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KAIST AI 대학원’에 투입
지난해 한양대에도 30억원 기부
AI 접목한 한국형 스마트팜 운영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거꾸로 된 세계지도 앞에서 팔장을 낀 채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동원그룹)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거꾸로 된 세계지도 앞에서 팔장을 낀 채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동원그룹)

[중앙뉴스=김상미 기자] “인공지능(AI)의 세계적인 메카로 발전시켜 달라”며 김재철(85)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500억원을 기부했다.

김재철 명예회장은 지난 16일 대전 KAIST 본원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연차별로 AI 인재 양성을 위해 사재 500억원을 기부한다는 내용의 약정식을 했다.

김 명예회장은 “세계 각국이 AI 선진국이 되기 위해 치열한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며 “미국과 중국의 AI 특허 신청 건수는 각각 15만·14만건에 달하지만 우리는 4만건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AI 기술 발전을 위한 길을 고민한 끝에 우수한 교수진과 기초역량을 갖춘 KAIST를 떠올렸다”며 “카이스트가 선두 주자가 돼 세계적으로 저명한 교수들을 많이 모셔오고 석박사 과정 학생 수를 대폭 늘려 AI의 세계적인 메카로 발전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김 명예회장의 꿈 중 하나는 ‘대한민국 AI 강국’이다. AI 과학자와 산업, 서비스 응용 인력이 미국·중국 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에서 ‘AI 퍼스트’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KAIST에 기부한 것도 우리 AI 수준을 대폭 끌어올리지 않고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오른쪽)과 신성철 KAIST 총장이 약정식을 하고 있다. (사진=KAIST)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오른쪽)과 신성철 KAIST 총장이 약정식을 하고 있다. (사진=KAIST)

@ AI 분야 인재 양성과 연구에 사용키로

KAIST는 김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기부금 전액을 AI 분야 인재 양성과 연구에 사용하기로 했다.

KAIST는 서울 양재로 2023년까지 이전할 예정인 AI 대학원 이름을 ‘김재철 AI 대학원’으로 명명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춘 교수진을 확충해 2030년까지 전임 교원 수를 4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 대전 본원에 국내 최초로 개원한 KAIST AI 대학원에는 구글, 아이비엠 왓슨,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인 기업 연구소 출신 전임교수 13명 등 21명의 교수진이 있으며, 석·박사 학생 138명이 재학 중이다.

신성철 KAIST 총장은 “김 명예회장님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과 실천이 새로운 선진 기부문화를 만드는 데 마중물이 될 것”이라며 “KAIST가 AI 인재 양성의 세계적 허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사진=동원그룹)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사진=동원그룹)

@ 동원산업, 한양대와도 AI솔루션센터 설립

김 명예회장은 평소 AI 기술 확보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동원산업은 지난해 10월 10일 한양대와 손잡고 국내 최초 AI 솔루션센터인 ‘한양AI솔루션센터’를 열었다.

이 센터는 동원산업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30억원을 기부해 세워졌다. 초대 센터장은 삼성전자에서 AI개발그룹장을 역임한 강상기 박사가 맡았다. 한양AI솔루션센터는 제조공정·스마트IT·머신러닝·AI플래폼 분야 등 산업체에 도움이 되는 실용연구로 기업 대상 기술 자문, 솔루션 개발, 임직원 대상 AI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김 명예회장은 교육과 인재 육성에 관심이 크다. 앞서 김 명예회장은 지난해 8월 23일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명예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인재육성에 투자할 것”을 약속했다.

숙명여대는 “김 명예회장은 성실한 기업 활동과 정도경영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해 인재양성을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 등 남다른 교육철학을 보여줬다”며 “우리나라 경제, 산업, 교육 발전에 공헌한 공로로 명예 교육학 박사 학위를 수여한다“고 밝혔다.

인재육성과 교육에 관심이 많은 김 명예회장은 동원육영재단을 창립하고 장학 및 교육사업을 펼쳤다. 

김 명예회장은 창업 10주년이던 1979년 사재를 출연해 교육재단인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했다. 동원육영재단은 이후 40년 간 장학사업, 연구비지원, 교육발전기금지원 등 약 420억 원에 가까운 장학금을 통해 우리나라 인재육성에 힘쓰고 있다.

