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가 지난 10월 6일 우리 곁을 떠났다. 2004년 췌장암 수술 그리고 2009년 간이식 수술을 했다. 그리고 올해 초에 병세가 악화되어 병가를 냈다. 시한부 삶, 병가 중에도 원격업무를 보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도 일에 대한 열정은 놀라웠다. 희귀성 췌장암에 걸려 이후 상태는 악화되었고, 현대의학도 그를 살려내지 못했다.

그가 만약 10년 더 생존했더라면 또 다른 ‘기적’을 낳았을 것이다. 그는 분명 천재적 기업가였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입양되고, 대학중퇴 등 열악한 환경은 그에게 장애물이 아니었다.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하고, 세상의 페러다임을 바꾸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가 만든 컴퓨터를 파괴하고,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들어 또 다시 디지털 시대 뉴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했다. 그는 창조적인 파괴자이자 파괴적인 혁신가였다.

그래서 잡스에게는 천재, 혁명가, 혁신의 아이콘, 잡스교의 주교, 비즈니스계의 악동, 일등 기업인 등 수 많은 수식어가 있다. IT 세계는 잡스가 있어 더 자유로워지고 상상의 영역은 점점 무한해졌다. 그의 혁신과 창조의 핵심동력은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이며 이것이 곧 애플과 잡스의 비즈니스 철학이다. 그동안 잡스가 마이크를 잡으면 세계가 긴장했다. 그가 사망하기 직전에도 아이폰5를 출시할 때 잡스가 나온다는 말도 있었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고, 아이폰4S를 현재 CEO인 팀 쿡이 발표했다. 이제 잡스의 간결하고 청중을 압도하는 프리젠테이션도 더 이상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잡스는 1998년 아이맥을 세상에 내놓을 때부터 간편한 복장을 입기 시작했다. 상의는 블랙터틀넥 셔츠, 하의는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를 싣었다. 우스개 소리로 그의 옷값은 상의셔츠 15달러, 청바지 46달러, 운동화 100달러로 총 161달러다. 세계적인 갑부가 20만원도 채 안되는 옷을 입고 다녔다. 이 패션 스타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는 옷을 골라 입는 것조차 시간낭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는 늘 단순성을 강조했고, 오로지 일에 몰입을 했다. 오늘날 애플 제품의 위업은 잡스의 집중과 몰입의 산출물이었다.

잡스의 생부(압둘타파 존 잔달리)는 시리아 출신, 미국 이민자로 얼마전 “아들과 커피 한 잔만 나눌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말을 해서 언론에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결국 잡스의 사망으로 생부와의 만남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자지간의 정을 나누지 못한 것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당시 잡스의 생모인 조앤 심슨의 부모들의 절대적인 반대로 결혼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존 잔달리가 잡스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애플의 본사는 실리콘밸리 쿠퍼티노에 있는데, 2015년을 목표로 신사옥을 2012년에 착공할 예정이다. 주차장은 모두 지하주차장으로 만들고, 녹지공간이 80% 차지하는 친환경적인 4층 건물 12,000여 명을 수용하는 도너츠형 건물이다. 애석한 것은 잡스가 이 신사옥에 준공식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지난 6월에는 쿠퍼티노 시의회에서 신사옥 설명회가 있었는데 병색이 완연한 잡스가 직접 브리핑을 했다. 그가 보여준 솔선수범의 리더십은 이렇듯 남다르다.

잡스는 2005년도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Stay hungry, stay foolish"란 명언을 남겼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전진하라는 메시지다. 잡스의 애석한 사망은 마치 친구를 잃은 느낌이다. 전 세계인의 존경받는 천재적 기업가로 그가 남긴 교훈은 혁신의 교과서가 될 것이다. 그를 추모하는 행렬이 지구촌을 잇고 있다. 비록 잡스가 세상을 떠났지만 잡스의 족적과 정신은 살아있다. 애플은 영혼을 할 것이며, 제2, 제3의 아이폰은 계속 나올 것이다.

(한국소셜경영연구원 원장/ 소셜리더십 저자, kys959@hanmail.net)

▲  강요식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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