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망 무임승차 논란

포털·IT업체 - "고속도로 통행료는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차량 운전자가 내는 법"
통신업체 - "5성급 호텔을 지어놨더니 잡상인들이 호텔 로비에 리어카 끌고와 장사하는 격"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 네이버는 지난 7월 3세대(3G) 이동통신망을 통해 프로야구 전경기를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야구 경기를 볼 수 있어 출시 2주일 만에 하루 2만명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이 서비스가 엄청난 무선 인터넷 용량을 잡아먹는다는 것. 한 차례 게임에 보통 3시간 걸리는 프로야구 경기를 스마트폰으로 시청하면 약 700메가바이트(MB)의 데이터를 사용한다.


월 4만4000원 요금제의 데이터 한도인 500MB를 단 하루에 넘어서는 것이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한 이용자들은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껏 사용했다.

그러자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은 "무선 인터넷 사용이 폭증하면서 전체 통신망 속도가 느려진다"며 네이버에 강하게 항의했다.


결국 네이버는 한 달 만에 3G통신망 사용을 중단하고 와이파이(무선 랜)를 이용한 중계로 전환했다.

"통신망 쓰려면 포털·스마트TV 제조사도 돈 내라"

통신사들은 "해마다 수조원이 넘는 돈을 통신망에 투자하는데, 포털과 전자회사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무임(無賃)승차한다"고 주장한다.


통신사는 가입자에게만 이용료를 받고, 포털에서는 별도의 통신망 사용료를 받지 않는다.

통신사들에 따르면 현재 무선 인터넷을 많이 쓰는 1%의 사용자(일명 헤비유저)가 전체 데이터의 45%를, 상위 10%가 87%를 차지한다.


인터넷은 한정된 네트워크를 여러 사람이 나눠서 사용하는 구조다.
특정인이 많은 데이터를 쓰면 다른 사람은 속도가 느려져 불편을 겪는다.


이 현상은 통신사들이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다. 통신사들은 2009년 말 스마트폰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도입했다.

그러다 데이터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4세대 이동통신(4G LTE)에서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없앴다.

통신사들은 대용량 데이터를 내보내는 네이버·카카오톡 등 인터넷 업체에도 사용료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비싼 돈 들여서 5성급 호텔을 지어놓았더니 잡상인들이 호텔 로비에 리어카를 끌고 들어와 장사를 하는 격"이라며 "우리 통신망에서 돈 버는 회사들이 최소한의 사용료는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스마트TV를 제조하는 삼성전자·LG전자에도 불똥이 튀었다. 스마트TV는 인터넷에 연결해 영화와 드라마 등을 볼 수 있는 전자제품이다.


동영상 위주인 스마트TV가 사용하는 데이터 양은 일반 PC보다 5~10배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은 "TV 제조사와 협의해 합리적 대가를 산정하겠다"고 말했다.

"통신망 중립성 지켜라" 반발

인터넷 업체와 전자회사들은 통신사들의 요구에 반발하고 있다.
구글·네이버·다음 등 국내외 인터넷 업체들은 지난 9월 '오픈인터넷협의회(OIA)'란 단체를 구성해 공동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통신망 중립성'이란 원칙을 주장한다. 인터넷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데이터를 전송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구글코리아의 정김경숙 상무는 "새로운 IT 서비스와 스마트 기기를 이용하기 위해 통신사의 인터넷에 가입하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삼성전자·LG전자 등 스마트TV 제조사는 통신사의 통신망 사용료 협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윤부근 삼성전자 TV담당 사장은 "고속도로 통행료는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차량 운전자에게 부과한다"면서 "통신 가입자들이 이미 서비스 요금을 냈는데, TV 제조사에 또 돈을 내라는 것은 이중 징수"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망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할 방법 찾기에 나섰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이해 당사 자·전문가·소비자와 협의해 연내에 결론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에서도 이 문제가 중요 이슈로 떠올랐다.
미국 통신위원회(FCC)는 지난 2008년 통신사 컴캐스트가 '개인 간 파일공유(P2P) 서비스 때문에 통신망이 느려진다'며 해당 서비스를 제한한 데 대해 차별금지와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작년 4월 연방 항소법원은 컴캐스트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FCC 명령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FCC는 이후 '통신사들이 자의적 판단으로 특정 서비스를 통제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오픈 인터넷 원칙'을 수립해 이달 20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통신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

통신망을 오가는 데이터나 콘텐츠를 통제하면 안 되고,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 예를 들어 포털의 동영상 서비스가 통신망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통신사가 접속을 차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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