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회에서 폭탄을 터뜨린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인 김선동이 한껏 날리고 있다. 한미 FTA 비준을 저지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폭탄을 몰래 숨겨가지고 의사당에 진입한 그는 비준안이 통과되는 순간 이를 터뜨렸다. 미리미리 계획한대로 일을 착착 진행한 것이다.
 
 
그런 계획성만 따지면 그가 호언하는 대로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폭탄투척과 진배없다. 민노당 대표 이정희는 한걸음 더 나가 김선동을 안중근, 윤봉길과 똑같다고 치켜세웠다. 한마디로 애국단심에서 우러나온 의거(義擧)로 미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애국단체에서는 분노한다. 국회의사 진행을 방해하기 위해서 터뜨린 것을 어떻게 이등박문을 쏴 죽인 안중근과 비교하며 홍구공원 천장절 행사를 망가뜨리고 수많은 요인을 폭사시킨 윤봉길에 비유하는 철면피같은 언행을 한단 말이냐. 그래도 그들은 끄떡없다. 청와대 앞에서 일인시위도 매일처럼 되풀이한다. 일인시위는 힘없는 일반국민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하는 것이지 국민의 대변자인 국회의원은 국회에 가서 정정당당하게 외쳐야 할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가 터뜨린 것은 인마 살상용 폭탄이 아니다. 눈물과 콧물이 함께 쏟아지게 하는 고약한 최루탄이다. 우리는 6월 항쟁을 전개할 때 싫도록 맛봤다. 그 당시의 돈으로도 수백억 어치의 최루탄이 터졌고 이를 제조한 여성 사장은 돈 방석에 올라앉았다. 아무튼 김선동의 최루탄은 국회테러라는 최대의 오명을 안겼다. 과거에 종로출신 김두한이 한비밀수 사건과 관련하여 국회에 출석한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에게 인분을 뿌린 사건 이후 국회의원이 의사당 안에서 저지른 가장 큰 테러에 속한다.

김두한의원은 인분테러를 했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제명되었고 구속처벌을 받아야 했다. 국회의원이 면책특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국회에서의 발언에 한해서 보호받는 것이지 테러에 대해서까지 처벌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국회 측의 대응은 극히 미미하다. 시민단체에서 고발했지만 국회의장은 총책임자로서 뭘 하고 있는가. FTA 사회봉마저 부의장에게 떠넘겼던 박희태는 국회가 난장판에 빠진 후에도 아무런 의사표시를 못하고 있으니 임기만 채우고 나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인가.

이처럼 한심한 작태를 연출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국회지도부를 바라보며 우리는 서울역 광장에 우뚝 선 강우규(姜宇奎)의사의 동상을 새삼스럽게 우러러 본다. 강우규선생은 1919년 3월1일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조선민중의 만세운동에 가담한다. 민족을 말살시킨 일본을 향하여 과감히 독립을 선언한 3.1운동은 세계를 감동시켰으며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과시한 광복운동이었다. 일제는 이에 자극받아 강압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문화통치로 전환한다는 명분으로 총독을 갈아치운다.

새로 조선총독에 임명된 사이토는 1919년 8월5일 부산을 거쳐 서울역에 도착한다. 총독부임(赴任)을 위한 첫 걸음이다. 강우규의사는 이를 노렸다. 원래 평남 덕전군에서 출생한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1859년6월생이다. 스물네살이 되던 해에 함남 홍원군으로 이주한 그는 기독교에 귀의하여 민족교육과 독립운동에 큰 관심을 갖는다. 그가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은 몽매에도 잊을 수 없는 국권상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처지에 비분강개해서다.

1910년 8월29일 조선과 일본이 합방한다고 발표된 것이다. 그 전에 이미 조선은 을사늑약을 통하여 모든 외교권을 일본에 넘겼으니 사실상 존재가치가 없었다. 절치부심 조국광복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애국지사가 속출했으나 일제는 끄떡도 하지 않고 강압정책을 강화했다.
 
독립운동에 전념하려면 만주 땅으로 건너가야 한다고 깨달은 의사는 1915년 중국 길림성 요하현으로 이주하여 광동(光東)학교를 설립하고 청소년의 민족의식을 고취한다. 때마침 3.1운동이 들불처럼 번지자 의사는 노구를 무릅쓰고 총독을 겨냥한 폭탄을 투척했으나 아쉽게도 실패한다.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11월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올해가 순국91년째다. 순국직전 그는 가슴에 품은 애국단심을 표현하는 시 한수를 남겼으니 지금 읽어봐도 그의 강인한 나라사랑이 가슴에 와 닿는다. ‘단두대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차디찬 사형장에서도 조국을 위한 영혼은 따뜻한 봄바람을 느꼈으니 나라를 위한 뜨거움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따로 유언을 할 필요도 없다.
 
당시로서는 극노인(極老人)에 속하는 예순하나의 나이에도 당당하게 폭탄을 던지고 의연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강우규의사의 기개는 후인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던진 애국지사를 자처하는 최루탄 투척 국회의원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놀이나 하지 말고 서울역 강우규의사 동상부터 참배하고 서대문형무소 역사문화관을 찾아 사형장에서 선열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기 바란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