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으로 잠행 이어오던 이 전 총리, 최근 움직임 심상찮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이은 서거로 범민주 세력이 깊은 충격 속에 빠져 있지만, 친노세력은 예고했던 신당창당을 위한 강행군을 멈추지 않고 있다. 9월20일 신당세력은 창당 발기인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늦어도 12월까지 신당을 창당한다는 계획이다.

신당파가 이처럼 굳은 의지로 창당 작업을 가속화하자, 민주당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속앓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그동안 신당창당에 부정적 입장을 밝혀오던 친노 좌장 이해찬 전 총리마저 최근 신당에 전향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신당파의 창당 작업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훈인 ‘민주·개혁 세력 대통합’ 중심세력으로 민주당이 아닌 신당이 돼야 한다는 주장까지 불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친노신당 부정적 입장→전향적 태도로…한명숙·김근태도 힘 보태
이해찬·한명숙 제3지대 연대 추진…천호선·유시민 순수친노 재결집


친노세력이 신당창당 작업을 가속화함으로써 상황에 따라서는 민주당 중심의 범민주 세력 대통합이 아닌, 대분열로까지 치달을 수 있게 됐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그동안 야인으로 잠행을 이어오던 이해찬 전 총리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해 오랜 재야 동지인 김근태 전 장관까지 힘을 보태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인 ‘시민주권 정치활동’을 받들기 위한 것으로, 기득권에 사로잡힌 민주당이 못하고 있는 진짜 유지를 받들고 나선 것이다.

주목되는 점은 이 전 총리의 행보가 ‘범민주·개혁 세력’ 전체에는 이롭게 돌아가더라도 민주당에 이롭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민주권 정치’라는 것 자체가 몸집을 불린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친노신당’, 즉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정확히 받아들인 정치 결사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아닌,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음을 강력 시사하는 대목이다.

달라진 이해찬, 혹시 제3신당?

그동안 친노 신당에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던 이해찬 전 총리는 최근 신당에 전향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전 총리는 지난 8월25일, 친노 중심세력으로 구성된 미래연 주최의 ‘노무현 시민학교’ 첫 강의자로 나선 자리에서 “민주당이 신당추진파나 시민사회 쪽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자기 개혁을 할 의지가 없고, 지역주의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신당을 창당하려는 사람들의 의도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며 신당창당에 대해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 맞이하는 봉하마을 빈소에서 한명숙 이해찬 전 총리가 분양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특히 이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민주당이 스스로 자기혁신을 하길 기대하지만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민주당을 붙잡고 늘어져서 뭐하겠느냐”며 “(신당파들이) 민주적 절차를 못 갖추고 지역주의에 빠진 정당정치는 더 이상 안하겠다는 것”이라고 민주당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전 총리는 “그들도(친노신당파) 연대 정신을 살리면서 하겠다는 것이지, 깨자는 것은 아니다”며 “신당을 창당하든, 민주당에 결합하든, 시민정치활동을 하든 중요한 것은 연대해서 이기는 흐름을 꼭 잡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범민주 세력의 대연대 전제조건이 ‘반MB 연대’ 여야 함을 강조했다.

‘시민주권정치’ 盧 유지 정확히 해석…범민주 대통합 구심점 급부상
민주당에도 친노신당에도 부정적…제3의 길 걸으며 각개약진 전략


이어, “노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 중에는 신당을 만들려는 사람들, 민주당에 속한 사람들, 시민정치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 새로운 지지자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어느 하나로 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러나 서로 다를 수도 있지만, 수구세력에 대항하려면 함께 한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정신으로 연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이 전 총리는 이전의 신당창당 부정적 입장과 달리, 범민주 진영 제 세력이 각개약진을 통해 큰 틀에서 결합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관련, 이 전 총리는 “울산 보궐선거에서 단일후보를 내서 이겼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연대 정신을 살려야 한다”며 “설령 신당을 한다 해도 연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전 총리는 또, “수구·보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작은 힘이 연대해야 한다”면서 “내년도 지방선거에서 연대해 이겨내야 하며 서로 차이점을 부각시키기보다 연대하는 고리를 찾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는 사실상 범민주 세력의 대통합에는 적극 찬성 입장이지만, ‘민주당 중심론’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이 전 총리는 “문호 개방도 안 되고, 민주적 절차도 못 갖춘 지역주의 정당은 안 된다”며 민주당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민주당 없이는 안 되지만, 민주당 중심으로는 안 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민주당으로 복당을 유보하고 있는 이 전 총리 또한 향후 현실정치보다 시민정치 활동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시민정치조직 활성화를 위해 전면에 나설 뜻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총리는 “당장 10월 재보궐 선거와 내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과 대선이 있다”면서 “지금부터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시민주권모임 등 큰 틀이 유지되면 연대를 촉진하기도 하고 분열을 막는 허브 기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시민정치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정치라는 것이 정당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발언하고 활동할 수 있는 액션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면서 “아직 이름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노무현 지지 시민정치조직을 만들어 정치적 목소리도 내게 하고, 연대도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으로는 안 된다” 봇물

