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 숭례문 복구현장



그 때 흘린 눈물을 잊지 않는다, 역사의 현장에 순례자 행렬 이어져

2008년 2월 10일 설날 연휴의 마지막 날 저녁을 기억하는가? 바로 600여 년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몸소 맞서오며 서울의 랜드마크로서 도심 한복판에서 위엄 있는 자태를 뽐내왔던 숭례문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 날이다. 토지 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은 한 행인의 의도적인 방화로 인해 대한민국 국보 1호의 위용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나앉았다. 숭례문을 구성하고 있던 두 개층의 문루 중 2층 문루의 90%가 불에 타 소실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문루 1층이 90% 이상 불타지 않은 채였고, 석축과 홍예문도 온전히 살아남아, 현재 숭례문에서는 ‘아름답고 늠름한 모습 그대로’ 되살리려는 복구 공사가 한창이다.

최근 문화재청에서는 복구 공사가 완료되는 2012년 12월까지 숭례문 복원 현장을 시민들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약 3개월간 5800여 명의 시민들이 몰렸던 작년의 제1차 복원현장 공개 이후, 시민들의 많은 관심에 부응하고 복원 과정의 투명성을 위해 올해 8월 15일부터 다시 복원 현장이 개방되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각각 6회에 걸쳐 공개되는 복원 현장엔 이미 천여 명의 시민들이 찾아와 더 이상의 비극은 없길 바라며 숭례문의 안녕을 빌었다.

기자 역시 울타리 안으로 자취를 감추어버린 숭례문의 아픈 상처를 살펴보기 위해 직접 숭례문 복원 현장으로 향했다. 간단히 숭례문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숭례문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가설 덧집 안으로 들어가니, 늠름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까맣게 타버린 2층 문루의 뼈대가 눈에 들어왔다. 화재 당시 2층 문루 붕괴로 망가진 1층 문루의 지붕 기와 파편들이 쌓여 있고, 웅장하면서도 우아함을 뽐내던 처마의 고운 곡선이 일부 무너져 내려 있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엄마와 함께 현장을 찾아와 눈시울을 붉히던 김재우(11, 수원 효정초) 군은 “직접 불에 탄 숭례문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 슬프다. 멋진 모습을 반드시 되찾길 바란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엄마 이영애(41) 씨도 “당시 모든 국민들이 눈물 흘렸던 것이 기억난다”면서 “역사는 국민이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실이며, 이를 지키고 관리하는 것도 국민의 몫”이라 말했다. 현장 해설을 맡은 자원봉사가 김연희 씨도 “숭례문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어 기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시민들이 숭례문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며 그러한 시민들의 이해를 돕는 해설사로 활동하게 되어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예절을 높이 기리는 문’이란 의미를 지닌 숭례문은 이렇게 서울의 중심에 자리하고서 오랫동안 국민들에게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 온 문화재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수도 한양을 출입하는 네 개의 대문 중 하나로, 태조 7년(1398년)에 창건된 이래 성문의 열고 닫음을 알리는 종루이자 기우제나 기청제를 지내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외국으로 가는 사신을 접견하거나 배웅하는 의식이 열리기도 하는 등 한 수도의 정문으로서 상징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19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 황태자 방문을 빌미로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좌우 성벽이 헐리고, 홍예 아래로 전차가 다니게 되었으며, 1930년대부터는 홍예 아래로의 출입이 금지되면서 숭례문은 오늘날과 같은 ‘외로운 섬’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한국전쟁 중에도 석축과 문루가 훼손되는 등 갖은 고초를 겪다가 1960년대 들어 전면 해체 수리공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이후로도 몇 번에 걸친 보수 공사 끝에 2006년도 3월, 일반인들에게 전면 공개되었다. 그러나 2008년 2월, 다시 ‘화재’라는 고난에 직면한 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도성 한양의 어엿한 얼굴로서 자리했지만 그만큼 많은 상처를 입기도 한, 굴곡진 역사의 산증인이 바로 숭례문인 것이다.



총 3단계 복구 작업 중 얻은 의외의 수확

숭례문의 복구 공사는 3단계로 이루어지고 있다. 첫 단계는 ‘화재 수습’으로, 훼손된 숭례문을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가설 덧집을 설치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각종 부재들을 보존처리한 후 경복궁 내 보관소로 운반하는 등의 작업인데 작년 5월에 완료가 된 상태. 두 번째 단계는 ‘발굴조사, 고증 및 설계’로, 숭례문 내부 지역을 발굴조사하고 최대한 원형으로 복구하기 위한 고증과 설계 작업이다. 조선시대 기록 및 구한말 옛 사진 자료들과 숭례문 정밀도면 등을 이용하여 일제강점기 때 이루어진 훼손의 이전 모습으로 복원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이 단계가 마무리되는 2010년부터는 본격적인 복구 공사가 시작되며 2012년 12월에 옛 모습으로 부활한 숭례문의 위용을 다시 만나볼 수 있다.

