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섭 기자
윤장섭 기자

여름은 단연코 삼복 더위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삼복(三伏)은 양력 7월 중순과 8월 중순 사이에 들어가는 잡절로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모두 가리킨다."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을 초복(初伏), 네 번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 후 첫째 경일을 말복(末伏)이라고 하는데 이를 삼복(三伏), 혹은 복날(伏-)이라고도 부른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진나라 덕공(德公) 2년(기원전 676년)에 처음으로 복날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개를 잡아 열독(熱毒)을 다스렸다고 한 기록이다. 그래서 그런지 삼복(三伏)하면 가장먼저 떠오르는 것이 보신음식이다.

복날에는 "봄철부터 농사에 매달린 농부들이 덥고 습한 날씨를 이겨내고 가을 추수를 마무리 하기 위해 몸을 보호한다"는 의미로 보신(補身)을 위한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먹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계절 음식이 없던 과거에는 가장 몸에 좋다고 하는 대표 음식이 개장국이었다. 지금이야 개장국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없는 편이어서 개장국 대신 국민 음식인 닭백숙을 많이 먹는다. 또,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하여 팥죽을 먹기도 한다.

기상청의 예보에 따르면 올 장마는 이미 끝이 났다고 했다. "장마가 끝나기 무섭게 올여름 들어 가장더운 날씨를 보인 날이 오늘(21일)이고 절기상으로는 중복(中伏)이다." "삼복기간은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인 만큼, ‘삼복더위’중에서도 가운데 끼어있는 중복은 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시기다.

신세대들은 "삼복(三伏)이라는 개념이 그리 마음에 다가오지 않을 수 도 있지만 실버세대들에게는 이날 만큼은 보신(補身)을 핑계삼아 복놀이를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야 영양가 많고 담백한 음식들이 차고 넘치지만 7~80년대만 하더라도 복날 음식은 대부분 정해져 있었다.

특히 복날 음식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식하면 10명중에 5명 이상이 즐겨찾는 개장국이 있었다. 당시 "복날 풍경을 회상해 보면 목줄에 매여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보신용 개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7~80년대 우리들의 아버지들은 "집집마다 개들을 보신용으로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는 어찌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러나 그 당시에는 사람들의 보신을 위해 수많은 개들이 희생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심도 좋아 강아지가 태어나면 먼저 집어가는 사람이 임자일 정도로 흔하디 흔한 것"이 똥개라는 이름의 강아지들이었다. "번식률도 얼마나 좋은지 지들(똥개)이 알아서 임신하고 새끼까지 날 정도로 시골의 어느집을 가더라도 똥개들은 넘처났다." 심지어는 자기집 개들이 몆마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였으니 누가 한마리를 잡아가도 그려려니 하던 시절이었다.

더군다나 "시골 살림이야 늘 뻔해서 식구들 먹고 살기도 녹록치 못해 개들에게 까지 밥을 줄 형편"이 못됐다. 그럼에도 혹여 2~3마리를 키운다고 하면 보신용으로 팔기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키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식구들의 몸보신 용으로 잡아먹기 위해 키웠다.

워낙 보신용으로 인기가 좋다보니 개장국을 전문적으로 끓여파는 식당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어떤 곳에서는 '똥개마을' 이라는 광고까지 해가며 보신객들 모시기에 바뻤다. 소문이 나면서 복날을 전후로 수많은 보신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아예 전세버스를 동원한 단체 보신객들도 넘쳐났다.

그렇게 보신 문화는 우리들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를 거치며 수십여년 동안 이어내려 왔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물도 가족이라는 생명 존중 운동과 함께 반려동물 인구들이 늘기 시작했고, 개고기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실버세대들이 즐겨찾던 보신탕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개고기의 식용을 둘러싸고 찬성하는쪽과 반대하는 쪽의 논란은 여전하다. 특히 오늘과 같은 복날이 되면 찬반 논란은 더욱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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