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초이에서 만나는 이창분 개인展

[중앙뉴스=윤장섭 기자]화폭 어느 한부분도 군더더기가 없이 색채가 투명하고 정갈하며 단순한 형태로 마치 조각가 브랑쿠지의 조각을 보는 듯 한 이창분 작가의 '남겨진 것 들'의 개인展이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갤러리 초이에서 2020년 11월 12일(목요일) 부터 12월 9일(수요일)까지 열린다.

이창분 작가의 '남겨진 것 들'의 개인展이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갤러리 초이에서 2020년 11월 12일(목요일) 부터 12월 9일(수요일)까지 열린다.
이창분 작가의 '남겨진 것 들'의 개인展이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갤러리 초이에서 2020년 11월 12일(목요일) 부터 12월 9일(수요일)까지 열린다.

이창분 작가의 한 줄기 햇살 같은 기도문

“그림은 색채로 뒤덮인 하나의 평면이다.”라고 정의한 사람은 프랑스의 화가 모리스 드니이다. 그러나 이 말은 이렇게 수정되어야 한다. “그림은 색채와 그리고 영혼으로 뒤덮인 하나의 평면이다”라고...

90년대 프랑스 체류 시절부터 보아온 이창분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 가슴 저미게 화폭 속에서 작가의 영혼이 읽히는 것은 드문 일이다.

작품 앞에서 내가 제일 먼저 받은 강렬한 첫인상은 “아, 지금 이 작가는 마음속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구나 ”그리고 이제 “철이 들었다”는 느낌이 그림에 드러나는 무욕의 비어있음과 순수함에서 부닥치듯 발견되었다. 화폭의 어디를 보아도 한 부분 군더더기가 없었기 때문이며, 더욱 모티브는 간결했고 색채도 투명하고 정갈했으며, 형태는 단순했다. 마치 조각가 브랑쿠지의 조각을 보는 듯 단순미의 아우라가 화면을 감싸고 있었다.

과거 이창분 작가는 비구상으로 출발했지만, 간헐적으로 구상적인 형태를 담아내면서 10년 단위로 조금씩 자신의 언어를 쉬지 않고 다듬어 왔다. 그리하여 이제 아주 분명하고 확신에 찬 자신의 말투와 화법으로 선언하고 있다. 특히 화면 전체에서 발견되는 단순미의 극치를 보는 듯한 혁신적인 변화가 그 차별성과 품격을 더하고 있었다.

화면 그 어느 구석에도 억지스러움은 없었고, 불편한 뒤엉킴이나 걸려 넘어지는 부분도 없이 너무나도 거침없이 평안하였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그녀의 작품 앞에 선다는 것은 색채로 빚어놓은 저녁 만찬에 아름다운 영혼으로 세팅한 축제에 초대받는 일이며, 그녀의 삶에 격하게 포옹하며 동행하는 일과 다름이 없었다.

작가의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작가가 그림 앞에서 하고 싶은, 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일이며 결국 작가의 그림에 대한 메시지를 해독하는 일이다. 그러나 때때로 그 해독이 무의미할 정도로 무력감이 들 때가 있다. 이창분의 작업을 수없이 들여다보면서 가진 솔직한 비평가의 심경이다.

결론은 그녀의 작업이란 혼탁한 이 세상에 마치 한 줄기 빛, 영롱한 아침 햇살 같은 것이기에 주석이 따로 불필요하다고 느낄 정도이다.

이창분 작가는 비구상으로 출발했지만, 간헐적으로 구상적인 형태를 담아내면서 10년 단위로 조금씩 자신의 언어를 쉬지 않고 다듬어 왔다.(사진=이창분 작가)
이창분 작가는 비구상으로 출발했지만, 간헐적으로 구상적인 형태를 담아내면서 10년 단위로 조금씩 자신의 언어를 쉬지 않고 다듬어 왔다.(사진=이창분 작가)

그녀의 작품은 오히려 삭막하고 궁핍한 현실에 지쳐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정갈한 새벽 기도문 같았다. 그래서 그녀가 그림 속에서 피워낸 이름 모를 꽃들, 작업 공간에 펼쳐진 붉은 색 양귀비꽃, 개망초꽃, 보랏빛 제비꽃, 블루 달개비, 그 꽃들이 건네준 색채로 한 글자씩 물들인 기도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다만 꽃들이 색채를 품고 있을 뿐, 이 모든 색채를 작가는 무엇이라 지칭하거나 지명하지도 않고 있다. 작가의 가슴속에 새겨진 사물이나 풍경을 붓들이 색을 담아 화폭에 옮겨다 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가 노트를 훔쳐 올 필요가 우리에겐 너무나 충분하다.
 

