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영화·책 속의 ‘2040’…냉혹한 현실에 공감하되 다양한 공존 모색

문화는 한 사회를 반영하는 단면이다. 사회의 중추여야 할 2040세대 앞에 드리워진 서늘한 현실의 절박함을 담은 드라마와 영화, 책 등도 속속 등장해 공감을 얻고 있다.

이들 세대의 문제는 이들뿐 아니라 이들의 부모세대인 5060의 아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입에 욕을 달고 살지만 기죽지 않는 청춘을 대변하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삼류건달 동철(박중훈 분)과 취업을 위해 상경한 지방대 출신 세진(정유미 분)은 반지하 월세방의 현실을 함께 견딘다. <보스를 지켜라>의 노은설(최강희 분)이 필사적으로 회장 아들 차지헌(지성 분)을 지키는 이유는 정규직. <여인의 향기>의 이연재(김선아 분)는 퇴출 위기에 놓인 고졸 출신 30대를 상징한다(왼쪽부터).
입에 욕을 달고 살지만 기죽지 않는 청춘을 대변하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삼류건달 동철(박중훈 분)과 취업을 위해 상경한 지방대 출신 세진(정유미 분)은 반지하 월세방의 현실을 함께 견딘다. <보스를 지켜라>의 노은설(최강희 분)이 필사적으로 회장 아들 차지헌(지성 분)을 지키는 이유는 정규직. <여인의 향기>의 이연재(김선아 분)는 퇴출 위기에 놓인 고졸 출신 30대를 상징한다(왼쪽부터).

2007년 8월에 발간된 경제비평서 <88만원 세대?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은 출간 넉 달 만에 판매량 2만5천부를 돌파하는 기록을 남겼다. 20대의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분석한 이책은 이후 20대의 고민을 담은 자기계발서 출간 붐을 이끌어냈다.

저자들은 20대의 95퍼센트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이런 예측 아래 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임금 1백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퍼센트를 곱하면 88만원이 나온다고 말하며 ‘88만원 세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 책은 또한 외환위기 이후 근 10년에 걸쳐 진행된 사회변화로 인한 ‘세대 간 불균형의 확대·심화’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임을 환기시켰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짧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 승자독식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최후의 그리고 최적의 기회라고 판단한다. 젊은이들을 위해서? 물론 겉보기엔 그렇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다.”(<88만원 세대> 중)

<자기만의 방?고시원으로 보는 청년세대와 주거의 사회학>은 고시원에서 거주한 젊은이 10명의 입을 빌려 원룸텔, 옥탑방, 반지하를 전전하며 ‘집 없는 세대’가 되어버린 청년들의 집 이야기를 하고 있다.

‘88만원 세대’를 그린 출판물 호응 얻어

<레알 청춘?일하고 꿈꾸고 저항하는 청년들의 고군분투 생존기>에서는 남대문시장 도매점 배달원, 비정규직 연구원, 공기업 계약직, 방송작가, 학원강사, 만화작가, 종합격투기 선수, 연극배우 지망생 등 기성세대가 ‘루저’라고 부르는 ‘진짜(레알) 청춘’들의 생활을 읽을 수 있다.

이들에게 연봉 3천만~4천만원과 주5일 근무는 그림의 떡이다. 계약직, 파견, 비정규직 같은 단어들이 일상이 된 그들에게 노동법 준수는 ‘남 얘기’일 뿐이다.

‘88만원 세대’의 불안한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박중훈, 정유미 주연의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지방대 출신의 취업준비생과 3류 조폭을 주인공으로 해 청년세대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지방대 전산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석사까지 마친 세진(정유미 분)은 전공을 살릴 취업기회를 찾아 서울로 상경한다.

하지만 지방대 출신이란 이유로 면접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반지하 월세방에서 빈곤한 생활을 이어간다. 어쩌다 본 면접에선 최신 대중가요에 춤을 춰보라는 굴욕적인 희롱만 있을 뿐이었다.

영상 속 청년세대의 고군분투 많아져

SBS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의 여주인공 노은설(최강희 분) 역시 지방대 출신이다.

아르바이트로 단칸방 월세와 생활비, 학자금 대출금을 힘겹게 갚아나가며 취업준비를 해나가던 노은설은 우여곡절 끝에 문제 많은 회장의 외아들인 차지헌(지성 분)을 지키는 임무수행 조건으로 대기업 파견직 비서로 입사하게 된다. 이에 대한 보상은 ‘정직원 임명장’이다.

MBC <하이킥!?짧은 다리의 역습>의 백진희(백진희 분)의 삶도 취업 이전의 노은설과 다를 바 없다.

짜장면 한 그릇을 10초 안에 먹어보라는 면접관의 황당한 요구와 단 한 번의 지각으로 해고를 당하는 등 부당 대우는 기본이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과중한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홈리스로 전락한다.

출발선상에 서기조차 힘든 20대에 비하면 3040세대는 ‘비교적’ 무난하게 사회에 진출한 세대다. 하지만 현실은 수월치 않고 미래도 막막하다.

시절을 잘 타고 나 여상출신임에도 대형 여행사에 취업할 수 있었지만, 불과 입사 10년 만에 회사의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SBS드라마 <여인의 향기>의 이연재(김선아 분)처럼 말이다.

이연재는 지방대는커녕 대학 구경도 못해본 여상출신이다. 직장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묵묵히 참아내던 이연재는 시한부선고를 받은 후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저 10년 동안 부장님 모시고 일해왔어요. 10년 동안 부장님 커피를 타고 10년 동안 부장님 책상을 닦았구요.

사모님 교통사고 나서 입원하셨을 때 죽 끓여서 문병도 갔구요. 부장님 승진탈락해서 죽고 싶다고 우실 때 옆에서 같이 울었잖아요.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한 저를요 조금만 믿고 조금만 존중해주실 수 없어요?”

‘갈등보다는 공존’… 한국 사회 숙제로

이연재가 30대 직장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면 <하이킥!?짧은 다리의 역습>의 안내상(안내상 분)은 3040세대 가장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주위사람들이 조금만 자신을 거스르는 행동을 해도 주먹을 높이 들고 ‘확, 마’라고 소리를 질러 ‘확마’라는 별명을 얻은 ‘초절정 마초가부장’ 안내상은 사업체 부도 후 식구들을 끌고 처남집으로 야반도주를 한다.
경제력을 상실한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비굴한 모습뿐.

이탈리아판 <88만원 세대>인 <1000유로 세대>의 저자 안토니오 인코르바이아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20년 뒤의 꿈’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10년이나 20년 뒤의 꿈은 없어요. 난 그저 며칠짜리 꿈에만 익숙해져 있어요. 내게 꿈이 있다면 그건 일자리가 있는 채로 내일 저녁을 맞는 것이랍니다.”

안토니오의 꿈에 공감하는 2040세대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 아마도 지금의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숙제에 대한 유효한 해답은 결국 우리 힘으로 찾을 수밖에 없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 상황을 세대 간 갈등과 대결로 규정하기보다는 주고받고 되돌려주는 ‘증여(贈與)의 사슬’ 속에서 호혜적 공존의 지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세대화합을 제안한다. 그 속에서 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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