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을 둘러싼 대결이 급기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불러왔다. 오세훈의 깨끗한 사퇴로 보선 승리는 민주당 측에서 어부지리를 얻을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침도 삼키기 전에 곽노현의 선거 부정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뒤늦게 무상급식은 잘못이라는 여론조사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통에 이번에는 한나라당 측에 유리해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엎치락뒤치락하던 선거양상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안철수가 등장하면서 일대 폭풍이 되었다. 컴퓨터바이러스 백신 전문가로서 카이스트 교수로 초빙되기도 하고, 불과 몇 달 전에는 서울대 융합기술과학대학원장으로 스카우트된 사람이다.
 
일반인들은 그의 이름이 생소하지만 젊은이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졌다. 의사의 길을 마다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여 명성과 부를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빌게이츠처럼 재단을 만들어 재산을 기부한 일은 들어보지 못했지만 깨끗한 이미지는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줬다. 그런 사람이 정치판에 뛰어들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었는데 갑자기 방을 붙이고 나섰다.
 
국민들은 열광했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부정과 부패사건으로 날이면 날마다 불려 다니고, 감옥에 들어앉아 재판을 받는 꼬락서니를 보면서 신물이 나던 판에 새 인물이 등장했으니 당연하다. 같은 당끼리 주류, 비주류로 나뉘고 친박, 친이로 분열되어 가치 없는 싸움질을 하고 있으니 안철수 등장이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불교에서는 미륵불을 기다리고 기독교에서는 메시아를 기다린다. 안철수는 썩어문드러진 현실을 바꿔줄 신인(神人)처럼 우러러보였다.

그리고 고작 엿새 만에 몸통을 숨겼다. 모든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스스로의 입으로 “서울시장은 혼자서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선언했던 사람이 박원순을 만나더니 호랑이 앞에 선 쥐새끼처럼 발랑 허연 배를 뒤집어 보이며 누워버렸다. 많은 것을 바꾸겠다는 의지와 소신은 눈 녹듯 사라지고 오직 “한나라당으로는 안 된다.
 
박원순이 시장이 되는 것이 낫다”고 말 뒤집기를 한 것이다. 이로써 안철수는 죽었다. 컴퓨터 전문가로서 서울대 교수직을 맡고 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평가 점수에서 0점이다. 엊그제 활화산처럼 펼쳤던 경륜이 이슬비 한 자락에 날아가 버리다니 그의 본 면목이 그것뿐이었던가.

적어도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에는 주위 사람들과 깊은 상의를 했을 것이고 확고한 신념이 섰기에 나서지 않았겠는가. 시정잡배처럼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침 시장선거가 있다고 하니까 충동적으로 출세 한 번 해보자”는 속된 생각이었다면 거기에 놀아난 국민들은 뭐란 말인가. 천하의 공인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사람은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도 남의 눈을 의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국회의원 중에 몇 사람이 걸핏하면 성추행이나 성희롱으로 인구에 회자 되는 것을 보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안철수의 행동은 국민 전체를 희롱하고 농락한 죄가 너무나 크다. 박원순에게 양보하기 전에 국민 앞에 사과부터 해야 한다. 큰 기대를 줬던 만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 공인이 갖춰야 할 인격이다. 시장 대신 대통령으로 나선다는 말도 있지만 떡잎부터 싹이 노란데 더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안철수 파동 덕분에 서울시장 선거는 진보진영에서는 박원순이 나오기로 되었지만 민주당과의 조율이 쉽지 않다. 그나마 한명숙이 들어가는 통에 민주당 경선후보는 큰 인기가 없는 천정배, 신계륜, 추미애 등으로 마이너리그를 치른다. 한 사람을 뽑아놓고 박원순과의 범야권 단일화작업을 할 모양이다. 누가 되든 간에 결국 박원순으로 단일화될 가능성이 크다.

중도보수 측에서는 이에 맞선 인사로 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 소송을 승리로 이끌어 명성을 떨친 이석연변호사를 내세웠다. 고시 양과에 패스하여 행정부와 헌법재판소를 거쳐 법제처장까지 역임한 이석연은 경실련 사무총장으로 시민운동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경력이 두드러진다. 풍부한 행정경험이 서울시장 직에는 적격이지만 한나라당과의 단일화 문제는 민주당보다 더 복잡하다.
 
민주당 경선 후보 중에는 여론조사에서 두 자리 숫자가 안 보인다. 그러제를 놓고 이석연과 나경원이 담판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 나 한나라당 나경원은 30%를 웃돈다. 그와의 조율이 어떻게 되느냐하는 문

여당과 제일 야당의 고민이 높을 수밖에 없는 서울시장 보선은 내년으로 닥친 총선과 대선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된다. 종북좌파 세력과 무상시리즈로 내닫는 포풀리즘에 대항하여 굳건히 소신을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석연과 박원순은 각기 중도보수 세력과 진보세력을 대표하고 있는 시민운동가이며 변호사다. 행정경험에서 크게 앞선 이석연은 범여권 단일화를 이룬 다음 선거의 현실로 볼 볼 때 한나라당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박원순은 민주당 후보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범야권 단일화를 이룬다면 결국 당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의 맞장 대결은 더욱 흥미를 끈다. 서울시민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하여 명실 공히 서울시민의 대표를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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