생산량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또한 우리 술과 관련해서 전통문화 계승과 국제적인 행사(88 올림픽 등)등을 위한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서 우리의 민속주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우리의 전통주는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부의 규제와 곡물 원료 사용제한 등으로 겨우 명백만을 유지하던 민속주를 1983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실시한 '전국 민속주 조사'로 어느 정도 우리 술의 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에서는 이 조사를 통해 문화재적 가치가 있고 보존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우리 술(서울 문배주/면천 두견주/경주 교동법주)에 1986년 11월 01일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주류 제조면허를 발급해서 생산 판매하게 되었다.

1993년 '농수산물 가공산업 육성법'에 의해서 주류 부분에 전통식품명인제도가 도입되면서 자랑스러운 우리 술의 명백을 이어오신 명인님들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1995년부터는 개인의 자가소비를 위한 주류 제조가 가능해지면서 100여 년간 단절되었던 우리의 전통 가양주 문화가 또다시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게 되었다.

1999년에는 비살균 탁주의 공급구역이 시·군의 행정구역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것은 소수의 주류업체들에게 특정지역에서의 독과점하게 하는 결과가 되었고, 이것은 결국 서로 경쟁하지 못하는 독과점 주류업체들의 개선되지 않는 우리 술의 품질문제가 제기되면서 주세법 개정안이 이때 통과하게 되고, 2000년부터는 비살균 탁주의 공급구역 제한이 풀려 이제는 소비자가 원한다면 전국 어디서든 지역의 전통주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mbn방송 캡처
mbn방송 캡처

2000년대 중반 이후 한류 열풍과 함께 웰빙 Well-Being트렌드는 막걸리를 유행시키는데 한몫을 하게 된다.

이러한 막걸리 붐으로 우리 전통주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뤄지게 되었고, 우리 술을 세계적인 명주로 육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다양한 전통주의 마케팅이 강화되고, 한식과 연계한 프로모션, 양조기술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2010년도 이후 다양한 제조 교육과정이 활성화되고, 각종 주류 관련 축제 및 품평회 등이 진행되면서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해가 갈수록 매해 열리는 주류 박람회의 전통주 부스는 점차 늘고 있는 추세이며, 이와 함께 전통주 소믈리에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도 한국의 전통 증류소주들은 많은 칵테일 BAR, 레스토랑에서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매해 국가대표 바텐더들은 국제대회에서 우리의 전통주를 베이스로 한 멋진 칵테일들로 우승을 거머쥐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전통주가 더이상 고리타분하거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들이 즐기는 술이라는 인식이 점차 줄어들면서 우리 국민 모두가 즐기수 있는 술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우리의 술(전통주)이 건강하고 이야기가 있는 술로 남녀노소 누구나 폭넓게 사랑을 받으며 외국의 어느 술과도 당당히 견주어도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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