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동상이 8월25일 서울 남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자유총연맹 마당에 세워졌다.
 
이승만 추종자들은 끈질기게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의 동상을 광화문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광화문 네거리를 지키고 있는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 사이에 이승만 동상이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가 하면 이순신동상을 옮기고 그 자리에 세워야 한다는 엉뚱한 말이 나오기도 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신문에 기고문을 내고 이를 적극 지지하여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 이들의 논조를 살피면 대체적으로 건국에 대한 공로, 6.25사변시 한미동맹을 통하여 나라를 지켜냈다는 호국의 공적 등을 가장 크게 내세운다.
 
그들의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건국할 수 있는 모든 기반을 이승만이 닦은 것처럼 되어있다. 과연 그럴까? 이승만 아니었으면 건국이 될 수 없었단 말인가. 필자는 사회과학적으로 이에 접근해야 하며 역사의 필연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당시의 국제정치는 미쏘 양강의 힘겨루기에 의해서 결정되었지 식민지였던 나라의 지도자의 힘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일본이 항복한 이후 전후(戰後)처리 문제를 놓고 미쏘 두 나라는 냉철하게 맞섰다. 영국과 중국이 들러리를 섰으나 모든 주도권은 양국이 쥐었다. 원자탄 두 방에 날아가 버린 일본이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며 강점하고 있던 한국은 원래 독립국이었기에 당연히 예전으로 되돌아가면 그뿐이다.
 
강대국들이 지배야욕을 가지고 있지만 않다면 가만 놔둬도 스스로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쏘는 이를 용납하지 않고 스스로의 영향력 하에 한국을 잡아두기 위한 계략을 꾸몄다. 그것이 38선을 그어놓고 북쪽은 쏘련군이 점령하고, 남쪽은 미군이 점령하기로 자기들끼리 합의했던 것이다. 천년을 통일되어 있던 나라가 갑자기 외세의 힘으로 두 동강이 난 것이다.
 
종전 직전에 그들은 얄타에서 회담을 열고 한국의 5년 신탁통치를 합의한 바 있다. 이 때 한국의 지도적 인사들이 이념으로 갈라져 있는 미국과 쏘련의 대결양상을 날카롭게 파악했더라면 신탁통치를 받아드렸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미국과 쏘련의 조종을 받고 있던 일부 인사들은 악착같이 반대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반만년 역사에 빛나는 문화민족이 5년이라는 긴 세월 외국의 통치를 받을 수 없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었다. 민족자존의 대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우리나라는 남북 공히 미군과 쏘련군의 군정을 3년 동안 받을 수밖에 없었고 남북이 분할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이승만과 김일성 모두 처음에는 신탁통치를 극력 반대했으나 김일성과 남노당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쏘련의 지시에 의해서다.
 
이승만은 줄곧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외쳐댔다. 김구와 김규식만이 ‘하나의 조국’을 갈구하며 남북협상을 시도하여 평양을 오르내리며 김일성과 회담을 벌였으나 이미 스탈린의 주구로 변한 김일성에게서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순수한 민족단심(民族丹心)으로 뭉친 김구의 염원은 임시정부를 이끌던 그의 강인한 민족의지로 하여금 분열된 조국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참담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남한에 이승만정권이 수립되고 북한에 김일성정권이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아무데도 참여하지 않고 경교장에 칩거한다.
 
이런 과정에서 미국통이었던 이승만의 단독정부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승만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의 흐름을 날쌔게 편승한 것이다.

김구는 정부수립 한 해도 되기 전에 안두희의 손에 암살되며 그 배후에 이승만이 있다는 수많은 풍설이 떠돌았으나 안두희는 끝까지 입을 다문다. 그리고 김일성은 남침을 감행한다. 6.25사변이다. 38선을 돌파한 북한괴뢰군이 물밀듯이 수도 서울에 육박하자 대통령 이승만은 라디오 연설을 통하여 “우리 국군이 38선에서 적군을 섬멸하고 있으며 서울은 절대 사수한다.
 
시민들은 동요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자신은 한강 다리를 건너 먼저 도망쳤다. 임진왜란이 났을 때 선조(宣祖)왕은 몽진(蒙塵)을 주장하는 신하들의 간언을 물리치고 맨 나중에 궁궐을 빠져나왔다. 벼슬 높은 간신들은 대부분 먼저 도망쳤고 신분이 낮은 신하들만 수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승만은 한강 다리가 끊기기 전에 재빨리 내뺐다.
 
이런 사람에게 6.25때 나라를 건진 공로가 있다고 어떻게 말 할 수 있겠는가. 남보기 부끄럽다. 더구나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가장 많이 배웠다는 사람이 자기를 비판한다고 사정없이 언론의 목을 조였다. 야당을 탄압하고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들에게 총탄을 퍼부어 186명을 쏴 죽였다. 6500여 명이 부상당했다.
 
이러한 만행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더구나 4.19혁명으로 끌어내려진 동상을 세운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범죄다. 세계의 모든 독재자들의 동상은 죽은 후 철저히 파괴되었다. 엊그제 리비아의 카다피 동상이 짓밟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가. 자유총연맹 마당에 세워진 동상도 머지않아 다른 독재자와 똑같은 몰골이 될 게 분명하다. 4.19영령을 모독하는 독재자의 동상을 즉각 철거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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