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서양 적도를 항해하며 )

너무나 아름다운 바다경치 ------
하늘만한 캔버스에 물감을 흘려부은듯
자연이 빚은 조화의 신비는 참으로 신기하고 위대하다

금방이라도 우르르 무너질듯한 기암괴석의 바위절벽이며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구름들은 확대된 국화의 대형화분 같기도 하다
한줄기의 갑작스런 스콜이 지나가면 반대쪽에선 영락없이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그려놓고
tv 어린이 만화영화에서 보듯이 용의 머리를 그린 뭉게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비행하고픈 동심을 불러 일으킨다

사심없는 생각과 시선으로 자연의 조화에 넋을 잃고 있는 나를 보고
갑판부 k가 동그란 현창 밖으로 머리만 내밀고서
뭐 하능교 -----
형수님 생각합니꺼 ? 하는말에
그래 와 ------- 시큰둥하게 뱉어버린다

오고가는 대화속에 번지는 따뜻한 정과 마도로스의 신의가 아닌가 ----
여기 나와 보세요 ~~~~ 나와 보면 압니다 ?
알아요 하하하 ------

말이 채 끝나기전 뛰쳐나간 나는
남서쪽 하늘에 걸린 수채화 같은 조물주의 창조물을 보고
와 기똥차네 ! 이럴때 시인이었다면 시라도 한구절 쓸텐데 참 -----
아니 그러면 k씨는 시인이 아니라서 시를 쓸수 없다는 겁니까 ?

어떤 대상을 두고시라는 한 음절의 단어를 생각했다는 그 자체가 벌써 사심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그래도 우리는 안해 봤습니다 " 라고 하는 그의 말에
나는 다소 공격적으로 " 아니 그러면 태어날 때부터 누구는 뱃사람이 되고
누구는 시인이 되라고 정해주던가요 "

누가 말했던가요
우리 같이 고립된 해상생활에서 연필마저도 멀리 한다면 나중에 편지 한장이라도 쓸수가 있겠습니까 ?

어느새 k에게 시라는 단어를 불러 일으켰던 하늘은 저녁노을로 물들고
적도 근해의 태양은 사과처름 빨갛게 익어 있었다
조금도 동공에 자극을 주지 않는 마치 유치부 꼬마화가들이 도화지 위에다 표현하는
빨갛고 동그란 태양 그대로이다

그 주위로 점점 짙어지는 석양은 마치 적갈색 프라이머
(선박용 페인트 이름)로 페인팅 해 놓은 듯한 장관이
아무리 필설로 미사여구를 주워모아 형용한다 해도 부족될것이다

본선은 북으로 북으로 미련없이 쾌주하는데 벌서 스페인 영해로 진입하고 있었다
마중을 나왔는가 ---------
끼익끼익 하며 갈매기들이 본선위를 비잉 돌다가 급강하했다가
쏜쌀같이 치솟아 오르는게 흡사 비행연습을 하고 있는듯 했다
뚫어지게 쳐다보고 도 쳐다봐도 마냥 신비스럽다
노련하고 유연한 그들의 팔다리며 불그스럼한 부리
그리고 그들의 체구는 파상적으로 읽을 수 있지만
진장 그 속에 숨어 있는 그들의 꿈이 무었인지
의문이 쳐다볼수록 짙어지고 이해하고 싶어진다

야간 당직을 마친지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아침 일찍 눈이 떠져 창밖을 본다
이번에 입항하면 아내가 나 대신 이곳으로 오기로 되어있어서인지
걱정이 앞선다
혼자서 이곳 웰바항구까지 잘 올려나 ?

해외여행은 처음인데 어쩌나 -------
나의 귀국대신 아내를 이곳까지 부른것은 계약만기도 문제가 있고
귀국하여 승선대기를 몇달을 해야한다는 선주의 이야기도 있었고
이왕이면 이런 기회에 스페인 관광이라도 시켜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어야 겠다는 나의 생각에서였다


                                                    ( 스페인 항구의 전경 )

꼭 10개월 만의 상봉이였다
다행이 마드리드 고속터미널 까지 서울에서 동행하시는 분이 있어 잘 올수가 있었다 한다
본선도 무사히 입항하고 회사에서 일주일의 휴가를 얻었다
아내는 말로만 듣던 알함브라궁전을 꼭 보고 싶다고 졸라댄다

