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사회를 위해서 큰 역할을 한 분들에게 그 공적에 알맞은 예우를 해드리는 것은 후인들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각 지방을 돌다보면 원님이나 사또노릇을 했던 사람들의 공덕비가 심심찮게 세워져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어떤 비석은 송덕비(頌德碑)로 새겨 그 격을 조금 높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아무개 공덕비’라고 쓰고 뒷면에 공적을 적어 놓았습니다.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저렇게까지 두고두고 존경의 뜻을 표할까 감동할만한 일 아닙니까.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살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선정을 베푼데 대한 조그마한 감사의 표시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공덕비가 세워진 사또는 가렴주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고도 돈 한 푼 안주는 원님, 과도하게 보세(洑稅)를 매겨 이중삼중으로 수탈을 일삼는 사또, 이런 사람들에게 설마 공덕비를 세워줄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흉년이 들면 세금을 감면해주고, 보릿고개가 닥치면 겨죽이라도 쒀서 나눠먹는 마음씨를 가진 원님 사또나 만세에 길이 빛날 송덕비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것이 어찌 필자만의 생각이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우리 역사에 최초의 민중혁명인 동학혁명을 기억하실 줄 압니다. 그 원인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과 주민수탈에 있습니다. 조병갑은 이미 세워져있는 보 위에 또 하나의 보를 세웠습니다. 강물을 막아 가뭄에 대비하는 보를 강제부역으로 두 개를 만든 것은 순전히 보세를 두 배로 받으려는 얄팍한 수단이었습니다. 농사를 제쳐두고 동원된 백성들에게는 당연히 품 싹을 줘야 하는데 이것도 떼먹었습니다.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보로 조병갑의 배만 두 배로 불렸습니다.

이에 고부백성들은 전봉준 장군의 아버지를 대표로 뽑아 군수에게 호소문을 제출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관아에 들어갔다가 호된 경을 치러야 했습니다. 조병갑은 불문곡직 매질부터 퍼부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전봉준의 아버지는 내리치는 몽둥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고부군수의 이러한 행패는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재임 중 자신의 공덕비를 두 개나 세워놨습니다. 백성 알기를 발톱 밑에 떼만도 여기지 않은 군수가 물러난 다음에는 어느 누구도 공덕비를 세워주지 않을 것을 미리 짐작하고 현직에 있으면서 미리 공덕비를 세운 것입니다.

그것은 차라리 악덕비(惡德碑)라고 해야 격이 맞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비문이 채 마르기도 전에 고부백성들은 황토현에 모여 조병갑을 규탄하며 궐기했습니다. 동학혁명의 시작입니다. 말을 거꾸로 타고 꽁무니야 날 살려라 하면서 도망친 조병갑의 꼬락서니는 권좌에 있을 때와 너무나 다른 모습 아닙니까. 비겁자로 낙인찍힌 그는 조정에 의해서 파직되었으나 뇌물을 바치고 다른 벼슬자리를 차지하는 후안무치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의 직계인 증손녀가 노무현정권 때 홍보수석이 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살아있는 권력자들은 조병갑처럼 동상 세우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승만의 동상이 맨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압니다. 조선인의 피는 똑같은 것인지 북한의 김일성도 동상 세우는 데는 빠지지 않습니다. 독재로 국민을 억압하면서도 그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은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도무지 그 속을 모르겠습니다.

쏘련에서는 레닌과 스탈린,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이라크의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 이집트의 무바라크 등등 당대를 호령하던 독재자들은 모두 최대의 권력을 휘두르며 권력의 최절정에 있을 때 동상을 건립했습니다. 동상을 세우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안중에는 오직 높다랗게 서있는 자신의 동상이 석가나 예수처럼 영원불멸의 존경과 숭상의 대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신(神)이 아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인간인 이상 죽어야 하니까요. 독재자들은 거의 다 국민에게 쫓겨납니다. 동상은 밧줄을 걸어 끌어 내립니다. 김일성의 동상은 아직까지 건재하지만 3대 세습이 종치는 날이 언젠가 오면 땅바닥에 내동댕이 처질 날이 닥치지 않겠습니까. 동상은 헛된 욕심의 산물입니다. 존경받지 못할 동상은 며칠 가지 못해서 시궁창에 틀어박히거나 갈기갈기 찢길 것입니다. 당신들이 자유총연맹에 세운 이승만동상은 4.19영령들의 울부짖는 원한의 소리에 귀신조차 또다시 하와이로 도망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됩니다.

동상 세워서 얻을 것은 ‘부정과 독재의 화신’이라는 역사의 심판뿐인데 어째서 바보같은 짓을 하는 것입니까. 동상을 우상화한다고 역사의 기록을 깨끗이 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한심합니다. 지난 4.19혁명일에는 느닷없이 “사과를 하겠다.”고 오만불손한 행동을 하더니 이제는 동상으로 나 보란 듯이 염치를 생각하지 않으니 그대들의 정신연령은 도대체 몇 살입니까. 자진철거하고 먼 훗날 역사의 신원(伸寃)을 기다리는 것이 어떨까요. 말없는 국민의 노여움이 극에 달하면 영원히 역사의 범죄자로 남을 수밖에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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