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8.24주민투표를 놓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치적 오해의 늪에 빠져 지냈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복지 포퓰리즘에 강력히 대항하는 오세훈이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그것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개연성이 충분한 상황이었다. 한나라당에서 대권을 꿈꾸는 수많은 인물들이 즐비한 판에 오세훈 역시 서울시장이라는 직책을 무기로 유력한 후보 중의 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역시 이를 애써 부정한 일은 없다. 거기에 불을 붙인 것이 주민투표다.

좌파 교육감이 내건 초중고생 전면 무상급식의 구호는 공짜 점심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오히려 부자학생들에까지 국민의 혈세를 나눠주는 일이어서 많은 국민들은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다만 공짜 점심 좀 나눠주는 것에 배가 아프냐 하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속 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당대의 지식인들도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이나 단체를 중심으로 진보 또는 보수를 내걸고 나름대로 의견을 피력해 왔지만 어쩐지 공허하기만 했다. 왜냐하면 지나친 복지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모두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선진국을 지향하던 남미국가들이 복지 포퓰리즘에 빠져 나락에 떨어진 사실은 오래되었다. 세계최대의 부자나라인 미국과 일본조차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부도 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스는 이미 IMF의 구제 금융에 목을 내맡기고 있는 처지다. 지금 세계 각국은 정권 경쟁의 한 축으로 사탕발림 식 복지를 내세워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는 추세며 그 결과는 참담하기만 하다. 복지혜택에 잠시 눈이 먼 국민들이 그 참담한 결과를 온통 한 몸에 뒤집어쓰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이들이다. 그러면서도 정권을 탈취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를 활용하려 한다. 무상급식은 ‘무상 시리즈’의 한 대목일 뿐이다.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이 병행되거나 앞으로 계속 추진될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재정위기에 빠진 일본정부는 무분별하게 시행하던 모든 무상 정책을 과감히 철회하고 있으며 미국도 뒤따르는 형세다. 오직 한국만이 무상 천지다. 진보 진영의 주장에 확고한 신념으로 맞서야할 정치집단은 정권을 쥐고 있는 한나라당이다.

그러나 원내대표 황우여를 비롯한 몇몇 지도부 인사들이 한 술 더 뜨고 있다. 반값등록금을 맨 처음 내놓은 사람도 황우여다. 막대한 재정적자는 생각하지도 않고 눈앞의 표만 얼씬거리다보면 청맹과니가 된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표’와 ‘원칙’ 사이에서 확고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겉만 맴돈다. 국민을 옳은 방향으로 계도하고 무엇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인지 가르칠 수 없는 정치인이라면 아예 뒤로 물러나야만 한다.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이명박의 530만표 승리에 있었다면 그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원칙을 저버리다보니 엄청난 지지 세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쭉정이만 남았다. 쭉정이라도 놓치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치면서 반값등록금으로 만회하려고 하다가 더 큰 파도에 휩쓸린 형국이다. 이처럼 깊은 펄에 빠진 한나라당을 구할 수 있는 진검을 뽑아든 사람이 오세훈이다. 그는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를 선택했다. 주민투표는 일반선거와 달리 주민 3분의1 이상이 투표해야만 개표를 한다.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면 아예 개표를 하지 못하게 되며 내걸었던 정책안은 폐기된다.

문제는 이번 주민투표 용지에 기재된 두 가지 안이 모두 폐기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하나는 ‘점진적’이며 다른 하나는 ‘전면적’이다. 법의 논리대로라면 주민의 투표 참여율이 낮아 개표가 되지 못하는 것은 어느 안도 서울시민은 선택하지 않은 것이 된다. 따라서 무상급식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제는 그런 상황이 도래했을 때 법적으로 많은 논란을 겪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거부운동을 하고 있는 측에서는 참여율이 낮아 개표를 못하면 무상급식을 해야 된다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오세훈의 승부수로 알려진 주민투표가 한나라당 내의 대권후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 하는 것도 큰 변수다. 투표에서 이기면 오세훈이 막 바로 대권경쟁에 뛰어든다는 우려가 있다. 야당에서 그를 공격하는 빌미도 그것이다. 정치인의 거취가 이처럼 정략의 대상이 되기도 힘들다. 필자는 이미 본란을 통하여 오세훈은 대선 불출마선언을 해야 한다는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그 영향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승패불문 대선불출마를 선언했다.

큰 결단이다. 이제는 어느 라이벌도 그를 의식할 필요가 없어졌다. 특히 여론 1위에 올라있는 박근혜의 거취가 관심거리다. 유력한 후보 한 사람이 스스로 물러앉은 상황이지만 주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것이 박근혜의 입지에 가장 큰 힘이 될 것은 당연하다. 그의 인기는 상한가를 치고 있어 망국적인 ‘표퓰리즘’에 대한 차분한 설득을 하면 많은 시민들이 호응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가 답할 차례가 온 것이다. 주민투표 양상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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