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부르면 다시 온다는 약속 받고 출국 허용했다"

2003년 DJ 정권 '현대 비자금 사건'의 핵심 인사였던 김영완(金榮浣·58·)씨가 8년 만에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곧바로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대북 송금 특검이 출범하기 직전인 2003년 3월 하순 출국한 이후 8년 8개월 만인 지난달 26일 귀국했다.

다음날엔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고 입국 사흘 만인 29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어떻게 기소중지자 신분인 사건의 핵심 당사자가
이렇게 갑자기 귀국했다가 출국할 수 있었을까.

그의 갑작스러운 귀국에 대해 지인들은 "김씨가 장시간의 미국 생활에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서 빨리 정리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말한다.


김씨는 9년 가까운 미국 도피 생활로 국내 재산 관리와 사업체 운영 등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래서 그동안 여러 차례 귀국을 시도했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2000년 3~4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부탁에 따라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비자금 200억원을 권 전 고문에게 전달한 혐의의 공범(共犯)으로 기소중지된 상태였다.

검찰은 2003년 8월 권 전 고문을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하면서 김씨를 기소중지했다. 김씨의 공범 혐의는 그의 출국(2003년 3월)을 기점으로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아직도 유효하다.

검찰은 "김씨가 갑자기 자수서(自首書)를 들고 와 조사했을 뿐 사전 조율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씨의 출국이 확인된 뒤 검찰은 "기소중지된 부분에 대해 조사를 했기 때문에 일단 기소중지가 풀렸고

'언제든지 검찰이 부를 때에는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고 출국을 허락했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2일 "권 전 고문에 대한 공범 혐의만으로 김씨를 곧바로 구속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고,

사건 전모를 파악하려면 여러 참고인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참고인들에 대한 조사 상황을 봐가며 김씨를 수시로 불러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통상 김씨처럼 장기간 해외 도피했다가 입국하면 곧바로 출국금지부터 조치했다. 그래서 이번처럼 이례적인 출국 허용에 대해 "김씨가 입국하기 이전에 이미 검찰과 변호인 사이에 김씨에 대한 처벌 수위와 자유로운 입출국에 대한 모종의 합의가 이뤄진 게 아니냐"는 얘기가 검찰 주변에서 나온다.

김씨를 통해 150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가 확정된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민주당도 "통합야당 출범을 코앞에 둔 민감한 시점에 김씨를 소환하는 것 자체가 유력한 야당 당권 주자에 대한 흠집내기 아니냐"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검찰은 참고인 조사 속도를 봐 가며 김씨를 수시로 소환하면서
▲권노갑 전 의원에게 200억원을 전달한 혐의
▲무죄가 확정된 박지원 의원 관련 150억원의 사실 여부
▲김씨가 개입한 '스위스 비밀 계좌 3000만 달러'의 존재와 성격 등
세 갈래 수사를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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