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중앙뉴스=이재인] 어린 시절, 조나 수수밭 언저리에는 새떼들이 마치 군대의 중대 인원쯤을 거느리고, 아직 익지도 않은 곡식들을 물어뜯느라 아우성이었다.
농민들은 다음해 농사에 쓸 씨앗조차 남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거친 허수아비가 고단한 몸짓을 하고 서 있는 게 우리네 농촌 풍경이었다.
1940년에서 1955년생까지는 비탈 밭에 세워놓은 허수아비에 익숙할 것이다. 짚이나 밀짚모자를 씌어 놓으면 참새 떼나 까치들도 멀리 달아났다.
그런데 요즘은 농촌에서 낡은 밀짚모자, 거적때기 옷을 걸친 허수아비를 볼 수 없다. 요놈 새떼들도 그 허수아비가 가짜인 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제 허수아비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기 일쑤이다.
그에 맞춰 농민들도 꼭 사람을 닮은 마네킹을 구해다 논밭에 세웠다. 하지만 이것 미물들의 IQ도 무한 발전하는지 요즘은 마네킹조차 무시한다고 한다. 곡식이 남아날는지 걱정이다.더구나 요즘에는 고양이조차 쥐를 잡지 않는다.
고양이가 쥐를 잡지 않으니 쥐의 생식이 왕성하다. 옛 시절에는 쥐약도 있었고 쥐덫도 시장에서 팔았다. 농민들이 애써 기른 농산물은 새 떼와 쥐 떼에게 몸살을 앓고 있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다.
실용적인 용도로만 허수아비가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노을 지는 오후에 소꼴을 베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황금빛으로 물든 논을 따라 집으로 걸어갈 때면, 언제나 허수아비가 나를 맞이하였다.
이건 김 아저씨네 허수아비, 한 생원네 허수아비, 꼽아가며 집으로 돌아가면, 그 길은 언제나 따뜻했다.
허수아비가 외로운 산 속 마을을 지켜주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어느 동물도 허수아비 앞에서 저어하는 일이 없어졌다. 이것들도 자유로운 민주화 시대에 접어들었는가...
그간 속았었지, 거짓도 오래하면 안 돼
어느 바보가 무섭다했지만
우리 식구는 네 놈의 머리에 앉았다
지지배배 짝짝
우리들의 음성부호를
아는 놈들은 아직 없다
매니큐어를 바른 언니의 목덜미에
내 똥이 묻어 있는 것을
그는 모를끼라
사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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