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망 무임승차 논란
통신업체 - "5성급 호텔을 지어놨더니 잡상인들이 호텔 로비에 리어카 끌고와 장사하는 격"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 네이버는 지난 7월 3세대(3G) 이동통신망을 통해 프로야구 전경기를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야구 경기를 볼 수 있어 출시 2주일 만에 하루 2만명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이 서비스가 엄청난 무선 인터넷 용량을 잡아먹는다는 것. 한 차례 게임에 보통 3시간 걸리는 프로야구 경기를 스마트폰으로 시청하면 약 700메가바이트(MB)의 데이터를 사용한다.
월 4만4000원 요금제의 데이터 한도인 500MB를 단 하루에 넘어서는 것이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한 이용자들은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껏 사용했다.
그러자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은 "무선 인터넷 사용이 폭증하면서 전체 통신망 속도가 느려진다"며 네이버에 강하게 항의했다.
결국 네이버는 한 달 만에 3G통신망 사용을 중단하고 와이파이(무선 랜)를 이용한 중계로 전환했다.
◇"통신망 쓰려면 포털·스마트TV 제조사도 돈 내라"
통신사들은 "해마다 수조원이 넘는 돈을 통신망에 투자하는데, 포털과 전자회사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무임(無賃)승차한다"고 주장한다.
통신사는 가입자에게만 이용료를 받고, 포털에서는 별도의 통신망 사용료를 받지 않는다.
통신사들에 따르면 현재 무선 인터넷을 많이 쓰는 1%의 사용자(일명 헤비유저)가 전체 데이터의 45%를, 상위 10%가 87%를 차지한다.
인터넷은 한정된 네트워크를 여러 사람이 나눠서 사용하는 구조다.
특정인이 많은 데이터를 쓰면 다른 사람은 속도가 느려져 불편을 겪는다.
그러다 데이터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4세대 이동통신(4G LTE)에서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없앴다.
통신사들은 대용량 데이터를 내보내는 네이버·카카오톡 등 인터넷 업체에도 사용료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비싼 돈 들여서 5성급 호텔을 지어놓았더니 잡상인들이 호텔 로비에 리어카를 끌고 들어와 장사를 하는 격"이라며 "우리 통신망에서 돈 버는 회사들이 최소한의 사용료는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스마트TV를 제조하는 삼성전자·LG전자에도 불똥이 튀었다. 스마트TV는 인터넷에 연결해 영화와 드라마 등을 볼 수 있는 전자제품이다.
동영상 위주인 스마트TV가 사용하는 데이터 양은 일반 PC보다 5~10배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은 "TV 제조사와 협의해 합리적 대가를 산정하겠다"고 말했다.
◇"통신망 중립성 지켜라" 반발
인터넷 업체와 전자회사들은 통신사들의 요구에 반발하고 있다. 구글·네이버·다음 등 국내외 인터넷 업체들은 지난 9월 '오픈인터넷협의회(OIA)'란 단체를 구성해 공동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통신망 중립성'이란 원칙을 주장한다. 인터넷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데이터를 전송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구글코리아의 정김경숙 상무는 "새로운 IT 서비스와 스마트 기기를 이용하기 위해 통신사의 인터넷에 가입하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삼성전자·LG전자 등 스마트TV 제조사는 통신사의 통신망 사용료 협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윤부근 삼성전자 TV담당 사장은 "고속도로 통행료는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차량 운전자에게 부과한다"면서 "통신 가입자들이 이미 서비스 요금을 냈는데, TV 제조사에 또 돈을 내라는 것은 이중 징수"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망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할 방법 찾기에 나섰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이해 당사 자·전문가·소비자와 협의해 연내에 결론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에서도 이 문제가 중요 이슈로 떠올랐다. 미국 통신위원회(FCC)는 지난 2008년 통신사 컴캐스트가 '개인 간 파일공유(P2P) 서비스 때문에 통신망이 느려진다'며 해당 서비스를 제한한 데 대해 차별금지와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작년 4월 연방 항소법원은 컴캐스트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FCC 명령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FCC는 이후 '통신사들이 자의적 판단으로 특정 서비스를 통제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오픈 인터넷 원칙'을 수립해 이달 20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통신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
통신망을 오가는 데이터나 콘텐츠를 통제하면 안 되고,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 예를 들어 포털의 동영상 서비스가 통신망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통신사가 접속을 차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신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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