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이은재 의원이 주민소환 청구 사유 요건을 제한하는 주민소환법 개정안을 발의한데 이어 최근 정옥임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 법안은 주민소환 투표 청구 사유를 소환대상자의 위법·부당 행위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같은 내용은 주민들에 의한 지방행정의 책임성 확보라는 주민소환제도의 본질을 훼손하고 사실상 주민소환제를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경실련은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주민소환제도는 주민들이 정치적인 사유로서 지방정치인을 최종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주민들의 정치적인 행위이므로 소환 사유를 제한하는 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도 주민소환제에 대해 “위법행위를 한 공직자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 실패하거나 무능하고 부패한 공직자까지도 대상으로 삼아 공직의 해임이 가능하도록 해 책임정치 혹은 책임행정의 실현을 기하려는 데 입법목적이 있다”고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또한 주민소환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선진국의 경우에도 주민소환사유를 제한하고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설령 주민소환사유를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표면적인 이유와 실질적인 이유가 다를 수 있으므로 실효성이 거의 없을 것이다. 선거에 대해서 이유를 묻지 않듯 같은 정치적인 행위인 주민소환에 대해 그 사유를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주민소환제도를 왜곡시킬 우려가 매우 크다.

정치권은 사유 제한의 근거로 남용 등 정치적 악용의 소지가 높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주민소환법 제정 당시 남용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통해 입법에 반영하였고 시행 후 2년동안 발의된 건수가 2건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치권의 주장처럼 남용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위법·부당 행위로 주민소환 사유를 제한한다면 지방정치인들의 독선적인 정책결정, 정책실패 등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해져 지역주민의 직접참여 확대와 지방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 제고를 위해 도입된 주민소환제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소환대상자의 위법·부당 행위는 사법기관이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 것으로 주민소환을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주민소환제 취지를 무력화시키는 주민소환 사유 제한 입법 논의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 오히려 현재의 지나치게 엄격한 소환 요건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주민소환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 주민소환제도는 광역단체장의 경우 청구권자의 10%이상, 기초단체장의 경우에는 15%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할 수 있게 되어있다.

서울시의 경우 시장에 대한 소환투표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77만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임기개시 1년과 종료 1년 미만일 경우에는 주민소환을 청구할 수 없도록 되어 있어 실제 소환기간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다. 주민소환제가 지방행정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청구 요건과 절차를 보다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또한 제주지사의 주민소환운동에서 나타난 투표 참여 방해 행위에 대한 보완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투표 불참 운동은 주민에게 정치적인 무관심과 투표 참여에 부정적인 인상을 주어 심각한 정치혐오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투표장에 간다는 것 자체가 소환에 찬성하는 것으로 몰고 가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사실상 공개 투표를 강요받는 상황을 만들어 지역주민들의 투표 참여를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므로 선거의 의미를 폄하시키고, 사실상 공개투표를 조장하게 되는 투표불참선거운동을 금지하고 투표 방해죄로 처벌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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