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말 나라를 망친 임금은 고종과 순종이다. 이들 두 임금은 조선의 마지막을 비극적으로 맞이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영토 확장에 여념이 없던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맞닥뜨려 온갖 수모를 당했다.
 
순종은 고종의 아들로 태어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모르고 일제에 의해서 강제로 양위한 고종을 이어 형식적인 왕이 되었다. 따라서 근세사에 순종의 역할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망국의 왕은 고종이다. 한나라의 왕이 되어 부러울 것 없는 세상 주인이 되었지만 그의 앞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붕당 싸움과 가렴주구에만 몰두하고 있던 당시의 정치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개혁을 시도하고 새로운 판을 만들기 위한 깊은 고뇌를 거듭했다. 외세의 개입으로 뒤틀리기만 하는 정치를 바로 잡으려고 외국과의 조약도 맺어보고 아관파천이라는 전대미문의 수모도 감수했다.
 
전봉준의 동학혁명에 대처하려고 전주화약으로 달래보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끈질긴 음모는 급기야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이에 반발한 세력은 크게 저항했으나 일본의 무력 앞에 무너지고 만다.

혼란이 가중되며 정치세력들은 친일파가 되기도 하고, 친미파가 나오는가 하면 친러파, 친독파 등 날이 새면 바뀌는 외세 의존형만이 판을 치는 것이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극도의 고독에 싸인 고종황제는 사면초가의 신세가 되었지만 그래도 굳센 의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무진 애를 쓴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보통사람 같으면 어림도 없을 과감한 행동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의 퇴위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 헤이그 밀사파견은 고종의 피 눈물 나는 고뇌의 산물이다.

고종은 망국의 왕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능하고 나태한 인물로 묘사된다. 남겨진 사진으로 보더라도 육중한 몸집이 눈에 띤다. 얼굴에도 살이 많다. 한마디로 무골호인 타입이다. 이런 분에게 닥친 망국의 징조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구나 자신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서 상가 집 개 노릇도 서슴지 않았다는 아버지 대원군과 아내 명성황후와의 갈등과 반목 사이에서 갈피 잡는 것도 수월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 틈을 비집고 온갖 모략이 난무했을 것이니 왕의 자리는 바늘방석이었다.

그래도 그는 굳센 사람이다.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을 실천했다.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기득권조차 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헤이그 밀사 파견은 순전히 그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왕은 이상설 이위종 이준을 밀사로 파견하여 일본의 강제로 맺은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친서를 보낸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판을 치는 당시의 국제정치 상황은 이미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조선의 입장에서 이를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조선의 왕은 아무 실권도 없는 허수아비 취급을 당했다. 이에 분통을 이기지 못한 이준열사는 분사(憤死)하고 만다. 이준의 죽음은 곧장 조선 땅에 전해져 그가 만국평화 회의장에서 스스로 배를 갈라 피를 뿌렸다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조선 백성들의 일본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것은 애국심의 발로가 사실여부에 상관없이 백성들의 본분이기 때문에 미담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이준의 분사는 네덜란드에서도 큰 충격을 준다. 신문마다 이준의 죽음을 대서특필로 알리고 조선을 집어삼킨 일본의 만행을 상세히 해설하고 있다. 장례식은 네덜란드 최고위층의 예우로 치러진다. 비록 주권조차 빼앗긴 나라의 백성이지만 그 의기를 높이 산 것이다. 고종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퇴위를 강요받아 순종에게 양위한다. 그러나 그는 을사늑약 이전에 조선의 땅 독도를 울릉군 소속으로 하는 칙령을 반포하여 행여 있을 수 있는 영토분쟁에 대비하는 선견지명을 발휘한다.

조선관보 1716호(발행일자 1900년 10월27일)에 따르면 고종은 강원도 울진군 울릉도를 군으로 승격시키고 독도를 울릉군 소속으로 반포하는 것이다. 1900년 10월25일이다. 올해로 111주년이다. 일본정부는 역사교과서와 지리부도를 통하여 “독도를 한국이 강점하고 있다”는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다케시마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독도를 일본 땅으로 둔갑시키려 한다. 이에 대하여 독도칙령기념사업국민연합(대표 조대용)과 한국시민단체네트워크(대표 이갑산)는 공동으로 독도칙령기념식을 개최했다.

10월25일 독도의 날을 맞이하여 서울 탑골공원에서 개최된 기념식에서는 기념행사의 전국화, 일본 교과서 폐기, 일본정부의 공식사과, 일본과의 FTA반대,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반대 등을 결의했다. 특히 백두산 한라산 등에서 채집한 물과 흙의 합수(合水) 합토(合土)를 통하여 전국의 일원화와 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행사도 겸했다. 수없이 많은 독도단체들이 모두 나름대로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독도칙령을 발굴하여 기념식을 가질 수 있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두 시민단체의 노고가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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