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사태 1년, 한국이 찬사 받는 이유
 
 
  “한국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회복하고 있는데 대해 축하를 드린다.”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간담회에서, AP를 비롯한 외신기자들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질문할 때 빼놓지 않고 던진 인사말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로이터, AP, 블룸버그, 파이낸셜타임스, 니혼게이자이 등 30여개 외신매체에서 40여명의 기자들이 참석해 한국의 급속한 경기회복 속도에 찬사를 보내는 한편, 숨겨진 비결을 윤 장관에게 듣는 데 집중했다.

윤 장관이 취임 직후인 지난 3월 5일 가진 외신기자클럽 강연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 것이다. 당시 외신들은 한국의 대외지급 능력을 의심하는 질문을 반복했고,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외신의 잘못된 보도가 한국 경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며 신중한 보도를 요청해야했었다.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한 지 1년(2008년9월15일), 그리고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을 겪으면서도 한국 경제가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데 대한 놀라움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 한국 경제는 ‘스위트 스폿’

3월 경제위기설로 시장이 혼란스러운 쯤인 2월26일 영국 주간잡지인 이코노미스트(발행일 2월28일)는 “HSBC는 한국의 단기외채가 연말 이전에 위축되고 있는 외환보유고를 초과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며 “한국은 대규모 단기외체와 은행들의 높은 차입비율로 폴란드만큼 위험해 보인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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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위험도를 폴란드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도했던 이코노미스트지의 ‘도미노 이론’.

한국 경제의 위험도가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린 동유럽의 헝가리, 폴란드와 비슷한 수준으로 취급한 이 같은 보도는 국내외 언론으로 확산됐고, 이를 접한 정부와 시장 전반에 정부는 물론, 시장 전반에 대혼란을 가져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단기외채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고 적극 해명했지만, 쏟아진 물을 다 주워 담기란 불가능했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난 현재,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9월6일 인터넷판 신문을 통해 “일년도 채 지나지 않아 경제위기는 종료됐다. 아시아 4번째 경제대국 한국은 갑자기 다시 활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경제, 투자자들에 ‘스위트 스폿’」이라는 제목의 WP 보도는 “한국주식시장은 지난해 9월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 글로벌 경제위기를 야기했을 때와 비교해 많이 올랐다”며 한국주식시장은 투자자들에게 공이 맞으면 가장 잘 날아가는 부분(스위트 스폿, sweet spot)이라고 표현한 한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부도위기에 내몰린 동유럽국가와 처지가 비슷하다고 했던 한국 경제가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빠른 경기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투자자들의 매력적인 투자처(스위트 스폿)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 무엇이 달라졌나?

2008년 9월15일,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 불안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주름잡던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어 많은 금융기관들이 도미노 파산하면서 세계 경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주가가 폭락하고 투자와 소비가 얼어붙는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세계 각국은 재정지출의 확대와 금리 인하 등 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조치를 단행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인 재정지출 전략과 통화스왑 등을 통한 외화확보 능력을 보여줬고, ‘녹색뉴딜’이라는 미래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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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2008년에서 2012년까지 공공부문 지출과 세금감면을 포함한 67조1000억원의 경기부양 재정정책을 내놓았다. 또 경제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9월14일 현재 올해 총예산의 76.6%를 조기 집행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미국, 중국, 일본과 각각 3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결국 1년간의 악전고투는 빛을 발했다. 지난해 4분기에 전기 대비 -5.1%까지 떨어졌던 경제성장률은 올해 1분기에 0.1% 플러스로 전환됐고, 2분기에는 2.6%를 기록했다. 2분기에 1% 이상의 성장세를 보인 나라는,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도 잇따라 상향 조정됐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이 당초 -4% 전망에서 -1.8%로 상향조정한 데 이어,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올해 성장률을 ―2.3%에서 ―0.7%로 높여잡았다. 최근엔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9개월만에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높여잡았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경기회복이 빠른 배경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 유정석 수석연구원은 “주요국 정책당국의 공격적인 금리인하, 적극적인 유동성 지원 및 재정지출 확대 등 국제공조체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면서 금융·경제여건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앞으로의 경제정책 방향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7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경기회복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지만, 국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경제가 불확실성과 위험에 처해있는 만큼 아직 만족할 수는 없다”며 “민간부문이 확실한 회복세를 보이기 전까지 재정확장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회복세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 회복의 지속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지켜보며, 재정집행 방향을 여전히 확장 기조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선 15일 이명박 대통령도 연합뉴스·교도통신 공동회견에서 “우리가 선제적 조치를 강력하게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먼저 위기를 탈출한다고 하지만, 과거의 예를 보면 위기에서 벗어날 때 너무 빨리 출구전략을 써서 다시 위기를 맞이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주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지금 정부의 목표는 내수 진작과 기업의 투자 촉진”이라고 밝히고, “경제위기를 탈출해 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희생자가 서민층과 소기업”이라며 “거기에 대한 집중적인 전략을 펴고 있는데, 가장 큰 목표로 일자리를 중점적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향후 정책방향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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