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역사는 길다. 모르긴 해도 원시인들도 술을 마셨을 가능성이 크다. 음식을 오래 놔두면 발효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술이 생겨날 요소는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지가 점차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술의 마력에 빠진다. 이런저런 실험을 거쳐 양조술(釀造術)을 습득하고 보관방법까지 익히게 되면서 인류는 술 없이는 못살게 되었다.
 
술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처음에는 발효주가 주류를 이뤘겠지만 희석주와 증류주가 등장한다. 주정을 만들어 물과 섞으면 희석주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대부분의 소주는 희석주에 속한다.

이런 술중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술로 떠오른 게 막걸리다. 대표적인 발효주인 막걸리는 예전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술로 전해져온 농주다. 땀을 흘리며 밭을 일구고 논을 가는 농부들이 쉬는 참에 시원한 논두렁에 둘러앉아 김치조각과 함께 한 사발 들이킨다고 해서 농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술이 뜨물처럼 텁텁하다고 탁주라고도 부르고 탁배기라고도 쓴다.
 
막걸리는 누구나 마실 수 있는 값싼 술로 알려져 온 서민들의 술이다. 점잖은 자리에서는 거의 내놓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막걸리가 요즘 들어 최고 상한가를 치고 있다. 막걸리의 발효성분이 탁월한 유산균 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지면서 일본, 미국 등에서도 단연 인기다. 날쌘 일본인들이 막걸리라는 한국의 고유 명칭을 자기들의 상표로도 등록했다.

한국을 찾는 외국 귀빈들의 만찬에도 막걸리와 김치가 빠지지 않게 된 것은 국위선양에 큰 도움이 된다. 술은 우리나라에서 엄격한 규제의 대상이었다. 국세청의 허가를 받은 업체 아니면 일체의 제조가 불가능했다. 종류를 막론하고 술 제조업은 큰 이권이었으며 집에서 담가 먹으려고 담그는 가양주(家釀酒)조차 적발되면 형사 처분을 받았다.
 
그 뒤 전반적으로 술은 규제대상에서 제외된다. 술의 제조가 자유화되면서 아마 전국적으로 수천 종의 새로운 술이 생겨난 듯하다. 지자체별로 별의별 특징을 내세워 각종 술을 만들어낸다. 그동안 제조허가를 받지 못해 영원히 묻힐 뻔 했던 고유 특색을 가진 지역 명주(名酒)들이 줄을 이어 태어났다.

이 통에 재미를 보는 사람들은 술꾼이다. 아무 술이라도 마시고 싶으면 마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술값인데 끼니걱정은 해도 술값 걱정하는 이는 보지 못했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밥값은 없어도 술 마실 돈은 있다는 얘긴데 술은 얻어먹기도 쉽고 가장 적은 돈만으로도 한 잔 술을 걸치는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술을 마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욕구불만에 가득 차있었던 사람들에게 술은 일종의 해방역할을 해준다. 알코올 성분이 정상적인 뇌 기능을 어느 정도 마비시키기도 하고, 억눌렸던 감정을 해소하기도 한다. 통이 커져 씀씀이가 헤퍼지는 효과도 발휘한다. 평소에 자장면 한 그릇 사는 것도 인색했던 사람이 갑자기 이것저것 안주를 시킨다. 안하던 짓을 하면 술이 이성을 마비시켰음이 분명하다.

술로 인해서 인생을 망치는 사람도 많다. 술을 매우 좋아하다가 빠져나오기 어려운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알코올중독자라고 하는데 치료가 쉽지 않다. 전문치료기관이 있긴 하지만 당사자의 의지와 결합하여야만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다. 게다가 술이 약이 되기도 하지만 과음 버릇은 병을 불러온다.
 
간암의 가장 큰 원인이 술이라는 통설도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남성 위주였던 시대가 있었지만 근래에는 여성 술꾼도 상당하다. 건강하게 마시는 술은 신체 기능에 도움이 되지만 마구 퍼마시는 술은 독이 된다. 특히 술 마신 후의 버릇과 관련하여 많은 후일담이 생긴다. 우연히 접한 전북대신문에서 대학생들의 술버릇에 관한 기사를 읽고 생각나는 점이 많았다.

혈기왕성한 젊은이 540명에게 설문을 통해 “가장 감당이 안 되는 타인의 술버릇은?”이라는 주제로 통계를 낸 것이다.
 
그 중에서 236명(43.7%)이 ‘아무 곳에나 토하기’를 선택했다. 술을 마시고 토하는 사람들은 과음이 첫째 원인이지만 위장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두 번째는 113명(20.9%)이 ‘했던 말 또 하기’다. 나이 먹은 사람들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대학생들도 그런 버릇이 있는 걸 알고 놀랐다. 셋째는 105명(19.4%)이 ‘울기’를 꼽았다.
 
이것은 참으로 의외다. 좋은 술 마시고 무엇이 그렇게 허전하여 울게 될까. 네 번째는 ‘도망가기’다. 57명(10.5%)이다. 더치페이 술값을 안 내려고 도망가기도 하겠지만 강권하는 술을 피하기 위해서 슬쩍 자리를 뜨는 수가 있을 것이다.
 
기타에는 술 먹이기, 시비걸기, 뒷말하기 등 다양하다. 사람이 술을 마셔야지 술이 사람을 먹으면 산통이 깨진다. 술을 안 마실 수는 없고 건전한 술 문화를 정립할 수 있도록 각자 조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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