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은 한국 뮤지컬계가 나름대로 행복한 한 해였다. 뮤지컬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매출이 많은 공연예술 장르로 등극한 지도 어느덧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꾸준하게 외형적인 매출성장과 예술적으로 내실 있는 발전을 함께 이루어 왔는데, 2011년은 미래를 향해 다시 한 번 도약기를 만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양질의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출가와 배우, 음향 감독과 무대 디자이너 등 모두의 화합작용이 필요하다. 뮤지컬 <에비타 />의 이지나 연출가(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상원(페론 역)과 정선아(에바 역)가 탱고를 추는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양질의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출가와 배우, 음향 감독과 무대 디자이너 등 모두의 화합작용이 필요하다. 뮤지컬 <에비타>의 이지나 연출가(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상원(페론 역)과 정선아(에바 역)가 탱고를 추는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뮤지컬은 역사적으로 철저히 영국, 미국 등 영어권 국가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공연 장르이자 가장 상업적인 공연 상품이다. 그런데 이 뮤지컬이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성장한 것에 대해 지금 뮤지컬 업계 종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뮤지컬계의 성장에 가장 큰 혜택은 바로 일자리가 대폭 늘어났다는 점에 있다. 그동안 매해 많은 작품이 시장에 나왔지만 장기 공연을 지향하는 뮤지컬의 속성상 앙코르 공연이 가능한 흥행작 한편이 열 편의 실패작보다 시장에 끼치는 긍정적인 요인이 더 크다.

디큐브시어터·블루스퀘어 등 전용관으로 활력

그런 점에서 <지킬 앤 하이드> <맘마미아> <영웅>처럼 꾸준히 재공연되고 있는 검증된 콘텐츠나, 신작이지만 성공으로 인해 다음 시즌 앙코르가 보장된 <광화문 연가> <조로>와 같은 작품에 참가한 스태프들은 올 한 해를 매우 바쁘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었다.

뮤지컬만을 공연하는 ‘전용극장’도 올해 두 곳이나 새로 개관했다. 서울 신도림동의 대규모 복합시설 안에 위치한 디큐브시어터와 한남동의 블루스퀘어는 양질의 콘텐츠를 시장에 내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노력도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된 한해였다. 확실히 10년이라는 한국 뮤지컬 활성화 기간에 성장한 인력들이 각자 위치에서 활약을 펼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규모는 작지만 완성도로 주목받은 창작뮤지컬도 다수 등장했다.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셜록 홈즈>(레히 제작) <모비딕> (두산아트센터, 모비딕 프로덕션) <식구를 찾아서>(충무아트홀, 극단오징어) 등이 있다.

여기에 고궁뮤지컬로 새롭게 재공연된 <왕세자 실종사건>(서울문화재단, 극단 죽도록 달린다)까지 합하면 메이저 회사가 아닌 독립제작사의 작품으로 아티스트가 직접 제작까지 책임지고 이끌어 흥행까지 성공시킨 사례가 한 해에만 네 작품이 나왔다. 게다가 이 작품들은 모두 내년 상반기 중에 앙코르공연을 가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다시 한번 관객몰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듯 대극장에서 소극장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이 공연되고 성공을 이루다 보니 주·조연급은 물론이고 앙상블을 맡은 뮤지컬 전문 배우들의 수요도 급격히 늘어났고, 창작자·디자이너 등 내부의 인력을 포함한 제작 인력도 신장하고 있다.

이들 중 다른 인접 장르를 오가며 활약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뮤지컬만으로도 충분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우가 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로 뮤지컬계의 매출도 감소했었고, 얼마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슈에서도 보듯 청년실업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정작 고가의 뮤지컬을 즐기는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일견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뮤지컬이 태생적으로 희소가치가 높은 공연 장르이며, 따라서 자기 만족도가 높은 문화상품이라는 점에서 자신을 규정하며 자신의 취향을 사랑하고 자아를 표현하기 위한 ‘아이덴티티 상품’에 해당한다.

뮤지컬만으로 밥벌이가 가능한 수준 올라

이제 앞으로 업계가 노력해야 할 점은 서구에서 받아들인 뮤지컬을 기반으로 한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새로운 뮤지컬 콘텐츠로 만들어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 역수출할 정도의 완성도를 갖춰 이를 글로벌 산업화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역수출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인 중에서 세계인들에게도 호소할 수 있는 좋은 스토리텔링 소재를 찾고 이를 무대에 옮길 수 있는 작가·작곡가·연출가 등 기본 창작자군이 보다 왕성하고도 견고하게 형성되어야 한다.

특히 공연 콘텐츠는 연습과정에서 창작자와 배우가 최종적으로 함께 만들어 가는 화합작용이 중요하기에 사전 리딩(Reading), 워크숍, 트라이아웃 등의 연습과 중간평가를 겸하는 발전 단계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제작사마다 가지고 있는 작품개발 프로세스를 공유하고 어드바이저나 쇼닥터와 같은 조언이 가능한 전문가 그룹과의 효율적인 연계도 필요하다. 한국 뮤지컬협회가 준비중인 표준계약서 작성에 대한 논의도 활성화된다면 업계 안의 자금 흐름을 보다 투명하게 만들어 투자자가 안심할 수 있는 환경에 한발짝 다가갈 수 있고, 전체적으로 선정–개발–투자–제작–성공–유통이 자금의 선순환 과정을 확립할 수 있다.

공연이란 상품은 속성상 매장에 재고가 남지도 않는 무형의 자산일뿐더러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면 콘텐츠가 ‘생산’만 되고 ‘유통’은 되지 못하는 미완성 비즈니스에 불과하기에 창작자–제작자–투자자–극장 간의 유기적인 협업이 필요하고 기본 인프라를 지원해주는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도 뮤지컬을 문화산업이 아닌 예술로 규정짓고 있어서, 국가적인 지원을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뮤지컬 콘텐츠는 순수예술보다는 산업적 측면이 강한 문화 분야의 상품에 가까운데도 정작 본격적인 산업 지원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순수 문화예술 창달을 위한 지원금도 뮤지컬보다 훨씬 기초예술인 전통 예술, 미술, 무용, 연극 같은 곳에 쓰여야 하기에 오히려 뮤지컬은 양쪽에서 홀대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창작자의 열의에 정부도 통큰 지원 호응을

 
현재 뮤지컬의 르네상스는 마치 1990년대 중·후반기 한국 영화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그 분위기를 이끌었던 것 중에는 정부가 앞서서 영화진흥정책을 세우고 전폭적으로 지원한 선례가 있었다.

따라서 창작자들의 열의와 전용극장 확충과 같은 민간기업의 하드웨어 마련에 발맞춰 정부 차원의 통큰 지원까지 이루어진다면 뮤지컬 콘텐츠는 내수 시장을 넘어 세계로도 뻗어 갈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 조성에 한발짝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뮤지컬 종사자들이 새해에도 이러한 ‘진수성찬’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글·조용신 (뮤지컬 칼럼니스트·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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