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덕유산 눈꽃여행

겨울이면 덕유산은 온통 새하얀 눈꽃으로 뒤덮인다. 특히 설천봉에서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은 은빛의 터널로 변한다. 이 구간은 거리도 짧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등산에 자신이 없는 이들과 아이들도 눈꽃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덕유산 눈꽃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 겨울 덕유산은 순백의 세계를 선물한다.
덕유산 눈꽃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 겨울 덕유산은 순백의 세계를 선물한다.
덕유산(德裕山)은 크고 넓다.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2도 4군에 걸쳐 있다. 전체 면적만 2백19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최고봉인 향적봉(1천6백14미터)을 중심으로 대봉(1천3백미터) 중봉(1천5백94미터) 무룡산(1천4백92미터) 삿갓봉(1천4백10미터) 등 해발 1천3백미터 안팎의 장중한 능선이 남서쪽으로 30여 킬로미터를 달린다. 향적봉에서 무룡산과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에 이르는 주능선의 길이만도 무려 16킬로미터에 달한다.

덕유산은 그 품새만큼이나 사계절 다른 풍경을 펼쳐 보인다. 봄날에는 연둣빛 신록과 연분홍 철쭉이 어우러지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 사이로 흐르는 구천동 맑은 계곡이 장관을 연출한다. 가을이면 오색단풍으로 온 산을 울긋불긋 물들인다. 그리고 겨울. 겨울 덕유산은 눈부신 은세계를 연출한다. 사진작가들은 덕유산의 이런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시사철 몰려든다.

‘눈같이 내린 서리’ 상고대가 아름답기로 소문

덕유산은 상고대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상고대는 나무나 풀에 눈같이 내린 서리다. 섭씨 영하 6도 이하, 습도 90퍼센트 이상일 때 상고대가 피는데 안개가 많고 기온차가 심한 해발 1천5백미터 안팎의 고산지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덕유산에서도 상고대가 가장 아름다운 곳은 정상인 향적봉 일대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따라 상고대와 눈꽃이 화려하게 핀다. 마치 나무에 밀가루를 뒤집어씌워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얀 산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덕유산 향적봉 일대는 상고대가 아름다운 곳으로 ‘일출 명소’로도 유명하다.
덕유산 향적봉 일대는 상고대가 아름다운 곳으로 ‘일출 명소’로도 유명하다.

향적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크게 2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삼공리 매표소에서 출발해 백련사를 거쳐 오르는 코스. 그리고 두 번째는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 내려 향적봉으로 가는 코스다. 등산을 겸할 목적이라면 첫번째 코스가 좋지만 상고대와 설산을 감상할 목적이라면 무주리조트 곤돌라를 타는 것이 낫다.곤돌라를 타고 향적봉에서 내려 15분만 오르면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에 닿을 수 있다.

12월이면 덕유산은 이미 하얗게 눈이불을 덮어쓰기 시작한다. 이파리를 모두 떨어낸 나무들은 새하얀 눈꽃을 피운다. 나무 둥치도 눈으로 만들어놓은 것처럼 하얗다. 덕유산 상고대가 다른 산에 비해 유난스러운 것은 산 아랫녘으로 금강 줄기가 흐르기 때문. 낮이면 햇살을 받은 금강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라 눈구름이 되고 오후 늦게부터는 덕유산에 눈이 되어 내린다.

정상인 향적봉 바위 위에서 만나는 덕유산 설경은 알프스를 무색하게 한다. 덕유산의 정상에는 거센 바람 때문에 큰 나무가 없다. 습기는 많고 바람은 거센 평원지역이라 산죽과 철쭉 같은 키 작은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만큼 조망이 뛰어나다. 북으로는 황악산과 계룡산이, 서쪽으로는 운장산과 대둔산이, 남쪽으로는 지리산 반야봉이 버티고 있다. 동쪽으로는 가야산과 금오산이 펼쳐진다. 순백의 능선들이 어깨를 걸고 달려간다. 능선은 푹 꺼지기도 하고 다시 되잡아 채며 올라서기도 한다. 산 뒤에 산이 서 있고 한 겹 한 겹 모두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향적봉 대피소는 사진작가들의 베이스캠프

