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된 지 어언 63년이다. 광복 직후 중국에서 귀국한 광복군을 막 바로 국군으로 전환했더라면 우리 군의 입장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광복군 중에는 조선 상륙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서 미군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 많다.
 
이른바 OSS부대다. 장준하 노능서 김준엽 등도 이 훈련을 받고 한반도 상륙작전에 대비하고 있다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좌절한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들 세 사람이 군인 복장에 총을 들고 찍은 기념사진은 OSS의 상징이다.

이처럼 한국 청년들이 광복 전에 실질적으로 미군과 공조(共助)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항복하자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은 군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 심지어 임시정부 요인조차 모두 개인자격으로 귀국하게 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광복군 대장 이범석이 중국군 비행기로 여의도 비행장에 상륙하자 미군 측에서는 상륙을 불허하고 중국으로 되돌려 보내기도 한다. 해방된 내 나라 내 땅에 돌아오는 것도 미군정의 정책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었으니 모처럼 찾았던 조국에서 쫓겨나는 아픔이 어쨌겠는가.

그러나 미군정 3년을 거친 후 드디어 우리는 정부수립을 하는 기쁨에 젖는다. 이 때 함께 생긴 게 국군이다. 국군은 일제하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던 사람, 경찰관이었던 사람, 광복군이었던 사람들이 섞여 창설되었다. 국토를 방위하기 위해서는 우선 군인이 있어야 된다.
 
일본군 만주군 중국군을 가려낼 차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총을 쏠 줄 아는 사람이면 우선적으로 국군에 편입되었고 계급도 무더기로 승진할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인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핑계 삼아 친일파를 기용한 것을 변명한다. 이승만의 친일파 기용문제는 정부요직을 말하는 것이지 국군 창설 멤버에는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였다. 아무튼 우리 군은 그 뒤 6.25전쟁을 계기로 급작스럽게 성장한다.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훈련도 부족했던 국군이 물밀듯 쳐들어오는 북한 괴뢰군에 맞서기는 어려웠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며 부산까지 밀렸다. 한발만 삐끗하면 바다로 떨어질 판이다. 일부 특권층에서는 외국으로 내뺐다.

전쟁을 계기로 국군은 급속도로 성장하며 규모가 커진다. 3년간의 전쟁 끝에 체결된 정전협정은 언제 막을 내릴 지 알 수 없는 평행선을 그으며 분단 고착화에 기여한다. 국군의 규모는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으로 증가하여 외형적으로 엄청나게 커진다.
 
6.25전쟁에서는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16개국이 전투병을 파견하였고 많은 나라에서 의무병과 공병을 보내어 한반도 내의 전쟁이면서도 가히 세계적인 전쟁양상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이 통에 우리 국군은 숫자에서도 많아졌지만 내실이 충실해진다.

온갖 신형무기를 갖추고 공군과 해군은 이제까지 보지도 못했던 최신예기와 군함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군이 내외 모든 면에서 모양을 갖추면서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국군의 날 에어쑈 등 대국민 서비스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요즘에는 그러지도 않지만 과거에는 국군의 날 행진이 있으면 시민들이 모두 거리에 몰려나와 군의 장엄한 행진에 갈채를 보냈다. 북한 소식을 전하는 동영상을 보면 북한 인민군의 시가행진도 큰 볼거리가 될 듯싶다. 못살고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그것으로라도 서비스하는 것인지 모른다.

군 행진 맨 앞에는 반드시 군악대가 앞장선다. 브라스밴드로 구성된 군악대는 멋진 복장에 악대장이 흔드는 지휘봉에 매료되는 수가 많다. 학교 다닐 때에도 학교악대의 대장은 인기가 높았다. 이런 군악대를 육해공군 그리고 해병대 미8군군악대까지 모조리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건군 제63주년을 기념하여 제4회 국군군악페스티벌이 잠실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열린다는 초청을 받고 제백사(除百事) 쫓아갔다. 웅장한 군악대의 연주를 들어본 지 언제였더냐.

심장을 쿵쿵 울리는 군악대의 힘찬 연주에 맘껏 박수를 보낸다. 체육관을 꽉 메운 청중들도 열광한다. 게다가 젊은 군인들을 의식하여 프로그래밍을 한 모양으로 연예인 출신 병사들과 홍보지원대원까지 출연하여 기량을 뽐낸다. 강인, 신옥철, 양세찬, 미쓰라진 등이다. 가수 박효신, 케이팝을 주도하는 달샤벳이 등장하자 실내는 그들을 응원하는 함성에 묻힌다. 군 입대 문제로 말썽을 일으킨 ‘싸이’는 스스로 6년 만에 민간인 신분을 되찾았다고 하면서 대단한 청중 장악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주인공은 역시 군악대다. 해군 군악의장대대, 육군 의장대와 군악의장대대, 공군군악의장대대, 해병 군악대 그리고 미8군 군악대가 차례로 연주 솜씨와 질서정연한 의장대 쑈를 선보였다. 국방부전통악대가 별도로 ‘진군의 북소리’ 모듬 북 공연을 더하여 영상물 상영과 함께 빛을 보탰다.
 
마지막 프로는 이들의 합동연주다. 수백 명의 밴드가 일대장관을 이룬 이 날의 군악연주는 모처럼 맛보는 일대 명연주로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어떤 오케스트라보다도 힘차고 밝은 군악연주회였다. 군악이여! 더 크게 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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