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방역의 빛과 그림자...교회 예배가 더이상 멈추지 않기를

 

윤장섭 기자
윤장섭 기자

지난 주말 공중파 TV의 통해 방영된 오락성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좀 의아한 면이 있어 시작글에서 언급해 본다. 그리 크지도 않은 공간에 12~15명의 연예인들이 누구하나 마스크를 착용도 하지 않고 노래하며 웃고 떠드는 장면에서 아! 연예인들은 이렇게 노래하고 떠들어도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방송국 차원에서 방역을 철저하게 했으리라고 생각은 들지만 왠지 화가났다.

방송을 보는 대다수 시청자들은 즐거움 보다는 불쾌감을 느꼇으리라 판단된다. 방역당국은 매일같이 국민들에게 철저한 거리두기, 5인이상 모임금지, 마스크 착용을 강조해 왔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경우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5인이상 모임을 가질 경우 업주와 이용자 모두에게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으름짱을 놓았다.

물론 비대면 시대에 국민들이 외부 모임도 하지 못하고 가정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눈과 귀가 TV오락 프로그램에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공적 모임의 인원제한에서 주소지가 같은 가족과 직장 업무, 국회와 정부의 회의, 방송제작현장 등은 인원제한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방역 당국의 지침이다. 그러면 오락 프로그램과 방송제작현장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매우 헷갈린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방송가 연말 시상식은 취소가 맞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럼에도 방송가는 광고라는 파이를 놓칠세라 오락 프로를 예전처럼 대부분 다 제작하고 방송했다. 다만 예년과 틀려진 점이라면 방청석에 방청객을 초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필자가 장황하게 오락프로를 언급한 것은 작금의 교회 예배는 공간의 크기와 상관없이 대면 에배를 드려서는 안되고, 방송국의 오락 프로는 적은 공간에서도 방송이 가능하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기 위함이다.

교회발 코로나19 사태는 지난해 2월말에서 3월초에 신천지에서 부터 시작됐다. 신천지 신도에 의해 감염자들이 무더기로 발생하면서 코로나 확산의 주범은 곧 교회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신천지발 코로나사태로 곤욕을 치렀던 종교계는 방역당국의 철저한 통제속에 비대면과 대면을 오고가며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들로 부터 곱지않은 시선안에 머물러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지난해 1월 20일 중국인 여성이 국내로 입국하면서 시작됐고, 지난 20일을 기점으로 만 1년이 됐다. 방역 당국은 1년동안 사회적거리두기 단계를 풀었다 조였다를 반복하면서 확진자 수를 조정했다.

새해를 맞은지 벌써 1월의 끝자락으로 향하는 지금 감염 환자의 숫자는 지난 연말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4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1000명을 오르내리던 감염자들이 새해 들어 급격히 줄어든 것은 경제적인 성적은 고려하지 않은 방역 당국의 조치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순수 방역에 따른 성적만을 들여다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1000여명의 확진자가 매일같이 발생하던 지난해 년말, 정부는 사회적거리두기 3단계 카드를 들었나 놨다를 고민하다 일부 업종의 고삐를 아주 쎄게 비틀기로 마음먹고 다중이용 시설에 대해서 매몰찰 정도의 잣대를 들이대고 영업에 자물쇠를 채웠다.

년말 대목을 노렸던 다중시설 운영자들과 소상공인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교회도 비록 예년과 같을 수 는 없지만 성탄 에배를 비롯해 신년 새해맞이 예배 등 이벤트성 행사가 계획되어 있었으나 모두 취소됐다. 결국 꾹꾹 참았던 사람들의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자 방역 당국이 앗 뜨거 했다.

그래서 2.5단계는 유지하면서 다소 유연한 조치를 취한 것이 방역기준을 준수한다는 조건으로 노래방과 카페, 헬스장 등 가장 피해가 극심한 업종에 대해 장내 영업을 허락했다. 교회는 좌석수의 10%범위 안에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했다.

혹자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대해 교회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들을 한다. 물론 그 지적이 틀렸다고는 볼 수 없다. 실제로 지난해 2~3월에 폭발적으로 일어난 대구 신천지발 감염사태가 그렇고, 이어 8~9월에 일어난 사랑제일교회의 감염사례와 정치적 불만을 갖고있던 일부 기독교인들의 일탈에서 이루어진 광복절 서울 도심 집회등이 방역당국과 제 3자들이 주장하는 교회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코로나19에 대해 언제나 죄인과 같은 심정으로 정부가 요구하는 방역 지침에 특별한 이견을 달지 않았다.

만일 지난해 대구발 신천지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교회가 코로나19의 온상지라는 오해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라는 곳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에배를 드리는 장소이다 보니 코로나19에 감염된 단 한사람만 있어도 수십, 아니 수백명까지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교회의 감염 사태에 대해서 방역당국이 어느 기관들 보다 가장 많은 패널티를 주는 것도 당연하다.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예전과 너무도 다르다. 과거에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착한사람, 좋은일 하는 사람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사회의 해를 끼치는 나쁜사람으로 까지 취급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교회를 다닌다는 말 조차 꺼내기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치 성서에서 언급한 간음을 한 사마리아 여인처럼 말이다.

간음을 한 사마리아 여인은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는 매우 부정한 여인으로 취급받았다. 코로나 정국에서 교회뿐 아니라 기독교인들 모두는 21세기의 사마리아인이 된 것이다. 따라서 교회나 기독교인들은 지난 1년동안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처럼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이었고, 언론이나 무실론자들의 교회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현재의 코로나방역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본다. 한쪽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보는 시각이며, 다른 한쪽은 자화자찬 하는 쪽이다. 인류는 샤머니즘(shamanism)에 익숙해 있다. 한국의 샤머니즘도 분명하지는 않으나 아주오랜 고대사회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우리 조상들의 중요한 신앙의 형태였다는 점이 분명한 만큼 그 연장선상에서 교회 예배도 예수님과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필자는 감히 방역당국과 정부에 부탁해보려 한다. 교회 스스로에게 자율권을 주되 코로나 감염 사태에 대해서는 행정력이 미치는 범위안에서 모든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교회가 지금보다 더 조심하고 조심해서 단 한명의 확진자도 나오지 않게 철저하게 관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우리국민들은 지난 1년동안 코로나에 대해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루면서 여기까지 왔다. 반만년 역사에서 우리국민들은 오뚜기처럼 넘어지지 않고 슬기롭게 잘 이겨왔다. 이제 2월이면 백신도 접종이 된다고 한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우리는 곧 이번 위기에서 무사히 탈출할 것이다.

교회도 더이상 코로나19의 온상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방역 당국도 인내하며 참고 기다려주고 있는 5만여 교회의 목소리를 더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전 까지 교회 예배가 멈추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우리 모두는 곱씹어 볼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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