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수필가/시인
박종민 수필가/시인

[중앙뉴스=박종민]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의 뜻이 함축된 단어가 명암(明暗)이다. 글자 그대로 명과 암은 검거나 희거나 밝거나 어두운 것으로 서로가 엇갈린다. 그렇게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은 항상 서로 맞서서 상극을 이루고 있다.

각기 다른 밝고 어둠의 엇갈린 빛을 이용해 환상적인 빛깔로 예술적인 조화를 이뤄낼 수도 있겠으나 원색(原色)으로의 근본적인 통합적 융화는 불가하리라. 이와 같은 상극의 물질은 물리적이나 화학적으로도 이를 풀어내기가 쉽지 않으리다.

상호가 가진 색채가 다른 객체물질이며 역반응의 성질을 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명(明)과 암(暗)은 물리적이나 물질적으로 엇갈리는 상대성에 맞대어있다.

 하지만 대자연이 갖는 밝고 어두운 명암의 원리는 상반되는 원색의 빛으로 인해 상대적 반대와 반응을 만들어 내며 세상 만물에 온갖 빛깔을 조화롭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처럼 우주 만물에 있어 빛깔조화는 밝은 빛과 어둠의 빛이 함께 주어져 있기에 생태계에 적절한 각기의 빛깔과 양상으로 식별되고 나타내어 존재하고 있기 말이다. 기초적인 명과 암의 조화로 융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즉, 음과 양은 상극을 이루나 상생하며 생성하는 질서를 구축하여 있는 것이다. 어둠이 밝음을 향해 치고 나가고 이에 맞서 밝음이 어둠을 향해 돌격해도 어느 편 한쪽이 일방적으로 명확하게 이길 수가 없는 진리이다. 그러면서 융화하는 것이다.

생성하는 명암의 빛깔은 자체가 상극으로 서로가 공격을 해봐도 승산 없는 싸움이다. 어둠 속에선 밝음이 선명하지만 밝음 속에서는 어둠은 잘 보이질 아니하는 게 명암이다. 명과 암이 가지는 또 다른 질서는 상호 간을 돋보이게 하는 상생과 융화의 빛깔에 있다.

이런 대자연의 음과 양이 주는 볕과 그늘의 이치로 가늠해 보자. 우리네 인간 삶의 면면이나 사회환경 생태 질서도 밝거나 어둡거나 다를 바 없이 양극으로 주어져 있다.

특히나 명암이 뚜렷하고 깊게 엇갈리고 있는 우리의 민생 삶은 어느 한쪽은 아프고 슬프고 괴롭고 다른 한쪽에선 즐겁고 기쁘고 환하고 밝으리라. 밝음 속에 쾌재 부르는 쪽과 어둠에 울부짖는 쪽의 양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지난 연말 기준 국민소득 상 하위 20% 기준 격차가 4%란다. 양극화(兩極化)가 더욱 심화 됐다.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 현상이 두드러지며 전반적인 민생이 도탄에 빠져있다.

더욱이 요즘은 코로나19전염병사태가 덮쳐나며 죽지 못해 살아가고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며 허덕이는 이들이 태반이다.그야말로 명과 암이 극렬히 엇갈려 있다. 시급히 치유 치환해야 한다.

극명과 극 암의 빛을 희석하고 거리를 좁혀나가야 한다. 이렇게 엇갈려 차이 많은 민생을 바로 바라다보며 조화해내고 융화해 내는 역할을 행하는 게 정치권이다. 고르도록 균형 잡고 조정하고 조율하며 융화해 내는 일이 옳은 일이며 옳은 길이다.

갈라진 민심과 민의를 수습해야 하는 게 위정자다. 그러나 못된 자들은 자기들이 잘났고 잘 한다며 일방적으로 내 달린다. 이는 옳지 않은 것이다. 그른 것이다. 명암이 극명하게 갈린 국민의 삶에 관한 문제를 개선하고 개혁하여 국태민안을 이루게 할 책무가 정치권에 있는 것이다.

바른 정치 옳은 정책으로 치열하게 논하다 보면 정치권에서도 논리적 다툼이 있을 수 있다. 빛깔을 희석해 절충해야 한다. 양보와 배려와 타협이 중요하다. 상대편이 쓰러져야 하는 극명과 극 암은 있어서는 안 된다. 둘 중 하나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땐 완전한 정치패배다.

승리 없는 정책 실종이며 전멸이다. 그런 걸 알 터인데도 승산이 없는 싸움질만 해대고 있다. 그 꼬락서니가 꼴불견이다. 차마 눈 뜨곤 못 볼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국민을 바로 보라.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