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은퇴자 급증 탓…원리금 연체자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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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한 이모(54)씨가 창업한 것은 삼겹살 전문점이었다.

인테리어 비용 등 가게를 내는 데 들어가는 돈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기본적인 수요가 있어 경기둔화의 영향을 덜 받겠다는 생각에 창업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오판이었다. 지금 그에게 남은 건 1억2천500만원의 빚뿐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올해 들어 자영업자가 늘어난다더니 정말로 주위에 비슷한 음식점이 여럿 생겼다. 월 소득액이 20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이자 내기도 어렵다. 은행 연체가 여러 달 이어지다 보니 견딜 수 없는 지경이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을 신청했다.

'숨겨진 가계부채'라고 할 수 있는 자영업자 가계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은행, 농협 등 5대 은행의 자영업자 대출이 올해 들어 10조원이나 늘어 마침내 100조원을 돌파했다.

지금까지 이런 빚은 가계대출에 잡히지 않았다. 중소기업 대출로 분류됐다. 개인사업자도 엄연한 사업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 대출과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부채 상환의 책임이 법인에 있는 기업 대출과는 달리 자영업자 대출은 책임이 창업자 개인에게 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창업자 가계가 다 떠안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가계대출이라고 할 수 있다.

자영업자 대출을 합치면 가계대출은 이미 1천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9월 말 가계부채는 892조5천억원인데 10월 가계대출이 또 5조7천억원 늘었다. 여기에 자영업자 대출 102조8천억원을 합치면 가계부채는 1천조원을 벌써 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가계대출인 주택담보대출은 가계가 소비를 줄이면 원리금 부담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자영업자 대출은 경기침체로 매출이 급격히 줄면 원리금을 상환할 길이 막막해진다는 점에서 주택대출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대출이자율도 주택대출보다 1%포인트가량 높다.

그런데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심상치 않다. 하나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1.08%)은 가계대출 연체율(0.45%)의 2배를 훌쩍 넘었다. 다른 은행도 올해 2분기를 저점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포화 상태에 이른 자영업에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이 물밀듯이 밀려든 결과다. 자영업자 수는 2005년 이후 매년 감소했으나 올해 들어 13만명이나 늘어났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40∼50대가 대부분이다.

김모(59)씨는 "작은 식당을 차렸는데 최근 영업이 부진해 한 달 버는 게 100만원대에 불과하다. 대출을 받아 생활비로 쓸 수밖에 없었다. 몇 달째 연체를 하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최근 들어 내수침체 조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내수침체가 본격화되면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율도 덩달아 올라갈 수밖에 없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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