향적봉 능선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장소는 봉우리 아래에 위치한 향적봉 대피소다. 이곳은 사진작가들의 베이스캠프 역할도 한다. 무주리조트 곤돌라가 생기기 전에는 향적봉 대피소의 절반 이상을 사진작가들이 차지했다고 한다. 상고대와 눈꽃을 보려면 서두르는 것이 좋다. 해가 뜨면 눈꽃은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무주리조트 곤돌라는 오전 9시 무렵부터 운행하는데 한겨울이라면 오전 11시 정도까지는 상고대를 볼 수 있다.

내처 향적봉 대피소를 지나 덕유중봉까지 가보자. 운이 좋다면 앙상한 주목에 핀 화려한 설화를 찍을 수 있다. 중봉까지는 30~40분 거리. 방한복과 아이젠, 스패츠 등 기본 장비만 착용한다면 초행자들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사진작가들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향적봉대피소. ▲▲한겨울이라면 오전 11시 이전에 가야 상고대를 볼 수 있다.
▲사진작가들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향적봉대피소. ▲▲한겨울이라면 오전 11시 이전에 가야 상고대를 볼 수 있다.

향적봉 대피소를 지나면서 주목과 구상나무가 적당히 섞여 있는 산길이 나타나는데 이곳의 눈꽃도 절경이다. 나무들은 손가락 굵기의 앙상한 가지에도 제 몸뚱이보다 더 두꺼운 눈살을 붙이고 있다. 검은 나무 둥치와 새하얀 눈이 대조를 이룬다. 덕유중봉에 서면 굽이치는 남덕유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려오는 길은 구천동을 거쳐 삼공리 관광단지로 이어지는 코스를 택한다. 구천동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 가운데 하나다. 전설에 따르면 ‘9천명의 스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 즉 ‘9천명의 스님이 머물렀다’는 뜻의 ‘九千屯(구천둔)’에서 ‘구천동’이라는 이름이 비롯됐다는 설도 있고 구천동 계곡의 굽이가 9천굽이라서 그렇게 불리게 됐다는 설도 있다.

반딧불이 자연학교 들러 청정자연 체험도

어쨌든 구천동은 그만큼이나 깊은 계곡이다. 행락객으로 붐비는 여름과 달리 겨울 구천동은 고요하다. 계곡은 반쯤 얼어붙었고, 그 위에 눈까지 내려앉아 있다. 오밀조밀한 길은 걷기에도 더없이 좋다. 내려오는 길에 얼음장 사이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을 촬영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아이들과 함께 갔다면 반디랜드를 빼놓지 말자. 곤충박물관과 반딧불이 자연학교, 반디별천문과학관, 청소년 야영장, 통나무집, 반딧불이 서식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희귀곤충을 만날 수 있는 곤충박물관 전시실도 볼거리가 많다. 반디를 키우고 있는 깜깜한 방으로 들어가면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빛나는 반딧불이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디랜드에 가면 신기한 고생대 화석도 만날 수 있다. ▲▲지전마을 돌담길.
▲반디랜드에 가면 신기한 고생대 화석도 만날 수 있다. ▲▲지전마을 돌담길.

무주 설천면에는 우리 옛 돌담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마을이 있다. 지전마을이다. 30여 호가 살아가는 작은 마을인데, 마을 구석구석으로 나지막한 돌담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지전마을의 돌담은 지난 2006년 등록문화재 제262호로 지정됐다.

진흙을 이겨 담을 쌓았는데, 그 사이 돌을 집어넣어 담을 단단하게 했다. 담에 지붕을 만들어 비에 덜 젖도록 한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집집마다 들어선 감나무와 돌담이 어우러져 한적한 겨울풍경을 빚어낸다. 마을 앞을 흐르는 맑은 개천에 서 있는 수령 3백년을 훌쩍 넘긴 커다란 느티나무도 볼 만하다. 지전마을은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청정지역이기도 하다.

글과 사진·최갑수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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