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canvas)공간서 보여지는 시간, 흐름, 두께, 그리고 조각난 기억의 흔적들
금보성아트센터 기획초대전...조현애 작가와 함께하는 시간여행으로의 초대

[중앙뉴스=윤장섭 기자]조현애 작가는 '시간'을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로 오랫동안 그림안에서 그녀만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루어 왔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시간의 구성"을 화폭에 담아낸다.

특히 그녀는 현대적인 인물과 한국전통적인 인물을 캔버스(canvas)공간으로 끌어들여 색다른 시간의 흐름을 펼쳐내고, 이렇게 표현된 낯선 시간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아득함 그리고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또 작가는 추상적이고, 대비적인 구성을 통해서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로 하여금 타임머신을 탄 듯 시공간을 환기시키게 만든다.

금보성아트센터 기획초대전... 조현애 작가의 'Time Layer'展(사진=조현애 작가)
금보성아트센터 기획초대전... 조현애 작가의 'Time Layer'展(사진=조현애 작가)

금보성아트센터 기획초대전인 조현애 작가의 'Time Layer'展은 11월 16일(월요일)부터 11월 25일(수요일)까지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가는 만추(晩秋)의 계절 가을...시공간을 초월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여행을 담은 조현애 작가의 작품 20여점이 관객들과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매일 매일 시간에 쫓겨 스스로에게 작은 시간조차 낼 수 없는 현대인들이라면 조현애의 'Time Layer'展을 통해 상상력의 공간에서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펴고 당신만을 위해 진정한 시간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현애 작가는 60대 여류화가로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학과 및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을 졸업하고, 장은선갤러리 외 20여회의 개인전을 가지며, 다수의 아트페어 및 단체전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작가는 현재 한국미술협회와 세계미술교류협회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조현애- 시간에 대한 감각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현상, 고정시킬 수 없고 가시화될 수도 없는, 부재하기만 한 순간들이 시간이다. 시간은 영원히 흘러가기만 해서 다만 기억 속에서 겨우 출몰한다. 기억은 불충분하고 온전치 못하기에 불구적이고 파편적으로만 떠오른다. 저마다 다른 시간의 경험은 그로인한 다른 기억과 두께를 형성해준다.

시간을 의식하는 것은 인간의 특수성일 것이다. 선형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지속, 그 연결선위에서 살아간다는 역사의식, 그리고 동시에 여러 개의 층으로 쌓여진 시간의 축적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한한 생명을 지닌 존재로서 한정된 용량의 시간을 의식하는 인간은 종말을 향해 치닫는 시간, 소멸되고 무로 돌아가 버리게 하는 시간의 잔인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유일한 종이다.

한 개인은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한 번뿐인 인생을 그때그때 특수한 상황, 특정한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 일반의 경험으로 결코 환원할 수 없는 것이 한 개인의 삶, 그의 시간이다.

이처럼 인간의 실존은 시간과 연동되어 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돌은 거기에 있다. 새는 살아있다. 인간만이 실존한다.” 이 시간에 대한 인식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자존하게 하는 편이다. 역사와 문화, 예술은 바로 이러한 시간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구성된 것이기도 하다.

 조현애의 그림은 ‘시간’에 관한 것이다. 작가는 이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오랫동안 다루었다. 시간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도해한 것이기도 하고 개별적인 시간의 인식을 시각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할 것이다.

미술사에서 시간이란 너무 익숙한 주제다. 문제는 시간에 대한 익숙한 개념과 이의 상징적인 이미지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경험된 시간에 대한 발언이고 그것의 형상화일 것이다.

화면에는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가 공존(조선시대 산수화, 풍속화 혹은 서양의 명화 등)하고 여러 층위의 공간들이 겹쳐져있다. 이는 다층적인 시간의 두께를 암시한다. 그 위로 시계태엽이나 시계바늘, 커다란 꽃잎 하나가 부유한다. 시간을 상징하는 일련의 기호와도 같은 이미지들이다. 주변으로 비행기나 고래, 자전거 탄 여자가 별처럼 떠 있거나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자갈처럼 박혀있다. 과거의 이미지와 현재를 암시하는 도상들이 한 공간에서 ‘초현실적’으로 조우한다.

여러 이미지들의 병치, 콜라주는 격렬하게 흐르는 시간에 의해 사라진 흔적들, 부재하지만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의 재림, 볼 수 없는 것들의 귀환이고 몸 없는 것들이 지르는 환청을 시각화한다. 사라진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면서 그 둘의 엇갈림과 겹쳐짐이 화면에서 미끄러진다. 

단일한 하나로 봉합될 수 없는 상이한 시간에 걸려있던 것들이라 작가는 여러 이미지를 불러 모으는가 하면 이질적인 방법론을 구사하고 있다. 사실적인 묘사와 단순하게 처리한 부위, 재현적 형상과 기하학적인 패턴, 서양화기법과 선묘중심의 동양화 방법론, 그림과 오브제(네온), 가상과 실제의 빛 등이 공존한다. 그것은 비균질적이고 불연속적인 시간의 힘에 따른 것이자 자신이 다루는 시간이란 주제를 효과적으로 가시화하려는 여러 시도에서 출현한다.

나로서는 커다란 꽃 잎 하나가 화면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누워있거나 수직으로 상승하는 그림이 좋다. 덧없이 떨어진, 몸체에서 순간 분리되어 허공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의 꽃잎은 시간에 종속된 존재의 은유 및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 꽃은 절정의 순간을 황홀하게 안기고 있지만 이내 소멸과 부재의 시간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부드럽고 흐릿한 색채와 하염없이 그 존재를 애무하는 듯한 붓질의 탄성에 의한 질감 처리가 주목된다. 그것은 마치 은밀하게 꽃잎의 살, 그 질감을 편애하는 부드러운 시선이고 그것을 촉각적으로 더듬은 눈이다. 또한 시간의 경과를 경험하게 하고 잔인한 시간의 행적을 목도시킨다.

그리고 그 시간이 주는 상처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한 존재의 찰나적인 느낌도 슬쩍 고여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미 이 커다란 꽃잎 하나만으로도 그림은 어느 정도 충분해 보인다.

주변에 배치된 오브제와 같은 이미지들의 감각적 구성이 그와 함께 하고 있다. 그림은 특정 주제를 너무 뻔하게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화살표나 특정 방향을 겨냥하는 손가락과도 같은 게 아니라 한 개인이 벼락처럼 경험한 시간에 대한 느낌, 그 농밀한 감각을 사건화 하는 일이어야 한다.

소재나 표현의 방법론 자체가 스스로 발화되어야 하는 것이 그림이다. 주제가 대신하는 게 아니라 표면 자체가 그대로 밀고 나와 보는 이의 망막에, 몸에 달라붙어야 한다.

작가의 근작은 막막한 공간에 기념비적으로 출현하는 꽃잎과 그 어딘가에 시간의 흐름이나 두께, 그리고 그것들이 껴안고 있는 여러 조각난 기억들에 대한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그림은 좀 더 간결하게, 회화적으로 보다 풍성하고 깊게 조율되어 나오는 선에서 고려되거나 그 지점으로 기우는 듯하다. 오랜 작업 시간의 누적만큼이나 다채로운 방법론과 여러 시도를 선보인 작가는 근작을 통해 설명적인 시간의 서술이나 익숙한 도상에 의한 연출에서 빠져나와 자신만의 감각으로 포착한 시간에 대한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풀어내려 한다.

자신만의 의미로 이룬 시간의 개념을, 시간에 대한 유의미한 체험을 그림의 표면에 실어 밀고 나가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