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와 우렁이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중앙뉴스=이재인] 메뚜기 있는 논에 우렁이 있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다. 이 말은 공동 운명체 ‘이웃’을 강조하는 지혜의 언어였다. 가난하게 살던 옛날 우리 선조들은 풀벌레 소리가 시작되면 빈 정종병을 들고 논둑으로 나갔다.

논둑에는 벼이삭을 갉아먹는 메뚜기 떼가 중공군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아이, 어른, 부녀자 구별 없이 이 메뚜기를 잡아 빈 병에 가득 채웠다. 이 곤충은 고기가 부족했을 때 먹는, 그야말로 고담백질을 보충해 주는 대용 식품이었다.

메뚜기는 불붙은 무쇠 솥에 왕소금을 뿌려 애처롭게 술술 저으면 마른 새우처럼 고소하고, 여름 날 개암처럼 입 안에 침을 고이게 했다. 이런 날 들개 떼도 집집마다 색주가 울타리에 사내 모여들 듯 만원이었다.

이렇게 메뚜기는 우렁이 맛이 드는 논둑에서 우리는 휘파람 불면서 학교에서 배운 윤동주의 「서시」를 너도나도 암송했다. 이 소리는 이 동네, 저 동네 할 것 없이 울려 퍼졌다.

메뚜기뿐만 아니라 노동에 지친 농민들에게 우렁이도 영양식이었다. 끓는 물에 데쳐서 된장국에 넣게 되면 그게 고깃국 대용식(代用食)이었다. 푸성귀에 고담백질을 생산했던 시절이 이제는 빛바랜 사진첩처럼 희미해 보인다. 이게 어디 나만의 애석함일는지...

나이 어린 손자가 “메뚜기와 우렁이 찾기”를 방학 숙제라고 걱정하던데 이제는 어떤 방법으로 알려줘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내 아무리  농투생이 20년 차더라도...내가 어릴 때 들었던 농요가 문득 떠오른다. 한 폭의 그림처럼.

우렁 줍는 누이 어깨 등판도 좋구먼
입춘대길 시집가세 산너머 총각도
호미자루 내버리고 장가를 간 다오
금수강산 맹그는데 우리가 나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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