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수필가/시인

[중앙뉴스=박종민] 어언 가을이다. 코로나19괴질 기세가 전혀 멈춤이 없는 엄혹함 속에서도 우리 곁에 중추가절이 찾아왔다.

금년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더 여러 날 이어진 극심한 폭염(暴炎)에 폭우(暴雨)로 인하여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많았다.지속(持續)되던 가마솥더위와 게릴라 성 호우(豪雨)가 멈췄고 밤잠을 못 이루게 하는 고온 다습의 열대야가 얼마 전에 사라져갔다.

여름철 내내 온갖 고초를 다 겪어내고 익어가는 오곡백과가 무척 풍성하다.누릇누릇 변해가는 들판이 가득가득 풍요롭기 그지없다. 푸른 물감을 뿌리기라도 한 듯한 코발트 빛깔 하늘이 아득하게 드높다. 청량한 파란 하늘 아래로 하늬바람 결 타고 밀려드는 공기가 서늘하고 쾌적하다. 

이때다 싶게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가 찾아와 흥취를 돋운다. 고추잠자리가 쌍쌍이 떼를 지어 나지막이 시공을 날고 담장 아래 댓돌 밑에 혹은 꽃대 돋아나는 국화꽃 줄기 사이에 숨어 내지르는 귀뚜라미노래 구성지다. 밤이면 별빛 달빛을 머금고 흐르는 여치 베짱이 지렁이의 화음과 음색이 환상적이다. 달빛 별빛 소나타이고 교향악이다.

가히 중추가절이다. 이 좋은 계절 절기를 후회 없이 보내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힐링해보자. 코로나19로 누구도 예외 없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질 않은가! 거리두기와 비대면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한층 더 옥죄고 얽매이게 만들면서 불황과 불경기를 부채질해 왔던 터다. 이때 기해 잠시 호흡을 가다듬자.

호시절이다. 위축되었던 영육(靈肉)의 건강을 돌보기에 그만이다. 한 템포 늦춰가며 차근차근 천천히 심호흡 길게 하면서 기력을 충전해보자.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질 말자. 윤회하는 세월의 수레바퀴가 잠시도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세월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편안함을 느끼는 시간일수록 시침은 더욱 빠르게 돌아간다. 자칫 안일함으로 자만하지 말자. 소리 소문도 없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지나가는 세월이다. 때론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리며 휘돌아가는 게 세월이다. 흘러 흘러 저만치로 빠르게도 도망쳐가는 세월을 어찌할 겨를이 없다. 막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다. 흘러가는 세월을 탓할 수는 없다. 맞춰 순응해야만 한다.

허우대가 훤칠하고 멀쩡한 한 젊은 사내가 나무 그늘에 벌러덩 나자빠져 세월 타령을 하는 꼬락서니가 황당하다. 세월아 네월아 가지를 말라며 세월 타령을 한다. 육자배기 가락이 아니고 사설난봉가도 아니다. 보아하니 자기의 게으름을 담은 푸념이며 신세타령이다. 빠른 세월에 허무하고 허전하단다. 빠른 세월의 흐름을 탓하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못 느끼고 있으니, 안쓰럽고 안타깝다.

아마도 각박한 삶에 이리저리 치이고 많이 지쳐 삶의 의욕이 꺾이고 의지를 상실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어쩌랴! 과학적, 철학적으로 정해져 있는 게 시간이 아니든가? 이를 부정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 건만 모르는지 모르는 체하는지 무지하기 그지없다. 자연 질서에 맞게 도전(挑戰)과 응전(應戰)해야 하는 진리를 모르는 나태한 자다.

정해진 시간 들이 모이고 모여 날과 달이 되고 날과 달이 모여 해가 되어 빙글빙글 돌며 흘러가게 되어 있는 게 세월이 아니던가. 대자연의 질서에 따라서 어김없이 도래(到來)하는 계절에 맞서 거부할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적절히 타이밍에 따라야 한다. 삶의 지략이다. 맹목적인 자만심으로 인해 생각과 행동이 교만해지고 나태해질 때 의욕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속절없이도 빨리 지나쳐 가버리고 있다며 탓하고 푸념하게 된다.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꾸게 되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생활의 변화를 몰고 온다는 것은 이미 교과서적인 상식이 됐다. 아름답고 멋진 시절을 만끽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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