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나의 맛있는 시 (257) // 연필 / 최한나
최한나의 맛있는 시 (257) // 연필 / 최한나
  • 최봄샘 기자
  • 승인 2021.03.31 0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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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나 시인
최한나 시인

 

연  필 



체중이 줄어 듭니다
뾰족한 성깔도 무디어 가느라
그토록 검은 핏물 흘릴 때는
하이얀  빈혈마저도
슬픔의 퇴로를 차단합니다

또 깎입니다.
짧아지는 내 키만큼씩
오그라드는 명줄
뼈속 깊은 곳에선
머언 숲속의 푸르던 전설이
절망으로 꿈틀거립니다

어느 모퉁이에 버려져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일
모멸덩어리 이 몸뚱이
버려짐의 그림자를 베고 누워
눈을 감은 채 오직
작아지는 기쁨만 생각했지요

마침내
달콤한 어둠에 손 흔들며
흙으로 돌아가는 그 날
꿈속에 그리던 님의 품에 안기리니
고향은 언제나
내 심지속에 별이 되어
반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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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시를 이해하느라 머리를 깊이 혹사하기도 할 때가 있다. 분주하고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그런 시간에 그냥 읽어도 바로 와서 스미는 그런 시는 참 편하다. 인생이 한 자루 연필 같다. 나 자신을 깎아서 일생 여정의 에너지로 써나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그러할지라도 우리는 그런 나로 인해 또 다른 연필들이 탄생하고, 세상이라는 방명록을 힘있게 써나가길 소망하는 것이다. 공들여 조심조심 연필을 깎던 습작기의 시를 꺼내어 세상에 내보낸다. 순수가 진했던 그 시절이 봄향기처럼 훈훈하게 다가온다.  오늘!  남긴 나의 족적은 어떤 의미로 남을지 돌아보며 이 땅에서의 삶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깎여나가는 나의 삶에 후회는 없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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