특히 동원육영재단은 2001년부터 10년 동안 동원컵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를 후원하며 공부하는 축구꿈나무를 육성했으며, 2007년부터 현재까지 어린이들에 그림책을 나눠주는 ‘동원 책꾸러기’ 운영을 통해 11만 명의 어린이들에게 그림책 130만여 권을 지원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질문·토론을 하는 등 전인교육 프로그램 ‘라이프아카데미’를 개설해 후원 운영 중이며, 숙명여대를 포함한 전국 11개 대학에서 이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젊은 시절 원양어선을 타고 전세계를 다니며 ‘왜 우리나라는 가난하게 살고 있고, 어떻게 하면 잘 살게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며, 결국 ‘자원도 없는 우리나라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이제 기업 경영일선에서는 은퇴했지만, 평생의 숙제로 삼아온 인재육성에는 더 큰 열정과 시간을 투자해 국가와 국민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KAIST AI 발전기금 기부 약정식 (사진=연합)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KAIST AI 발전기금 기부 약정식 (사진=연합)

@ “AI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래 기약할 수 없어”

김 명예회장이 지난해 4월 16일 창립 50주년을 맞아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퇴임사를 통해 “1969년은 인류 최초로 우주인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디딘 해”라며 “선진국이 달에 도전할 때 동원은 바다 한가운데에 낚시를 드리워 놓고 참치가 물기를 기다리는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4차 산업혁명과 AI라는 새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고 있다”며 “AI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동원의 미래 50년은 AI로 승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회장 시절에도 AI 관련 국내외 서적을 탐독하고 임직원들에게 권하며 토론하는 등 육성 의지가 컸다. 김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과 차남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 등과 함께 올봄 신성철 KAIST 총장을 만나 ‘AI 퍼스트’에 공감대를 이룬 것도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김 명예회장과 뜻을 같이하여 자녀들도 산학연 AI 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구현모 KT 사장 등이 발의해 산학연 연합군으로 지난 2월 출범한 ‘AI 원팀’에는 KAIST와 한국투자증권이 같이했고 동원그룹도 지난달 제조·영업·물류 혁신 차원에서 합류했다. 
 
재계 관계자는 “김 명예회장이 KAIST의 AI 연구가 잘돼야 국내 AI 생태계도 키우고 회사와 시너지도 낼 것으로 보지 않았겠느냐”고 전했다.

동원그룹에 따르면, 김 회장은 퇴임하는 날 임직원에게 “저는 이제 여러분의 역량을 믿고 회장에서 물러서서 여러분의 활약상을 믿고 응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는 김 회장이 그룹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퇴진하면서 ‘창업 세대로 소임을 다했고 후배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김 명예회장의 복안으로 풀이된다.

앞서 김 회장은 “그간 하지 못한 일,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일도 해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사회에 몸소 기여하는 것은 김 명예회장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고 예전부터 지속된 일이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은 세계해양포럼 공동의장으로서  2009년 11월11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2009 세계해양포럼'에 참석했다. (사진=동원그룹)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은 세계해양포럼 공동의장으로서 2009년 11월11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2009 세계해양포럼'에 참석했다. (사진=동원그룹)

@ “국가 경쟁력 확대위해 AI에 과감히 투자해야” 

동원은 1969년 4월16일 서울 명동의 한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 3명과 원양어선 1척으로 출발했다. 동원산업은 이후 신규 어장 개척, 첨단 어법 도입, 오일쇼크 위기 극복 등을 거쳐 국내 최대 수산업체로 성장했다.

동원산업은 이후 1982년 내놓은 국내 최초 참치 통조림인 ‘동원참치’가 큰 인기를 누리며 성장에 가속도를 올렸다. ‘동원참치’는 출시 이래 지금까지 지구 12바퀴 반을 돌 수 있는 양인 62억캔이 넘게 팔렸다.

한편, 김 명예 회장은 지난 1935년 전남 강진에서 11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강진농고·부산수산대를 졸업하고 1958년 국내 최초의 참치 잡이 원양어선 무보수로 선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원양어선을 타고 지구 200바퀴 이상을 돈 끝에 1969년 창업에 도전한다. ‘물고기를 잡아 갚겠다’며 일본 기업한테 37만달러짜리 원양어선을 도입해 동원산업을 창업한 것이다. 1982년에는 공전의 히트를 친 ‘참치캔’을 처음 출시한 데 이어 공매로 나온 한신증권을 사들여 원양어선에서 쓰던 인센티브 체제를 적용해 오늘날 한국투자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1990년에는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라는 책을 써 베스트셀러가 됐다. 장기간 바다에서 배를 타며 우주와 지구에 관한 여러 생각을 하며 지구의 지도를 거꾸로 해보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결과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을 발판 삼아 태평양으로 나갈 봉화대처럼 당당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 앞서 그가 바다에 관해 쓴 글은 1965년부터 약 30년간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은 세상의 많은 변화를 불러오는 AI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김 명예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국가 경쟁력 확대를 위해서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AI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편, 원양어선 항해사 출신으로 동원그룹을 일군 김 명예회장은 한국무역협회장, 여수엑스포 유치위원장 등을 맡아 국가 위상을 높인 공로로 1991년 금탄산업훈장,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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