“색채에 대한 기억은 사물과 함께 온다.” 혹은 그 “사물에 쏟아져 내리는 빛이나 어둠의 깊이로부터 살아나기도 한다.” “나는 poppy 때문에 빨간색을 좋아하게 되었다.”라는 작가의 메모가 그의 그림을 대변한다. 이것만으로 보아도 이창분의 작품은 가슴 속의 진주 같은 눈물이 펼쳐놓은 맑은 침묵의 추상화라고 명명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나는 poppy 때문에 빨간색을 좋아하게 되었다.”라는 작가의 메모가 그의 그림을 대변한다.(사진=갤러리초이)
“나는 poppy 때문에 빨간색을 좋아하게 되었다.”라는 작가의 메모가 그의 그림을 대변한다.(사진=갤러리초이)

당연히 그 추상화의 생김새는 과감한 생략과 절제된 감성으로 추상화 화법으로는 단연 최고의 수준과 격조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창분의 기술은 그림에서 어떠한 정확한 질서나 형식이나 기호 내에서 규칙을 사용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모두 내려놓으며 그 순결한 마음을 펼쳐놓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아니면 작가는 앙리 마티스가 추구한 것처럼 “편안한 안락의자 같은 그림”이길 뜨겁게 희망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종종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면서 시각적인 즐거움과 희열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쥴스 올리츠키가 “나는 색(color)에 대한 어떤 이론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단지 나 자신을 놀라게 하고 싶을 뿐”이라고 한 맥락과 같이 색채로 즐거움을 주고 싶어 한 의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의 표면이 일러주는 사물에 대한 기억을 색채로 성립시키고 정의해주는 것이 이창분 작품 속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색채의 목적이며 실체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회화 속에 심어놓은 시한폭탄들은 너무나 심플하며 단아하고 꽃향기처럼 유혹적이고 중독적 파편들이어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 우리는 그의 화폭에서 “복잡한 세상의 한 구석을 물들이는 꽃잎들의 침묵”의 노래를 듣고 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모든 지식과 선입견을 내려놓고 무장 해제된 채 가슴의 모든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

작가는 그 앞에서 어느 화가의 명언을 들고 서 있다. “그림에 완성이란 없다. 과정만이 있을 뿐'이라고 했던 피카소의 말이다. ”그리고 흘러가는 것들의 덧없음과 변해가는 것들의 아름다움,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정처 없음을 바라본다.”라는 그녀의 덧없음의 철학을 그리기에 그녀는 이 모든 그림에 그리는 형식을 많이 달리하고 있다.

형태를 찾아 그것을 색칠해 나가는 형식이 아니라 칠해진 풍경의 색채를 흰색으로 지우거나 덮어씌우는 수고스러움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을 내려놓는 것을 터득해 나간다. 그리고 그녀가 숨겨놓았던 숨 막히는 삶에 주어진 상처의 통증을 흰색으로 뒤덮는 결정체가 바로 이창분의 작품이 된 것이다.

작가는 죽어가는 풀잎에서도 자연이 주는 향기를 맡고 있으며 거기에서 생명을 발견해왔고 그것이 화가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는 광합성을 한 식물처럼 그 모든 그것들로부터 받은 영혼의 힘으로 화폭을 마주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신기루 같은 삶에서 움켜쥔 것들은 모두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 버리고 만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고 그 진리를 그림으로 드러낸다.

‘물감이 무엇을 하는지’, ‘물감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캐물었던 올리츠키처럼 이창분은 색면의 작업을 통해 인생을 깨닫고 그 삶의 강물에서 이미지를 건져 내었다.

이제 그녀의 작품은 “ 단순하게 자연으로 부터 영감 받은 색채를 풀어서 그것이 꽃처럼 보이고, 들판처럼 보이고, 하늘처럼 보이도록 그리면서, 그것의 형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이 색채의 펼침을 통해 수 없이 살아있음을 마음속으로 확인하며 존재에 대해 성찰하는 중이다.

이제 우리는 비로소 그림이 손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그려진다는 것을, 그리고 색채가 자연에서 빌려온 것이라는 것을 이창분의 작업에서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한다.

캔버스의 표면을 아예 용해 시켜버리는 힘, 그녀의 간결한 언어인 부드러우며 날렵한 붓질, 매혹적인 색채의 심포니, 이것이 좋은 그림의 조건임을 이 그림들이 충분히 입증한 셈이다.

쥴스 올리츠키가 생을 마감할 때 마지막 유언으로, "다시 작업하러 가야해.(I have to get back to work)." 라고 했듯, 그러한 열정이 그대로 이창분 작가의 작품에서 발굴되는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그림이 “색채와 영혼의 아름다운 조화” 임을 증명하려는 그녀의 맑은 영혼의 메시지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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