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에 고향엔 노모 홀로 설 맞이
코로나에 차례상 없애고 명절 여행객 늘어
나홀로 귀향길...승차권 예년 비해 20%수준

9일 설 연휴를 앞둔 재래시장의 모습 (사진=신현지 기자)
9일 설 연휴를 앞둔 전통시장의 모습이 한산하다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올 설 연휴는 예년의 풍경을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11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설 연휴기간 고향방문을 최대 자제 요청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등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를 설 연휴기간에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을 어길 시 최대 구상권 청구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설을 앞둔 각 가정은 깊은 고민과 갈등에 빠졌다. 지금까지 지켜져 온 설 명절 풍습과 가풍을 바이러스에 외면하자니 마음이 편치 않아서다. 특히 고향에 부모님이 계신 이들의 마음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지난 추석에도 고향을 방문하지 못한 채 연휴 내내 집 주위를 배회하던 그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 이번 설에도 노모 홀로 명절을 보내시게 해야 한다니. 코로나로 고향길 발 묶인 열차 승차권 예매율은 지난해 54%에서 올해는 20%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9일 구로구 소재 김진수씨(가명 52세)는 지난 추석에도 고향에 다녀오지 못한 안타까움에 이번 설에는 가족을 두고 혼자 고향을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가 포기했다. 당뇨를 앓고 계신 노모에게 혹 자신이 코로나 전파자가 될까봐서다. 지난 가을 김장준비로 고향을 방문한 친구가 코로나 전파자가 되어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사실도 고민을 거듭하게 했다. 그렇다고 노모를 서울에 올라오시게 하는 일도 위험을 초래하는 일, 결국 그는 고심 끝에 노모를 찾아뵙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값비싼 선물로 대신하기로 했다.

9일 전통시장의 설 연휴 분위기는 아직 일러보인다 (사진=신현지 기자)

코로나 시국에 모험을 감내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에 가족을 두고 삼형제만이 나란히 고향 방문 계획을 세운 삼형제.  9일 광명시의 재래시장에 만난 강길현씨 삼형제다. 이들 형제는 이번 설에 삼형제만이 고향에 다녀올 계획으로 장보기에 나섰다.

이날 강씨는 “전염병이 설 풍습까지 바꿔놓을 줄 누가 예측이나 했겠어요.”라며 “매년 명절이면 서울이고 부산이고 각 흩어져 살던 형제들이 고향집에 모여 밤새 웃고 떠들고 참 재미지게 보내다 왔는데 이제는 그런 시절도 다 가버린 것 같소. 그렇지만 하던 짓 흉내라도 내야지 별수 있겠소, 더구나 90세 어머니가 홀로 계시니 우리 형제들만이라도 내려가서 어머니랑 설날 아침 떡국 한 그릇 챙겨 먹고 올라와야지요.”라고 씁쓰레하게 웃었다.

반면 코로나19에 해방을 맞았다며 함박 웃는 이들도 있다. 매년 명절이면 주방을 벗어나지 못하던 박순옥(가명49세)씨. 박씨는 이번 설에 딸과 동생 둘이 합류해 제주도 2박 3일 여행길을 계획하고 있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 등 친족이 모일 수 없으니 이번 기회에 매년 허리를 휘게 했던 차례상을  없애기로 결정한 것이 여행 계획에 큰 몫을 차지했다. 요양원에 계시는 부모님도 찾아가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명령이니 굳이 마음의 무거움을 안을 필요도 없게 됐다. 그러니 벌써부터 이들 박씨 일행은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기라도 한 듯 해맑기만 했다.

그렇지만 설 대목을 맞은 상인들은 예년 같지 않은 설 분위기에 시름이 깊어졌다. 특히 일 년  중 가장 붐비는 전통시장 상인들의 고심은 상당했다. 광명시 전통시장에서 40년 째 야채를 판매하고 있다는 오순옥씨(가명), 그녀는 “살다 살다 이런 설은 처음이요. 설 명절에 이렇게 장사가 안 되기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요."라며 손부터 설레설레 내저었다. 

이어 그녀는 "참말로 코로나가 징하게 사람 애먹이네요, 평소 사람들이 대형슈퍼로 몰려갔다가도 명절 대목이면 우리 시장을 찾곤 했는데 이번엔 영 아니란 말이요, 사람들이 나와야 뭔 장사를 해먹든가 하는데, 다섯 명 이상 모이면 안 된다니 어떤 집서 제사상 차린다고 하겠어요. 나 같아도 집어 치우지. 그리고 야채가격이며 물가가 엄청 올라버렸어요. 시금치만도 한 주 만에 도매가 두 배가 뛰었다고요. 그러니 우리도 물건 들여오기가 힘들어 뭔 재미가 나겠어요.”라고 울상을 지어보였다.

명절이면 긴 줄에 진풍경을 연출하던 모듬전 골목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매대 앞에 수북히 쌓여 차갑게 식어가는 야채전이며 생선전이 보기에도 민망했다. 어디 그뿐인가.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이 시장 안을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 평소와 달리 장바구니에 선뜻 야채를 집어넣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9일 대형매장의 설명절 준비하는 주부의 장바구니가 가벼워 보인다 (사진=신현지 기자)

동네 중형 마트 역시도 대목장의 어수선함은 사라진 듯 보였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조치에 따른 현상이기도 하겠지만 전체적인 물가 급등 탓으로 보였다. 특히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계란가격은 평균 1만원에 가까웠다.

이 같은 계란값 급등에 정부는 설 명절 전까지 계란 2천만 개를 수입하고 설 이후 이달 말까지 2천 400만 개를 추가로 수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계란과 계란가공품 약 5만t에 대해 오는 6월말까지 무관세로 수입하기로 결정한 바도 있다.   

일년 중 가장 붐비는 전통시장이 설 연휴 이틀 앞두고도 썰렁하다(사진=신현지 기자)

또한 정부는 설 명절 성수기에 집중 판매 되는 사과·배 품목에 지난달 20일 설 민생안정대책에 포함된 성수품 공급 계획에 맞춰 사과는 평시대비 2.1배, 배는 1.9배로 공급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참고로 명절 성수품 중 사과는 (45.5%), 파(76.9%), 고춧가루(34.4%), 양파(60.3%), 쌀(12.3%) 등이 급등했다. 축산물 중에서도 돼지고기(18.0%), 국산쇠고기(10.0%) 등이 상승했다. 계란 지난해 3월 20.3% 이후 최대 상승 폭인 15.2%를 기록했다.

한편 지난달 전통시장의 체감경기지수는 코로나19 1차 유행 시기였던 지난해 2~3월 이후 최악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설 차례상차림 4인 기준 비용은 전통시장이 25만원, 대형마트는 32만 원으로 전통시장을 이용하면 20% 정도 저렴하게 준비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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