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허풍쟁이의 하품』 펴낸 고경숙 시인

사진 / 고경숙 시인 제공
사진 / 고경숙 시인 제공

 

고경숙

 

  내 단골 미용실에 다 있다

 

  십 원 벌고 백 원 까먹던, 깨끗이 빨아 입히면 쪽 빼입고 계집질하러 다니던, 다리 힘 떨어지니 집구석으로 기어들어 와 삼시 세끼 더운 밥상 차려내라고 반찬 타박하는, 그 화상들의 새끼도 마찬가지여, 물어도 안 보고 털썩 애 낳아 안기고 가더니 생활비도 안 줘, 손목은 하루걸러 주사 맞는데 둘째 가졌다네, 그래도 어째? 새끼고 남편인걸, 항암치료자국 안나게 성근 머리 잘 가려줘, 파마약에 저 각시처럼 양념 좋은 거 많이 쳐달라고, 이런 날은 술빵이나 쪄먹어야지, 살아온 날이 억울해. 에이 믹스 커피 한 잔 더 줘 억울한데,

                              - 고경숙 시집 『허풍쟁이의 하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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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恨’이라고 하면 왠지 우리네 어머니들의 주름 진 한숨을 떠올리게 된다. 남성들도 한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 한이란 것이 여인들과 더 친하다. 그리고 그 한의 원흉(?)은 주로 남정네들 혹은 자식들이다. 위의 시는 우리가 살면서 한두 번 이상은 다 들어본 이야기이다. 여인과 머리카락은 불가분의 관계, 하얀 소복에 길게 늘어뜨린 흑발이 연상된다.

 나 역시 중년이 되면서부터는 동네 단골 미용실에 다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 사랑방처럼 온갖 이야기꽃도 피어나고 미처 몰랐던 귀가 활짝 열리는 헛소문도 얻어 담아오기도 한다. 머리를 하는 동안 떨어대는 수다! 그리고 믹스커피의 맛! 그 와중에도 수다가 덧나기도 할까봐 위험수위도 조절할 줄 아는 지혜도 있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코로나19’때문인지 며칠 전 들렀던 미용실이 썰렁했는데 원장 아줌니의 아들 자랑만 맘껏 들어주고 왔다. 오늘도 어느 동네 미장원에는 한을 지지고 볶고 잘라내며 웃음꽃들이 피어나고 있을 것 같은데 세월 흐름에 따라 이런 미장원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게 못내 아쉬움이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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