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엔진 정지시키고 지그재그로 운항시키는 등 무장해적에 배짱으로 맞서

"우리의 국적을 확인하자 해적들이 '꼬레아', '꼬레아'를 외치며 환호를 하더군요. 한국 선원들은 몸값이 비싸니 봉 잡았다는 뜻이겠지요. 그 순간 '그냥 순순히 당하지는 않겠다. 한번 붙어보자.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당했던 한국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올해 석해균(58) 선장처럼 극적인 경험을 한 인물이 있을까. 지난 1월 그가 이끌던 삼호주얼리호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6일 만에 우리 해군 청해부대의 최영함과 특수요원들이 투입돼 해적들을 소탕하고 선원들을 구출했다. 석 선장은 온몸에 총탄 6발을 맞고 중태에 빠졌다. 그러나 불사조처럼 살아났고, 국내에 후송돼 집중 치료와 재활을 거쳐 지난달 4일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퇴원했다.



'아덴만의 영웅' 석 선장이 조선일보 경기북부취재본부가 주최하고 제화회사 안토니·바이네르가 후원해 6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행복한 인생 만들기' 제13회 시민강좌에 등장했다. 그는 '6일간 해적과의 동침'을 주제로 납치에서 구출까지 숨가빴던 얘기를 들려줬다. 객석을 가득 메운 500여명의 청중들은 그의 생생한 무용담에 귀를 기울였다.



◇해적 13명에 납치돼

"2011년 1월 15일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발생한 삼호주얼리호 납치사건 당시 삼호주얼리호를 이끌었던 선장 석해균입니다." 석 선장이 우렁차게 자신을 소개했다. 오른팔로 지팡이를 짚고 연단에 올라 고개를 숙이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는 납치, 억류, 부상, 퇴원으로 이어지는 영화같은 얘기를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갑자기 비상벨이 울렸습니다. 조타실로 올라가니 1등 항해사가 '저기 해적이 올라왔다'고 가리키더군요. 해적들은 총을 들고 있었고, 대항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석 선장을 비롯해 21명이 승선, 공업용 메탄올을 싣고 아랍에미리트에서 스리랑카로 가던 삼호주얼리호는 아라비아해에서 순식간에 해적 13명에게 납치됐다.



그러나 그의 용기는 죽지 않았다. 무장한 해적에게 배짱으로 맞섰다. 해적들은 선박을 소말리아 영해로 끌고 가려 했다. 석 선장은 몰래 이메일로 납치 상황을 알렸다. 집중 감시 속에 시간을 끌기 위해 몰래 엔진을 정지시키고, 지그재그로 운항하도록 지시한 얘기를 하자 청중들은 손에 땀을 쥐며 숨을 죽였다. 해적들을 골탕먹인 장면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억류에서 구출까지

해적들은 협조를 거부하는 그의 목숨도 위협했다. 감시의 강도도 높아지고 더욱 거칠어졌다. 총살대 앞에 세우고 총을 겨눴고, 칼로 위협하다 제 성질을 못 이겨 자해를 하기도 했다. 석 선장은 "배는 점점 소말리아로 가까워지고, 해적들은 '소말리아에 도착하면 죽인다'고 협박하고, 따라붙은 우리 해군 헬리콥터가 뜨면 인간방패 삼아 밖으로 끌어내니 속이 탔다"고 말했다.



그러나 석 선장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다음 날이면 소말리아 영해로 들어갈 즈음이었다. 새벽에 갑자기 총소리가 소나기처럼 들리고, 우리 해군의 작전이 시작됐다. 해적들은 역시나 석 선장을 밖으로 끌어내려 했고, "따닥" 소리에 정신을 잃었다. 해적이 가슴에다 총을 쐈기 때문이었다. 석 선장은 "때마침 정전이 됐기 때문에 심장을 빗나갔던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야 몸통과 다리, 팔 등에 6발이나 맞은 사실을 알았다.



◇제2의 인생 준비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한국 해군이 진입해 들어왔다. 그는 "정신을 놓으면 죽는다고 생각해 이를 악물었지만, 최영함에 도착해서는 너무 아파 죽여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워낙 중상이어서 다시 의식을 잃었고, 오만의 병원을 거쳐 수원 아주대로 후송돼 응급치료를 받고서 2월 24일 다시 정신이 돌아오자 한국에 온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역시 총상을 입은 몸은 엉망이었다. 왼쪽 엉덩이 관절이 망가졌고, 오른다리의 무릎 위쪽은 분쇄골절로 뼈가 없었다. 왼손에는 깁스를 했고, 관통상을 입었던 배에는 큼지막한 거즈가 덮여 있었다. 석 선장은 "누워 있을 때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부러웠고, 휠체어에 탈 만큼 회복되자 다시 제대로 걷는 사람이 부럽더라"고 했다. 또다시 피랍 당시에 못지 않은 의지로 열심히 재활에 매달렸다.



석 선장은 여전히 다리가 불편하고, 왼손은 신경이 끊어져 물건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장애를 갖고 있다. 그는 "이제 다시 배는 탈 수 없겠지만, 앞으로 내가 겪었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해군 장병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키는 역할을 할 것 같다"고 소개했다. 또 기적처럼 찾은 제2의 인생을 열심히 살겠다고 밝혀 큰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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