그래서 여행계획을 수립하여 스케줄을 만들었다
웰바에서 마드리드로 가서 말라가까지는 비행기를 타고 말라가에서 차량은 렌트를 내기로 -----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중부지방에 위치해 있다
이 지방은 대체로 하라마.에나레스.만사나레스.강이 흐르는 과다라마 산맥(2,430 m)의 남쪽
경사면으로 이루어져있다
기복이 별로 없는 중부고원에 위치한 이 지역은 전형적으로 황토와 탁 트인 곡창지대인 카스티야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스페인 내란 (1936~39) 동안에도 몇차례의 격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산맥의 경사면에 있는 소나무숲은 마드리드 시의 시민들에게 새로운 유형의 여름 피서지로 각광 받고 있으며
겨울에는 스키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에나레스 강과 하라마 강을 따라 관계가 되는 두 줄기의 지역에서만 집약적인 원예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 마드리드의 외곽에는 주요 간선도로를 따라 별장과 공장들이 보였다

과다라마 산맥에 화강암 채석장들
남쪽에 점토지대가 있어서 마드리드 주에는 건축자재가 충분히 공급되고 있단다
산악지대에 비교적 쉽게 넘을수 있는 고개가 몇개 있다고 하는데 이름은 잘 모른다

특히 북동쪽에 있는 소모산 고개(1,417 m)에는 도로와 부르고스 철도가 지나며
나비세라다 고개에는 마드리드 - 세고비아 철도가 지난다
전국의 모든 철도는 이 지역을 지나는 것이다


                                             ( 마드리드 전경 )

말라가 시내의 철도에서 내려 점심을 먹고 렌트가를 찿아보기로 했다
"여기서 나 잃어버리면 당신 국제미아가 된다는 사실 알아 "
"혼자서 갈수 있겠어 그러니 꼭 붙들고 와 알았어 '
아내에게 한쪽 팔을 내어주며 빙그레 오랫만에 행복한 시간을 가져 보았다

말라가에서 그라나다까지는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편하게 운전 할수 있었다
조수석에 있는 아내는 여행이 무척 피곤한가 잠들어 있다
그라나다 시내의 어느 호텔에서 우리는 일박을 하기로 하였다
모처름 맞는 아내와의 오붓한 저녁 ----
무척 기분 좋은 밤이였다 -----------------------------


               
            ( 연꽃과 분수대 나무그늘이 함께 어우러진 그라나다 제네랄리 공원 )

아침 일찍 유명한 그라나다 제네랄리 공원을 둘러보고
상쾌한 아침공기를 행복한 기분으로 아내와 함께 흠뻑 마셨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샌드위치로 아침을 대신하고
알함브라로 향했다

도로의 곳곳에 분홍색 표지판을 따라갔다



                              ( 알함브라 궁전의 모습 )

그라나다는 세계7대 비경에 속한다
세비아 꼬르도바를 거쳐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쉬는 그라나다에 이르면
거의 스페인 무어라고 꼬집을수 없는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명을
혹은 따로 혹은 나란히 뒤섞여 간직하고 있는 묘한 나라다

매력의 늪에 슬금슬금 이끌려 들어간것은 그라나다가 그 분수령이 되었고
8세기의 도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똘레도에서 재확인 되다가
마침내 19세기를 시발점으로 해서 22세기를 목표지점으로 건설중인
바러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이르러서는 거의 경이와 몽환속의 침몰 그것이었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꿈꾸듯 어릿어릿한 영상이 끝없이 머리속을 들락거리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는 언젠가는 나를 다시 그곳으로 불러갈것 같은 예감을 갖게 한다

그라나다 시민들로 하여금 바라만 보는것으로도 행복하게하는
알함브라 궁전은 멀리서 바라보면 동화속의 풍경같은 아름다움을
곁에서 바라보면 성채로서의 견고한 소박성을
안으로 들어가면 인간의 온갖 영욕이 구석구석 간직되어 있는 신비 그 자체이다



거의 35도를 넘나드는 따끈거리는 한여름의 햇볕속에
알함브라 궁에서 바라보는 그라나다는 마치 알함브라를 향해 알현하는 듯한 모습으로
엎드려 있었다
아늑하고
고저넉하고
그러면서도 그지없이 순종에 스스로 만족해 하는 모습으로
편안하게 펼쳐져 있다

소위 그라나다 양식의 집들은 어느 유럽의 건축물과 다르다
건조한 기후와 표고 높은 산맥지대의 입지적 특이성에 더하여
그들만의 아름다움에 도취해 있는듯한
그라나다의 모습을 알함브라는 대견한듯 네바다의 언덕에서 내려다 본다



궁전 내부를 둘러보면
수 많은 소설과 시가 쏟아져 나올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 잡힌다
아라아네스의 안뜰에 들어서면 대사의 방이 있다
접견실이다

