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에 맞서 꽃피운 애국주의
뉴라이트에 맞서 꽃피운 애국주의
  • 신진욱 칼럼
  • 승인 2009.08.29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들의 대한민국 진보의 토양 될것.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 교수     ©편집부
지상에서 ‘애국주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념 논쟁이 구체적 맥락에서 분리되면 도대체 왜 이 논쟁을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고 겉돌게 된다. 진보 진영에서 ‘대한민국’ 정체성 문제가 화두로 등장하게 된 내외적 맥락이 있다.

그중, 외적 맥락은 뉴라이트식 대한민국사 해석이 공식화되는 과정이다. 뉴라이트가 주도하는 역사담론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그것은 지배자의 역사다. 이들은 통치세력과 재벌, 엘리트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성공 신화’를 그린다. 독재와 인권 유린, 불평등은 질서유지와 경제성장을 위한 필요악으로 간주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민족적·국가적 경계의 해체다. 일본의 점령통치, 미국에의 종속 등은 결과적으로 이 나라의 경제 근대화에 이바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무제한적 시장개방의 정당성이 도출된다. 이 두 가지 특징을 합치면, 명목적으로 대한민국의 주권자라고 하는 ‘국민’은 힘도 없고(정치적 배제), 집도 없는(정치공동체 해체) ‘고아’다.

“뉴라이트 역사관 맞서 시민 연대의식 꽃피운 한국 애국주의 돋보여”

이와 같은 세계관과 역사담론에 대항해서 진보 진영이 오랫동안 동원해 온 정신적 자원은 저항 민족주의였다. 하지만 이런 ‘코리아 민족주의’의 관점은 점차 진보적 시민사회 내에서조차 낡고, 일면적이며, 폐쇄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 사단법인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대전광역시지부 사무실에 걸린 친일매국노청산을 요구하는 걸개그림이 걸려있다.  

왜일까? 87년 민주화 이후,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시민들의 정치적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는 이제 깨뜨려야 할 것만이 아니라, 또한 지켜야 할 많은 것들이 있게 되었다. 문제 많고, 살기 힘들고, 아직은 불완전하지만, 대한민국은 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내 나라’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정치적 자의식이 성장했다.


나는 이 새로운 정체성을 ‘애국주의’와 연관시키는 것에 무척 조심스럽다. ‘애국’은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에 국면적으로 결합되는 집단귀속감이지, 그것의 중핵이나 토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가 나(우리)의 삶의 무대며, 내(우리)가 주인 되는 공동체라는 의식은 여전히 정당하고 중요하다. 그것은 진보 정치가 민중적이면서 동시에 국민적인 세력이 되기 위해 굳건히 발 디뎌야 하는 토양이다. 그 땅에서 발을 뗀 선구자가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자와 세계화 예찬론자들이었음을 잊지 말자.

규범적으로는 세계시민적 보편주의가 모든 특수한 정체성의 기초가 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특수한 정체성이 보편적 가치의 생성과 실현을 위한 기초가 된다. 추상적 가치가 ‘내 삶의’ 실제적 원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그 가치의 의미를 구체화하고 실현할 ‘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집이 없는 세계시민은 우주 공간에서 부유하며 세계를 관조하는 존재와 같다. 우리가 ‘나라’라고 일컫는 공동체는 비록 정치적 삶을 살기 위한 유일한 무대는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무대임에는 틀림없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시민들은 ‘대한민국’을 외쳤다. 2008년 촛불시위에서 시민들이 외친 것은 ‘함께 살자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이 ‘유기체’에서 ‘공동체’로 전환된 사건이다. 이러한 연대의식은 우리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4·19 혁명, 광주항쟁, 6월 항쟁의 역사적 순간에 사람들은 언제나 태극기를 휘날렸고,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을 태극기로 감쌌다. 이들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고 조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들의 대한민국’이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미성숙한’ 시민사회를 유럽이나 미국의 ‘성숙한’ 시민사회와 대비시켜, 진보적인 대한민국 정체성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아메리칸 징고이즘이나 게르만 내셔널리즘보다 한국 시민사회의 대한민국 정체성이 훨씬 더 건강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역사 위에서,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