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의원들이 9일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과 관련된 투표를 놓고 갈등하다가 투표 자체를 무산시켰다.

이날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대형스크린에는 ‘제303회 국회(정기회) 제4차 본회의’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들어왔지만, 자리를 지키던 여야 의원들은 결국 50분 만에 모두 자리를 떠나며 본회의를 무산시켰다.

여야 의원들이 이날 갈등을 벌인 표면적 이유는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선출’ 등에 관한 안건 순서 때문이었다.

한나라당은 양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안을 먼저 처리한 뒤 민주당이 추천한 조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선출안을 표결에 부칠 것을 주장했으나,

민주당은 이와 반대 순서로 안건을 처리하자며 맞섰다. 민주당은 양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먼저 통과된 후,

조 후보자 선출안이 한나라당의 반대로 부결될 가능성을 걱정했고, 한나라당은 정반대의 결과를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여야의 갈등 이유는 조 후보자의 이념적 성향을 둘러싼 시각차 때문이었다. 민주당이 추천한 조 후보자는 지난 6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자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신뢰하나,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1998~2006년에만 네 차례 위장 전입을 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조 후보자는) 부적격자”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언론을 통해 조 후보자의 발언이 왜곡돼 전해졌고, 속기록을 보면 조 후보자가 실제 한 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민주당은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라도 조 후보자와 같은 재야 출신 인물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결국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안건 순서와 관련된 여야 협상이 결렬됐다는 소식에 하나둘 자리를 떠 모두 본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한동안 자리를 지켰던 한나라당 의원들도 결국 모두 본회의장 밖으로 빠져나가며 이날 본회의는 50분 만에 무산된 것이다.

앞서 조 후보자를 추천했던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권고적 당론으로 조 후보자의 선출에 동의해달라”며 전날까지 ‘맨투맨 설득’을 하는 등 공을 들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천안함 발언’으로 이념편향 논란을 빚었던 조 후보자에 대한 양보는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조 후보자 선출안을 통과시키면 한나라당의 기존 지지세력인 보수층에까지 이탈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강한 반대 전략을 세운 모양새다.

결국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오는 15~16일 본회의를 재소집, 두 안건을 상정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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