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최세라 시인
사진 / 최세라 시인

 

사라진 궁전

최세라

 

  여기서 보는 폐허는 아름답구나 어쩌다 우리는 무너진 성에 오게 되었을까

  그래요 웃음이 꽃상추처럼 빠르게 시들어요 끝을 두어 귀해지기로 했었죠 발을 포기하면 발바닥에 딸려온 숱한 길도 떠나보낼 수 있다고 매 정거장마다 내리던 꽃송이 송이 나는 연결되고 싶은 문이어서 경첩을 찾느라 눈을 깜박이지도 못했는데

  당신은 나를 세워주는 기둥이거나 옭아매는 말뚝이거나

  비밀의 침실이거나 휑한 방이거나

  훼손이거나 갱신이거나

 

  이번 생은 망쳤고 다음 생은 없죠

 

  웃음이 빠르게 증발해요

  오래된 벽돌을 쌓아야 할지 무너진 성의 일부가 되어야 할지

  답장을 받지 못한 새와 함께 울어요

                   

   사라진 궁전이 통째로 별이 되어버린 지점에 서서

 

                                                            - 최세라 시집 『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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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을 그린 듯하지만 위무의 책무에 충실한 詩 한 수!

  슬픔을 슬픔으로, 고통은 고통으로 위로할 수 있는 시의 가치를 읽었다. 꽃들이 시들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저녁 천변 나들길에도 달빛과 가로등 불빛이 있어서 걸을 수 있었다. 오늘 꽃잎처럼 스러진 이들의 영혼에도 빛이 함께 하기를 염원한다. 어쩌다 우리는 펜데믹의 파도에 휩쓸리며 눈물 젖은 탄식을 먹으며 살게 되었을까? 내가 세상에 등장해서 처음 겪는 고통의 나날들이 가고 있다. 화자의 표현대로 ‘다음 생은 없다’고 그러니 여기서 버티고 살아야 승리하는 거라고 누군가는 충고하고 싶었을 텐데 그런 말은 너무 성의가 부족한 것 같고 쉽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겐 이미 삶의 전부인 궁전이 무너져버린 후였으므로... 오늘도 메신저의 소식들이 희망적인 것도 반짝 먼저 와 닿지만 아린 것이 더 많다.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운 마음을 가져보려 하지만 초조해진다. 하지만 우리 희망을 말해야 한다. 통째로 무너진 폐허의 자리라 하여도 절망은 없다.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당신과 나는 답장을 받지 못한 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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