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대기자
전대열 대기자

[중앙뉴스 칼럼기고=전대열 대기자]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윤석열의 처신이 분명해졌다. 문재인정부에서 조국과 추미애를 내세우며 각을 세웠던 지긋지긋한 찍어내기가 겨우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지난 1년은 때마침 불어 닥친 코로나19와 함께 국민의 여론을 갈기갈기 찢어 놓으며 극단적인 분열을 증폭시켰다. 그것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무산시키려는 집권자의 몸부림이었다.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여 윤석열을 고립시켰으나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인사권을 행사한 법무부장관의 수사검사 아웃부터 시작하여 검찰총장 직무정지와 징계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압박을 가했으나 요지부동 사퇴할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며 불법적인 정부조치를 막아줬다.

박근혜정부의 적폐청산으로 문재인에게 발탁된 윤석열은 이 정부의 최고 수혜자였으나 죽은 권력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가차 없는 매스를 들이대는 정의의 수호신처럼 비춰지며 국민의 환호를 받았다. 지금까지 그런 검사를 본 일이 없던 국민들은 검찰총수의 서릿발 같은 태도에 박수를 보냈다.

이제 그는 임기 4개월을 앞두고 물러났다. 청와대는 바라고 바라던 사표가 들어오자 즉각 수리했다.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중수청법은 헌법정신을 위반한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데 모든 힘을 쏟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사퇴한 것이다. 민주당이 공직자의 공직선거 90일전 사퇴로 출마시기가 이미 선거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1년 전에 사퇴하도록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시기여서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절묘한 시점을 택한 것이라는 견해도 충분히 일리 있어 보인다.

그는 이제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반드시 정치를 시작할 것이라는 평도 나온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정치를 시작해야 될까. 평생 검사노릇만 한 사람이 갑자기 정치에 뛰어들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의 인기는 현재 최고가를 시현한다. 과거에 우리는 그런 인기를 안고 정치에 뛰어 들었다가 실패한 사례를 잘 안다. 무균질의 별명을 얻었던 박찬종은 필마단기로 대선에 나갔으나 기대에 못 미쳤고, 왕회장 정주영 역시 고배를 마셨다. 서울시장을 사퇴하고 이기택과 손을 잡았던 조순, 총리로 이름을 떨친 고건, 유엔사무총장에서 퇴임하자마자 돌아온 반기문 등은 반짝 인기에 힘입어 뭔가 해내는 듯싶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들은 모두 능력과 실력을 갖춘 훌륭한 분들이었지만 정치의 대세는 자금과 조직임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덤볐기 때문이다. 인기가 높다하면 “돈은 염려마라” “조직은 모두 갖춰 놨다”면서 후보자에게 아첨 일변도로 접근한다. 귀가 엷은 후보자는 이에 넘어가지만 며칠 지나면 본색이 드러난다. 정치모리배, 추세배들은 명성이 높지만 현실정치에 어두운 후보자를 작살내는 첨병 구실을 한다.

위에 열거한 여러분들이 대선에 승리했다면 우리나라의 정치는 지금처럼 이념에 파묻히거나 분열만을 거듭하는 난세를 면할 수 있었겠지만 현실은 그런 이상세계를 허용하지 않는다. 윤석열 역시 암담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아예 정치는 접어야 옳다. 그러나 그는 권력과 대항하여 과감하게 소신을 지킨 용사다.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에도 안 가고 따라만 다니던 사람들이 운 좋게 권력을 잡은 것과는 크게 다르다. 여기서 나는 정치적 선택의 세 가지 사례를 제시하여 윤석열에게 참고하도록 전하고 싶다. 첫째는 김영삼이다. 김대중과의 단일화에 실패하고 군사정권을 연장시킨 그는 과감하게 노태우와의 담판을 거쳐 이른바 3당 합당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행보를 보였다.

민주화운동의 배신이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변신은 그에게 군부정권에 무릎을 꿇었다는 치욕을 안겼지만 통합의 상징으로 등장하며 대권을 거머쥐는 승리자가 된다.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등은 김영삼정권만이 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둘째는 김대중이다. 정계를 은퇴한다고 잠시 런던에 머물다가 돌아와 이기택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차버리고 새 당을 만들어 대선 4수에 돌입한다.

그 역시 군사정권의 상징인 김종필을 끌어드려 DJP연합함대를 구성하고 대선에서 승리한다. 원수와도 화해한다는 대국민 메시지가 먹혔다. 셋째는 이회창이다. 김영삼에게 발탁된 사람이 김영삼 화형식을 방치하고 이인재 출마를 건너 마을 불처럼 놔뒀다가 다 먹은 밥에 콧물을 빠뜨렸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노무현을 상대도 안 된다고 무시하고 당내 거물인 이기택 김윤환 조순 신상우를 내쳤다. 그리고 졌다. 이 세 가지 사례는 윤석열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정치신인 윤석열의 선택은 통합과 화해라는 대동선택(大同選擇)이어야만이 최후의 승리가 보장된다는 공개된 비기(祕器)다. 정권교체가 꿈이라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겠지만 제일야당을 선택하는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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