이 전 총리의 이 같은 입장은 불과 1개월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1개월 전만 하더라도 이 전 총리는 “친노신당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사건 위주로 보지 말고 큰 맥락으로 5년, 10년 내다보고 폭넓게 사고하라고 했다”며 “어느 정도 가중치가 있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경중·완급·선후를 잘 따지고 가렸으면 한다”고 신당에 부정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었다.

특히, 민주당에 대해서도 그는 “민주당 잘 싸우고 있고, 다만 얼마만큼 지구력 있게 싸울 것이냐가 중요하고 잘 뒷받침해야 한다”면서 “민주당이 없었으면 천성관 인사청문회 때 어떻게 되었겠는가”라고 적극 힘을 보태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1개월 만에 입장이 확 달라진 것.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전후를 계기로 민주당에 또 다시 크게 실망한 무엇인가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 전 총리만이 아니다. 그가 신당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곧, 신당의 핵이 될 유시민 전 장관이나 한명숙 전 총리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당 창당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8월2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유시민 전 장관, 한명숙 전 총리는 국민참여정당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신당 쪽에서 그럴 가능성이 보이면 참여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12월 창당시점이 되면 다시 한 번 신당 참여문제를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유시민·한명숙 등 친노 핵심 인사들의 참여 가능성을 높게 내다봤다.

천호선 전 대변인 또한 민주당에 대해서는 “아마 민주당 역사 수십 년 이래 최악의 상태일 것”이라며 “민주·개혁 세력 연대 중심이 지금은 민주당이지만, 그 중심은 변할 수 있는 것이고 민주당이 항상 중심이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각개약진 본격화

그러나 민주당은 친노세력의 이 같은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범민주 세력 대통합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대통합 주도권을 놓고 민주당과 신당세력이 크게 맞부딪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두 세력이 주도권 경쟁을 펼치게 된다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는 것은 시민사회 세력이다. 범민주 세력 통합의 물결에 따라 합류한 이들 시민사회 진영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게 되느냐에 따라, 야권 재편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상황에 이해찬 전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를 중심으로 발족한 ‘민주통합시민행동’이 주목받고 있다. ‘민주통합시민행동’은 이 전 총리와 한 전 총리가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재야파 수장 김근태 전 장관과 이해동 목사, 효림 스님 등이 대거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제도권 밖에서 시민사회 세력과 직접 스킨십을 강화해 대통합의 초석을 마련하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민주당 주류계인 정세균 대표측도 ‘민주통합시민행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신당세력도 여기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즉, 이들은 시민사회 세력을 결집시켜 민주당과 신당세력 간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그렇지 않다면, 제3세력이다. 민주당도 부정적이며 친노신당도 부정적인 이해찬 전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인 ‘시민주권 정치’를 펼치기 위한 제3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해찬 전 총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동안 민주당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끝까지 민주당에 복당하지 않은 것 자체가 그에 대한 방증이다. 그렇다고 해서 친노신당을 바랐던 것도 아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노 전 대통령은 유시민 전 장관의 몇 차례 방문에도 친노신당, 즉 영남신당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던 바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제3의 길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이해찬 전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가 가고자 하는 길은 바로,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정확히 받아들여 ‘시민주권 정치’를 펼치기 위한 초석을 다지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곧, 이 전 총리가 친노신당 창당에 대해 불과 1개월 만에 입장이 달라진 원인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신당 또는 제3의 정치 조직화에 나선 이 전 총리가 친노세력에 제동을 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나도 할 테니, 너도 하려면 해라. 나쁜 것 아니다’는 메시지의 전달인 셈이다.