16세기 말 이사벨여왕이 컬럼버스를 불러 신대륙을 발견하게 한 바로 그 방이다
이사벨은 드레스안에 바람을 가득 담고 다닌 여인이다
대사의 방 높은 의자에 앉아 이사벨은 무릎꿇은 컬럼버스를 지극히 내려다 본다
짧은 시간동안 그들은 남모르는 그들만의 나눔을 재확인 한다
컬럼버스의 바라보는 눈길이 내려다 보는 그녀의 강렬한 눈길에 빨려들어
못 박히듯 잠시 길을 앓는다

두 사람은 수만 마다 이상의 대화를 그 짧은 눈길로 나눈다
그는 그녀의 명령을 어김없이 수행하고
성공적인 항해를 끝낸 후 수 많은 금.은.보화를 바친다

다른 한편 이사벨의 남편 페르난도왕은
이사벨의바람든 드레스로 인한 갈등을 풀기 위해 천하평정에 몸을 던진다
결국 역설적으로 이사벨의 바람기는 스페인의 천하통일은 물론
신대륙 발견을 위한 일등공신이 되는 것이다
아라아네스의 안뜰에서 왼쪽으로 가면 사자의 정원이 있다



백여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받혀진 아케이드가 둘러쌓여있고
가운데 열두마리의 사자가 떠 받히고 있는 분수가 있다
왕이외의 남성은 출입금지된 하렘이다
이층의 방에는 후궁들이 살고 있다

안뜰의 세개의 방가운데 남쪽 방은 비극의 방이라 불리기도 한다
아벤세라헤스의 방이다
아벤세라헤스 가의 한 남성이 하렘의 한 여인과 사랑을 나눈다
절절한 그들의 사랑은 위험을 무릎쓰고 진행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그들만의 뜨거운 밤은
왕의 에이전트들의 눈을 비켜나지 못한다
그의 목은 잘려 나가고
이 목은 방의 중앙 분수대에 놓인채 그 피가 사자의 분수에 까지 이르렀다
신분을 뛰어 넘는 사랑은 언제나 이루지 못한채 비극으로 끝나는것
비극의 방은 그런 메세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이번에는 한편의 시를 써 본다
왕이 오늘날의 사우나와 비슷한 목욕을 하던 방이 나온다
목욕탕 중앙에 난간이 둘러 있고
그 위에서는 악사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가운데
왕은 여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증기 목욕을 즐긴다

악사들의 눈은 뽑아버려 모두 맹인이다
악사들은 자신들의 악기솜씨를 스스로 원망하며
고향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들 생각에 비통한 나날을 보낸다
소리로만 들리는 왕의 엽색행각에 혐오 보다는 연민을 보냈음직하다

그러나 그라나다 시민의 안녕을 쥐고 있는 왕의 행복은 더 중요하다
그들은 오히려 사명감으로 악기를 연주했을지도 모른다
희생과 아픔이 묻어 있는 이방에도 여전히 짓밟힌 사람들의 한숨이 그대로 베어있다

린다하리 망루를 지나
왼쪽에 위치한 방에는 미국의 워싱턴어빙이 알함브라의 전설을 쓴방이 나온다
바의 벽면에 워싱턴 어빙이라는 영문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이방은 아마도 휴식은 위해 알함브라에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그대로 눌러 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을 집필했을 것이다
북으로 부터 레꼼끼스타의 폭풍에 더밀려
기독교 세력이 물밑듯이 내려올때 알함브라는 이슬람 최후의 왕조로 버티었다
그러나 역부족 이었다
최후의 왕 보탑딜은 그의 영광과 세월을 묻어둔채 눈물을 흘리며 네바다 험한 산길을 넘어 퇴각한다

그것은 재탈환의 기약이 없는 영원한 퇴각이었다
멸망한 나라의 마지막 왕의 최후를 두고 묘사되는 이야기는
아마도 그 골간에서 다른 나라의 경우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왕과 왕비와 그 주변의 제삼의 남녀들간의 관계와 갈등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민들의 고통을 담보한 그들의 화려한 삶의 부정적인 측면도
어디나 비슷하게 설명되고 있다
궁전 건축에 동원되었던 수 많은 석공들 관리들의 희생된 개인의 행복도
만만치 않은 이야기감을 제공할 것이다

그 들여다 본 진실속의 비극성과 문학성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래 실화와 민담은 그것을 재 확인 시키고 있다
알함브라에 대한 매력이 네바다 산세가 주는 특이한 주변 환경 때문인지
이슬람 건축양식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그림 같은 그라나다를 품고 있는 그 자태인지는 잘 알수가 없다

그러나 언젠간 이유를 얻으면 다시 가고 싶은
그리고 그때까지는 꿈속에서 가끔 마나고 싶은 것이다
행복한 아내와의 알함브라 여행을 여기서 끝낸다 ----
아쉬움을 남기면서 --------------------------------



                      중앙뉴스 /  / 신영수 기자/ youngsu49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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