숭례문 복원 공사를 통해 전화위복 격으로 얻은 소득도 있다. 문화재청 숭례문복구단의 이정연 사무관은 “한국 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숭례문의 현판 곳곳이 조각나 훼손됐는데 이를 다시 복원한 것이 지금까지의 숭례문 현판”이었으며, “마침 조선시대 양녕대군의 사당인 지덕사에 소장된 숭례문 현판 탁본이 있어 비교를 해보니 잘못 되었음을 알고 이를 바로 잡아 숭례문 건립 당시 현판 모습 그대로 복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숭례문 내부 지역을 발굴조사한 결과, 성벽이 헐린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일제강점기 때 근대건물의 터가 발견된 점도 또 다른 소득이다. 하부 벽체, 바닥시설, 지하실, 정화조, 그리고 우물까지 당시 건물의 시설을 추측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조선 후기의 도로면이 발굴되고, 다량의 소뼈와 각종 그릇 등 숭례문 앞에 자리했던 민가의 흔적들이 발견되어 많은 이목을 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보 1호 숭례문이 화재로 일부 소실된 것은 2천년여의 역사를 안고 있는 한 민족에게 있어서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사적인 분노를 어리석은 방법으로 표출한 방화범에게 직접적인 원인이 있지만, 2006년 숭례문 개방이 화재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도 있다. 이들은 소방 시설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성급한 공개였으며, 오랫동안 보존해나가야 할 소중한 유산인 만큼 일반인들에게 직접 공개를 하는 문제는 더욱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화재의 현대적 의미 성찰의 기회

하지만 문화재는 반드시 ‘보호’만 한다고 하여 오랫동안 보존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이정연 사무관은 “소방 시설 등의 관리 준비가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문화재는 원칙적으로 활용을 많이 해야 한다. 오래된 가옥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망가진다”라고 설명하면서, “문화재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민원 전화가 빗발칠 정도로 이미 문화재에 대한 시민의식은 상당히 높다. 그러니 문화재 공개가 무조건 훼손으로만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설가 김연희 씨도 “문화재는 ‘보호’의 측면에서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활용’의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숭례문 화재로 온 국민이 문화재에 대한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만큼 이제는 ‘보호’에만 치중하지 않고 ‘올바른 문화재 활용’에 대해서도 접근하고 숙고하는 것도 필요하다”란 의견을 밝혔다.

근처 종묘 공원에 놀러 왔다가 숭례문에 들렀다는 이은찬(77) 씨는 “작년에도 들렀고, 얼마전에도 와서 관람했는데, 오늘 또 왔다”라며, “우리의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대문이기에 보고 또 보아도 항상 다른, 인생의 교훈을 안겨준다”는 점을 숭례문을 거듭 찾는 이유로 들었다. 이는 아마도 우리가 문화재를 늘 접하고 소중히 다루어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역사학자 E.H.카의 명언처럼, 역사는 현재를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통찰력과 교훈을 안겨다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재는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들과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숭례문 화재 당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던 사실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기에 미처 잊고 있었던 숭례문의 가치를 ‘화재’로 인해 새삼 깨닫게 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는 숭례문의 모습을 통해 문화재가 주는 과거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성찰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숭례문 복원 현장 공개관람 안내

1. 관람 기간: 2012년 숭례문 복구 완료 시까지 매주 토·일요일
2. 관람 신청 방법:
    - 문화재청 숭례문 누리집 홈페이지(www.sungnyemun.or.kr) 접속
    - 잔여 인원 확인 후 원하는 날짜·시간으로 신청
       (1일당 총6회, 1회당 관람인원 30명)
    - 인터넷 신청 25명, 현장 신청 5명
3. 찾아가는 길: 1호선 서울역 4번 출구, 4호선 회현역 5번 출구
                    ‘남대문시장’ 버스정류장 하차


용어 해설

1. 문루   : 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
2. 석축   : 돌로 쌓아 만든 옹벽
3. 홍예문: 문의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문
4. 기청제: 조선시대 때 입추(立秋)가 지나도록 장마가 계속될 때에 나라에서
              날이 개기를 빌던 제사

                                                  (출처: 국립국어원 누리집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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