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이행법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했으나 ‘공’을 넘겨받은 우리나라에선 국회 통과가 녹록치만은 않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독소조항이라고 부르는 ‘뜨거운 감자들’을 둘러싼 논쟁은 한미 FTA 논의가 시작되고 8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는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한미 FTA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이유다. 전문가들은 ISD 때문에 한국 사법부가 분쟁에 개입할 여지가 없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보호제도가 무력화될 가능성도 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민간 차원에서 진행 중인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어려워진다. 쇠고기 관세 철폐 여부도 논란이다.

농축산업은 한미 FTA로 큰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농민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이대로 한미 FTA를 비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당장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이 힘들어진다. 우리 정부가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행위 자체가 미국 투자자에 대한 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투자자에게 차별금지와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 '국제관습법에 따른 대우'를 받을 권리를 보장해주고 있다.

이 부분은 지난 13일 국회 외통위에서 열린 한미 FTA 관련 질의에서도 쟁점이 됐다.

박선영 의원(자유선진당)은 질의를 통해 "한미 FTA가 이대로 통과되면 상임위에서 논의하고 있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동반성장위원회와 외교부는 "민간에서 자율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정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한미 FTA와 정면으로 부딪칠 수 밖에 없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도 "큰 자리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라며 적합업종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또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중소기업청 고시로 지정하겠다는 동반위의 계획도 어려워진다. 동반위는 민간 자율로 적합업종을 선정하고 이를 중기청 고시로 지정해 강제성을 뒷받침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었다.

동반위 관계자는 "한미 FTA 같은 국제 규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그때까지는 중기청 고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SSM(기업형 슈퍼마켓) 규제도 논란이 될 수 있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정부가 제정한 유통법과 상생법은 한미 FTA 의무 유보내용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다.

민주당 관계자는 "SSM 보호를 위한 법률과 중소기업 적합업종 모두 한미 FTA 협정문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유보내용에 이들을 명시해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SD도 논란의 대상이다. 이는 투자자가 상대 국가의 정책 등으로 이익에 침해를 받았을 경우 해당 국가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 등 제3의 중재기구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다.

민주당 등 야당은 ISD에 대해 투자자들의 분쟁에 사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투자자 범위가 미국인 투자자가 직접 한국의 서비스업에 투자한 경우 뿐만 아니라 한국기업에 투자한 간접투자자까지 포함하는 것도 문제라고 보고 있다.

예컨대 한국 정부가 두부를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선정해 관련 기업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킬 경우 이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투자자들도 ISD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외교통상부는 "이는 외국인 투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라며 "외국 투자자의 국내 투자 유치를 촉진하고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한미 FTA 비준동의안에 대한 논의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자 한나라당 측에서는 협정문 자체를 고치는 데 반대하면서도 법적 효력을 갖는 서신(letter) 교환을 통해 양국이 ISD를 공정하게 이용하도록 합의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ISD를 하고 있는데도 민주당 측에서 많이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협정문 자체는 고치지 않는 대신 최대한 공정하게 (ISD를) 운영하자는 서신을 교환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한나라당으로부터 서신 교환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며 "ISD에 대한 문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서신 교환도 내용이나 협정문에 준하는 효력을 가질 수 있는 지 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것"이라고 답해 ISD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농축수산업은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대표적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이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미국 쇠고기에 붙는 40% 관세는 15년간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관세가 철폐될 경우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우월한 미국 농축수산물의 수입이 급증할 것"이라며 "축산업의 경우 미국산 쇠고기의 관세가 철폐돼 국내 축산 농가의 생산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정부도 농축수산업에 대한 피해보완대책 마련을 위해 2007년 협상체결 당시 21조1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던 것에서 지난 8월 축산업 시설현대화를 중심으로 1조원 더 늘린 22조1000억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미국산 쇠고기 관세를 10년간 유예하고 11년차부터 8%씩 철폐해 15년차에 40% 관세를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에 국내 축산농가들이 경쟁력을 마련하고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를 수용하려면 협정문 자체를 수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상품 분야 전반에 대한 재협상이 불가피한 만큼 현실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작다. 다만, 여·야·정이 향후 논의를 통해 피해보완대책의 규모나 내용 등을 조정하는 식으로 접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재협상은 결국 FTA를 하지 말자는 것인 만큼 중소상인·농어민 보호 등에 대한 정신은 받아들여 피해보완대책을 강화하고 다음에 협상하는 식으로 절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쇠고기 관세유예 등 민주당이 주장한 재재협상요구는 지나친 우려인 만큼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쉽지 않다"면서 "여당이 통상절차법·무역조정지원제도 등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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