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대중과 함께한 원로배우...다방면서 활동한 이력 주목 받아
백상예술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명품배우

[중앙뉴스=윤장섭 기자]반세기 동안 대중과 함께한 국민배우이자 원로배우인 송재호씨가 향년 83세의 나이로 7일 별세했다. 故人의 사망 원인은 1년 이상 앓고 있었던 지병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배우 고(故) 송재호, 연합)
(사진=배우 고(故) 송재호, 연합)

故 송재호씨는 1937년 평양에서 태어나 6.25 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월남했다. 동아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1959년 KBS 부산방송총국의 성우로 입사를 한 뒤 이후 데뷔했고 이후 1964년 영화 '학사주점'을 시작으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8년에는 KBS 특채 탤런트로 선발되었다. 방송 연기자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故人은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1981)와 드라마 1980년대에 높은 인기를 누린 '보통사람들', '열풍', 그리고 김수현 각본의 '부모님 전상서'(2004~2005) 등의 대표작이 있다.

부산에서 오래 살았던 故人은 부산 사투리를 잘 구사하고 또한 고향이 평양이어서 평양 사투리도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실제로 영화 용의자에서 이북 출신 기업 회장 박건호 역으로 등장해 평앙말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50년 넘게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고인은 2017년 개봉한 영화 ’길‘에서 김혜자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하며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고 2019년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질투의 역사‘ 등 원로 연기자의 내공이 담기 연기를 보이기도 했다.

故人은 지금까지 △1967년 영화 ‘싸리골의 신화’,  △‘눈물의 웨딩드레스’(1973년), △‘영자의 전성시대’(1975), △‘별 하나 나 하나’(1976), △‘사랑의 계절’(1977), △‘사랑의 조건’(1979), △‘열애’(1982), △‘이중간첩’(2003), △‘살인의 추억’(2003),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 △‘화려한 휴가’(2007), △‘해운대’(2009), △‘타위’(2012), △드라마 ‘113 수사본부’(1973), △‘귀향’(1978), △‘눈동자’(1981), △‘TV 춘향전’(1984), △‘사랑이 꽃피는 나무’(1987), △‘용의 눈물’(1996), △‘왕과 비’(1998), △‘명성황후’(2001),
△‘장희빈’(2002), △‘부모님 전상서’(2004)‘, △’내 남자의 여자‘(2007), △’싸인‘(2011), △’동네의 영웅‘(2016)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1982년에는 제18회 백상예술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특히 故人은 연기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서울호서예술전문학교 연기예술학부 교수를 역임하며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고 ’문화재사랑 어린이 창작동요제‘ 홍보대사로 활동을 하기도 했고, ’제 4대 야생생물관리협회‘ 회장, 대한사격연맹 이사 등을 역임했다. 또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증을 소유한 이력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 때에는 클레이 부문 심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기독교 신자로 장로교회 장로이기도 하다

故人의 4남 1녀를 두었으나 막내아들이 2000년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때 故人은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을 앓기도 했다. 장남 영춘 씨는 故人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의 속편(1982년) 주인공으로 잠시 배우 활동을 하기도 했다.

부자가 한 작품의 전편과 후편 주연을 맡은 이례적인 케이스였으나 이후 영춘씨는 배우를 그만두고 현재 용인아멘교회 목사로 재직중이다. 故人은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수십년을 고생하기도 했다.

故人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됬으며 8일 정오부터 조문할 수 있다. 발인은 오는 10일 화요일이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