시민중심 세력화…盧 유지에 정확

‘민주통합시민행동’은 발기인 대회에 앞서 배포한 초청문을 통해 “민주주의를 살리고 남북화해를 이끌며 시민에게 재기의 꿈을 꿀 수 있도록 함으로써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고 심각한 위기에 부닥친 민족공동체에 희망의 빛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강령이 있음에도, 이들 ‘시민행동’은 사실상 강령이나 다름없는 독자적 정체성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눈에 띄는 점은 이해찬 전 총리는 ‘시민행동’ 외에도 친노그룹을 아우르는 ‘시민주권모임’(가칭)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임에는 안희정·백원우 등 민주당 내 친노 인사들과 신당파인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이병완 전 청와대비서실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 모임은 ‘노무현 정신’ 계승을 공통분모로, 노 전 대통령 유지인 시민주권 정치활동을 펼치기 위해 전국적인 조직 구축도 추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리가 이처럼 유사한 스탠스의 ‘시민행동’과 범친노 모임인 ‘시민주권모임’ 양측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민행동’이 민주당보다 친노신당 쪽에 가깝다는 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주권모임’에서 신당파인 천호선 전 대변인이 활동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천 전 대변인이 친노신당을 띄운 후, 큰 틀에서 ‘시민주권모임’과 같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각개약진이다. 김근태 전 장관을 비롯한 재야파 인사들과 함께 나서면서 친노색깔을 최소화시킨 이해찬·한명숙 두 전직 총리가 제3지대에서 ‘범시민연대’를 추진하고, 천호선 전 대변인을 비롯한 친노 색깔 빼기가 어려운 유시민 전 장관 등이 순수혈통의 친노세력을 재결집 시키겠다는 계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향후 이들 두 세력이 연합함으로써 거대 조직화되고, 나아가서는 민주당을 대신할 수 있는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들이 대안세력으로 부상하더라도 민주당을 버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대통합에 배제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친노신당 기만하는 민주당

사실 민주당으로서는 가장 경계해야 할 세력이 바로 이해찬 전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가 주도하고 있는 ‘시민행동’인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해찬 전 총리의 ‘시민행동’이 어떤 방향으로 튈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단순히 천호선 전 대변인의 ‘친노신당’만을 조심스럽게 경계하는 눈치다.

아직까지는 친노신당 창당에 대해서도 탐색전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지난 8월17일 신당세력이 ‘국민참여정당’이라는 모토로 대국민 창당제안에 나선 날도 민주당은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신당세력은 대국민 창당제안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과 싸워 이길 것”이라며 민주당을 한나라당과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또,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들도 그 제도와 문화, 노선 그리고 지도자들의 행태 모든 면에서 도무지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제1야당인 민주당은 국민들이 당 밖에서 지지해줄 것을 바랄뿐 이들이 당에 참여해 정당의 주인이 되는 것은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고 민주당의 현실적 문제를 신랄히 꼬집었다.

이어, “지금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지지자가 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자기를 혁신할 가능성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민주당에 실낱 같은 희망도 없음을 강조했다.

신당세력이 이처럼 민주당을 한나라당과 함께 싸잡아 평가절하 했음에도 민주당은 “통합을 해야 한다”며 “일부세력에 국한돼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신당 창당 가능성 자체를 낮게 평가했다. 신당세력의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두 번째 문제이며, 창당 자체도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민주·개혁 세력 모두가 공생, 대통합의 길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장외 제 세력 모두에 대해 민주당 복당을 허용하고, 복당한 제 세력 모두가 참여한 조기전당대회를 개최하는 일이다. 물론 정세균 대표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서도 정 대표가 승리한다면 모두가 패배를 인정하고 정 대표 체제로 통합형 민주당의 미래를 맞아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 당대표에 오르게 된다면, 그를 중심으로 모두가 힘을 모아야만 민주당은 살 수 있다. 3김 시대가 종식되고, 고아가 된 민주당에서는 새 시대를 위한 서열정리가 시급히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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